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지의 고단한 현실 반영…한글운동에도 적극적
김완동(金完東·1903~1963)은 전주에서 태어난 사회운동가이자 교육자이며 아동문학가이다. 그의 아호는 한결과 포훈(苞薰)이다. 그는 193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동화 '구원의 나팔소리!'가 3등 당선되고, 같은 해 조선일보의 신년 현상 문예에 동화 '약자의 승리'가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다. 그는 1930년대 한국 아동문단은 물론, 전라북도 지역의 아동문학 발전을 위해 헌신적으로 노력한 작가이다. 그러나 그의 아동문학 활동에 관해서는 지금까지 거의 다루어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다 보니 그는 한국아동문학사에서 매몰된 작가에 속할뿐더러, 전라북도 문학사에서도 잊혀진 작가에 속한다.
김완동은 전주보통학교와 전주고보를 졸업하였고, 군산공립보통학교를 시작으로 대부분의 생을 교직에 종사하였다. 그는 군산에서 재직하던 중에는 지역의 항일운동에 노골적으로 개입하였다. 그는 이 시기에 군산기독청년회, 군산청년동맹, 신간회 군산지회의 준비위원 등으로 활동하던 중 파면되었다. 그는 1929년 초에 군산을 떠나 상경한 후에, 조선어 철자법 연구를 목적으로 경성 시내 공사립 초등학교 교원들이 출범한 초등학교 조선어연구회의 임원으로 선출되었다. 이후에 그는 1940년 함경도 성진의 메리볼틴여학교 교장으로 재직하다가 해방 후에 귀향하였다. 그는 나중에 전주 시내의 초등학교 교장을 지내다가 정년퇴임한 뒤에, 전북일보사의 편집 고문과 전북어린이신보의 주간을 역임하였다. 그의 사후에 후학과 친지들에 의해 유고 선집 「반딧불」(보광출판사, 1965)이 출간되었다.
생전에 김완동이 발표한 아동문학 작품들은 동요, 동시, 동화, 소년소설, 평론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그는 이 작품들을 경성에 체류하는 기간에 집중적으로 발표하였다. 그의 동요와 동시는 전통적인 소재를 차용하여 재래의 리듬을 적용하고 있다. 그는 자수보다 한국어의 고유한 소리결에 착목하여 여러 가지 변이형 리듬을 시도하였다. 특히 그는 동요의 창작 과정에서 섬세한 음감을 앞세워 모국어가 지닌 교착어로서의 곤란도를 효과적으로 우회하였다. 또한 그의 동요에는 식민지의 고단한 현실을 반영하면서도 희망을 심어주려고 노력한 작품들이 눈에 띈다. 당시 전주는 일제의 농산물 침탈이 직접적으로 자행되는 피해 지역이었다는 점에서, 그가 동요에서 내일의 희망을 추구한 사실은 강조되어야 한다.
그의 아동문학 중에서 주목할 분야는 동화이다. 특히 당선작 '구원의 나팔소리!'는 일제의 사상 통제를 감안하면 가히 혁명적 내용을 담고 있다. 옛날 어느 나라의 임금이 정사에는 무관심한 채, 자신의 이익을 악착같이 쫓다가 아들과 백성들에게 왕위를 빼앗기는 내용이다. 이 작품은 민의를 수용하지 않는 임금은 축출해도 무방하다는 맹자의 혁명관을 잇고 있다. 이처럼 신념에 입각하여 작품을 발표하던 그였기에, 문학을 사회적 반영물로 보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그는 동화를 "작가 자신의 아동기를 회상하면서 동심을 가지고 아동이 추구하는 세상을 동화로써 그려내는 것"이라고 규정하였다. 따라서 동화는 아동들의 생활 장면을 반드시 반영하여야 할 뿐더러 그 내용이나 형식은 역사적 조건에 따라 변화한다고 보았다. 그의 민족중심적 동화관은 당대의 평단으로부터 "표현방식과 사건 전개가 능란하다"는 평가로 보상받았다.
김완동의 문학관을 좀더 살필 수 있는 분야는 평론이다. 그는 동화운동을 전개하기 위한 전제 조건으로 아동에 대한 체계적 인식을 부르짖었다. 그는 동화의 요건과 아동의 발달 단계를 비교하면서 작가들에게 필요한 덕목을 자세하게 제시하였다. 그의 평필은 난삽하거나 강경하지 않고 차분하여 독자를 설득하는 매력을 지니고 있다. 나아가 과학적 이론을 바탕으로 논리를 전개한 그의 비평은 당대의 인상주의적이고 감상적인 글들에 비해 윗길에 속한다. 특정한 이념의 전달보다는 대상의 특성을 정확히 파악하기를 바란 것이 그의 평문에 배어 있는 강점이다. 스스로 나이 어린 아동을 대상으로 경직된 이념을 내세우기에 앞서 식민지 현실에 대한 투철한 인식과 아동의 특수성을 조화시키고자 노력한 그였다.
문학 활동 외에 김완동은 한글운동에 열심이었다. 그는 조선어강습회에 참석한 후 한글이 지닌 운동적 차원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한글맞춤법통일안에 반대하던 조선어학연구회의 움직임을 비판하였다. 한글맞춤법의 통일은 문학의 형성 과정에서도 매우 중요하다. 그것은 작가에게 일정한 학력을 요구하고, 맞춤법을 준수하는 동안에 민족의식을 내면화하도록 강제한다는 점에서 독립운동에 못지않은 비중을 갖는다. 김완동은 한글이 문화운동의 매개수단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공공의 적을 향한 단일 대오의 중요성을 역설한 것이다. 더욱이 외세에 의해 국자로서의 자격을 박탈당하고 '한글'이라는 별칭으로 불리는 모국어의 비참한 운명은 작가 김완동에게 말 못할 비애감을 안겨주었을 터이다. 식민지시대의 아동들에게 희망을 선사하며 전북의 아동문단을 선도했던 그의 빛나는 업적들이 지금까지 조명조차 받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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