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문화의 산실이며, 늘 살아 있는 역사
먼지 수북한 책들이 적지 않다. 최명희문학관에서 진행하는 프로그램'문학인과 돌려 읽는 헌 책'에 매주 한 보따리씩 책을 기증하고 있지만, 아껴 구입하고 귀하게 읽은 그 책들을 덜어내는 일은 만만한 작업이 아니다. 세월이 흐르다보니 미안함만 남아 있는 책, 허나 앞으로도 펼쳐볼 일은 아득한…….
자주 뒤적이는 책들은 전라북도와 관련된 저작들이다. 신석정·박동화·최형·최승범·김남곤·허소라·정양·윤흥길·이광웅·김학·김용택·이병천·신경숙·이세재·안도현·이병초 등 시인·작가들의 작품집과 최래옥·오하근·임명진·최동현·김익두·최명표·강준만 등 학자들의 연구서, 그리고 전북 출신 작가들의 수필집들이다. 김제문화원의 「벼골의 구비문학」, 순창문화원의 「구전설화」, 임실문화원의 「우리 마을 옛이야기」, 정읍문화원의 「정읍의 전설」, 진안문화원의 「진안 지방의 구전설화집」, 남원문화원의 「남원의 문화유산」, 완주문화원의 「완주의 문화유산」, 전주문화원의 「지명으로 보는 전주 백년」 등 전라북도 14개 시·군의 옛 이야기와 문화유산이 담긴 책도 가까운 거리에 꽂혀 있다. 김병용의 「길 위의 풍경」, 문치상·정지영의 「하늘과 땅 사이」, 송영상의 「전라도 풍물기」, 이종근의 「명인명장이야기」, 조병희의 「완산고을의 맥박」 등 이 땅의 문화예술인들이 자신의 이름을 걸고 펴낸 기행·인문서들과 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의 「전북의 예술사」와 「전북의 역사와 문화」, 뿌리깊은나무의 「한국의 발견: 전라북도」, 신아출판사의 「호수가 있는 30번 국도여행」, 전북도립국악원의 「전북의 민요마을」, 전북대 신문사의 「전라기행」, 전북일보사의 「만경강 동진강」, 전북작가회의의 「전국문학지도」(권3), 전주백년사편찬위원회의 「신문으로 본 전주, 전주 사람들」(권2) 등 여러 단체에서 성의껏 펴낸 책들 역시 그 곁에 있다.
10여 년 전부터 시작된 내 삶터에 대한 관심은 이 땅에서 유일하게 순수 문화예술잡지의 맥을 잇고 있는 월간지 「문화저널」을 구독하며 시작됐다. 책장을 넘기다 보면 내가 살고 있는 곳에 대한 무한한 호기심이 생기고, 20년 넘게 이 잡지를 만들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경외(敬畏)마저 들곤 한다. 잘 묵고 잘 삭은 이 땅의 언어와 전통과 문화와 예술이 차분하면서도 긴 호흡으로 담겨 있기 때문이다.
1987년 11월, 지역의 문화예술계·학계·언론계 사람들이 십시일반 창간했던 「문화저널」은 전라도의 역사와 인물·사상을 뼈대로 각종 문화프로그램과 그 전망을 촘촘히 보고해왔던 지역문화의 산실이며, 늘 살아 있는 역사다. 매월 발행되는 그 달의 잡지를 통해 오늘의 전북 문화를 만나고, 두툼하게 묶인 영인본을 통해 잊힌 문화와 되살릴 문화, 오래전 이별한 이들과 그들을 다시 기억해야 할 이유를 찾다보면 먼지 따위는 쉬 앉지 못한다.
「문화저널」은 '전북'과 '문화'라는 테두리에서 씨를 뿌리고 가꿔온 숲이다. 이 울창한 숲은 사람과 사람의 관계 속에서 시나브로 성장해 왔다. 그 곁을 지나는 이들의 건강한 시선과 애정 있는 손길이 더해진다면 전라북도의 정신사는 보다 풍성해질 것이다. (끝)
▲ 최기우 극작가는 전주 출신으로 2000년 전북일보 신춘문예(소설)로 등단했다. 희곡집 「상봉」과 창극집 「춘향꽃이 피었습니다」 등을 펴냈으며, 전국연극제 희곡상과 불꽃문학상, 우진창작상 등을 수상했다. 현재 최명희문학관 기획연구실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매주 월요일 아침을 열었던 '내가 권하고 싶은 책'을 아껴주신 독자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