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세월에도 빛바래지 않은 따뜻한 삶의 지침
한자가 생긴 이래 가장 많은 저술을 남겼다는 다산 정약용의 글 중에 어느 것인들 귀하지 않을까마는, 오래전부터 가서(家書) 가계(家誡) 증서들이야말로 다산의 인품과 철학·문학사상을 제대로 나타낸 글이라 정평이 나 있다.
다산연구소 이사장 박석무 편역으로 1979년 시인사에서 출간된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는 1991년 「창비」로 판권이 넘어가 창비교양문고로 출간되고, 이후 2001년 개정판으로 출간되었으며, 2009년 초간본 발행 30주년을 기념하여 네 번째 개정 증보판으로 출간되었다. 이처럼 이 책이 장기 스터디셀러가 된 것은 그가 보낸 편지 속에 인간 정약용의 진정성이 담겨서이며, 또 그의 인간적 면모나 사상 및 학문에 대한 관심사 등 그의 삶 전체를 알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는 정약용이 유배지 남도 땅에서 아들들에게 보낸 편지와 가훈으로 내려준 편지, 흑산도에서 귀양 살던 둘째 형님 정약전에게 보낸 편지, 친지들에게 교훈삼아 내려준 편지, 제자들에게 당부하는 편지로 구별되어 있으며, 하나의 편지에 들어있는 여러 주제는 주제별로 간략한 제목이 붙어 있다.
"내가 밤낮으로 애태우며 돌아가고 싶어 하는 것은 너희들 뼈가 점점 굳어지고 기운이 거칠어져 한두 해 더 지나버리면 완전히 내 뜻을 저버리고 보잘 것 없는 생활로 빠져버리고 말 것만 같은 초조감 때문이다. 작년에는 그런 걱정에 병까지 얻었다. 지난여름은 앓다가 세월을 허송했으며 10월 이후로는 더 말하지 않겠다." (1803년 정월 초하루, 두 아들에게 보낸 편지 중에서)
척박한 유배의 삶을 살면서도 고향의 두 아들 학연과 학유를 독촉하고 격려한 200여 년 전의 아버지 정약용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몇 해 전 야구방망이를 사람에게 휘둘러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모 대기업 총수의 도를 넘은 맹목적 자식사랑에 오버랩 되어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는 급격한 산업화에 따른 개인주의 팽배로 점차 가족윤리가 무너지고 스승과 제자간의 의리 또한 무너지고 있는 세상에 내리는 서늘한 죽비 소리이다. 편역자의 말대로 우리는 다산이 그토록 강조했던 효(孝)와 제(弟)의 정신과 스승과 제자 간의 간절한 편지글을 통해서 가족의 소중함과 사제 간의 참다운 의리를 복원할 수 있을 것이며 우리들의 삶의 방향을 점검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시가 좋고 어떻게 지어야 하는지, 문장 공부는 어떻게 해야 하며 글은 어떻게 써야 하는지 등 오늘날 문학이 지향해야 할 바를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200년이라는 시차를 넘어 다산의 서간문은 여러 의미로 유명하다. 이 책에서 우리는 그의 자식교육법과 독서법을 눈여겨볼 수 있을 것이며, 대학자이자 정치가, 사상가였던 인간 정약용의 참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더불어 전통적 가치를 잘 알지 못하는 요즘 젊은이들은 소중한 우리의 미풍양속과 인간의 도리가 무엇인가를 배울 수 있을 것이다.
▲ 안성덕 시인은 정읍 출생으로 2009년 전북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한국전력 전주전력관리처에 몸담고 있으며 원광대 대학원 문예창작학과 재학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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