종교의 역사는 인류 문명의 역사
지난 겨울 혼자서 배낭을 메고 인도여행을 다녀왔다. 보름간의 악전고투를 마치고 돌아와서는 인도 쪽을 향해 오줌도 싸지 않으리라 했었는데, 요즘 눈만 감으면 다시 바라나시의 잿빛 갠지스 강물과 델리에서 자이푸르 가는 길의 유채꽃 밭이 아른거린다. 유채꽃 밭은 500리 나 펼쳐져 있었는데 내 몸까지도 노랑 물을 들여 놓았다.
인도에는 가는 곳마다 신들이 자리 잡고 있다. 흔들리는 시내버스에도, 운전사의 이마에도 구멍가게에도 심지어 허름한 게스트 하우스 간판에서도 어김없이 힌두신들이 경배를 받고 있다. 3억3000만명이 넘는다는 힌두교 신들은 대체 어디서 온 것일까, 그들은 왜 갠지스 강에서 세상을 마치는 것이 소원일까, 타다 남은 시신이 떠다니는 강물에 몸을 담그고 예배를 드릴까, 파괴의 신인 시바가 어째서 가장 존경받는 신이 되었을까? 미리 공부하고 출발하지 않았더라면 눈을 감은 채 여행하는 꼴이었을 것이다.
나는 여행을 떠날 때면 제법 열심히 공부를 한다. 그야말로 하고 싶어서 하는 공부인 셈이다. 그 공부를 할 때면 목적지가 어디든지 어김없이 펼쳐 보는 책이 한권 있다. 비교종교학자 오강남이 쓴 「세계 종교 둘러보기」(현암사)다. 제목처럼 다양한 세계의 다양한 종교를 소개하고 있다.
여행은 새로운 나를 찾으러 떠나는 것이라는데, 가는 곳마다 종교가 있었고 종교가 남긴 문명이 있었다. 그 문명은 낯설어서 신비롭고 여행자를 신나게 한다. 종교의 역사는 인류 문명의 역사다. 때문에 종교 간의 관계를 알면 세계역사가 한 눈에 보인다. 만약 다양한 종교가 없었더라면 인류 문명은 얼마나 단조로웠을까? 어떤 이들은 자신들의 종교가 지구를 덮기를 바란다지만 이런 이유로 나는 결사반대다.
이 책은 오늘날 종교 간의 갈등은 어디서 기인하는지, 그들의 뿌리는 무엇인지, 무엇을 기도하며 사는지를 친절하게 보여준다. 힌두교, 불교, 자이나교, 시크교, 유교, 도교, 신도, 조로아스터교, 유대교, 그리스도교, 이슬람교, 동학 등을 각각의 꼭지로 하여 일목요연하게 정리했다. 한 권에 여러 종교를 담다보니 깊이는 얕으나 핵심을 꼭꼭 찌르고 있어 보통 사람들의 교양의 습득에는 전혀 지장이 없다.
"하나의 종교만 아는 사람은 아무 종교도 모른다." 는 그의 화두는 한국의 배타적인 신앙관을 가진 사람들이 새겨들어야 할 회초리다. 나무아미타불의 뜻도 모르면서, 예수를 판 사람의 이름이 왜 유다인지도 모르면서 무작정 '믿습니다' 를 외치는 이들도 꼭 읽었으면 좋겠다.
"이 책을 읽고 신앙인이라면, 이웃이 어떤 신앙을 가지고 있는지 알아봄으로써 더욱 큰 맥락에서 자신의 신앙을 보다 깊이 이해하게 되었으면 합니다. 특별히 믿는 종교가 없다고 생각하는 일반인이라면, 우리 인류가 어떤 정신적 유산을 물려받아 지금과 같은 종교적 태도를 가지게 되었는지 등을 이해할 수 있는 문화사적, 사회학적 안목이 깊어지기를 바랍니다."
그의 소박한 머리말이 가슴에 와 닿는다. 조금만 더 있으면 인도에 다시 유채 꽃밭 500리 길이 펼쳐질 것이다. 내게 힌두교의 밑바탕을 알려주었던 이 책을 끼고 다시 떠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 아동문학가 김종필씨는 1994년 전북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현재 김제 금남초등학교 교사로 재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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