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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 "아내와 살았던 일상이 감동적"

여든을 앞둔 나이에도 왕성하게 창작 활동을 하는 거장 고은(78) 시인이 나란히 두 편의 시집을 출간했다.

 

2008년 '허공' 이후 3년 만에 낸 신작 시집 '내 변방은 어디 갔나'와 첫 연(戀)시집 '상화 시편:행성의 사랑'(창비)이다.

 

고은 시인은 6일 오후 무교동의 한 식당에서 막걸리를 한 잔 걸친 뒤 "내가 1980년대에 연시집을 냈다면 ('접시꽃 당신'의) 도종환 시인 다음은 갔을 것"이라고 껄껄 웃으며 시집 발간 소회를 전했다.

 

◇'상화 시편: 행성의 사랑' = 고은 시인은 이날 아내인 이상화(64) 중앙대 영어과 교수에게 바치는 이 연시집에서 '사랑은 사랑의 부족입니다' '아내의 잠' 두편을 골라 직접 낭송했다.

 

1958년 문단에 모습을 드러낸 뒤 허무주의적 초기시, 현실 참여 저항시, 불교의게송(偈頌)과 선시(禪詩)의 전통을 잇는 단시(短詩)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스펙트럼을 펼쳤지만 사랑 노래를 읊은 것은 처음이다.

 

"1980년대에 한 번 연시를 쓰려다가 아내가 말려서 그만둔 적이 있지요. 지금낸 시는 일상을 담았지만 그때 썼다면 '오~ 나의 태양~' 같은 식으로 상당히 몽환적이었을 것입니다. 지금보다는 더욱 좋은 게 나왔을 거에요. 지금은 퇴락했잖아요.(웃음)"고은 시인이 아내를 만난 것은 1974년이다.

 

1983년 결혼한 뒤 30년 가까운 세월을 함께 보냈다.

 

"1974년 겨울/그녀의 긴 편지를 받았습니다 (중략) 기어코 1983년 결혼 이래/아내의 긴 편지와 좀 덜 긴 편지를 받았습니다 (중략) 황홀경이었습니다 언제부턴가나의 편지는 아내의 편지가 되고 말았습니다/더이상 참을 수 없이 나는 아내의 오른손이고 왼손이었습니다"('아내의 편지' 중)아내를 부를 때 '너'부터 '님'까지 다양한 호칭을 활용한다는 시인은 "내 작품은 아내와의 합작"이라며 "상화가 없었다면 나는 이미 15년쯤 전에 지수화풍(地水火風)으로 돌아갔을 것"이라며 "아내와 나는 '무갈등 체제'로 싸움이 성립되지 않으며지금도 보면 볼수록 아내가 좋다. 요즘 젊은 부부에게도 '사랑하기보다 존경하라'고 말하고 싶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아내와 살면서 일상의 사소한 티끌 같은 시간의 집적이 참 감동적이었다. 우리는 나이 차도 없고 성도 서로 모른다"고 미소 지으며 "다만 이 시집에는 다른 연인들을 위한 가능성도 스며들었기 때문에 우리 둘만의 사사로운 시로 끝나지 않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시인은 시집에서 굵고 호방한 필치로 사랑을 노래한다.

 

시인에게 연인은 달빛을 저만치 밀어내는 '벌거숭이 둘의 나신'('달밤' 중)이자'무수한 정의들 이전/무수한 정의들 이후'('아직 가지 않은 곳' 중)에 자리한 인연이다.

 

그는 직접 그린 그림으로 표지를 장식했다.

 

또 이상화 교수가 쓴 시 '어느 별에서 왔을까'도 담았다.

 

고은 시인은 그림에 대해서는 "가족 생일 때 시와 편지를 주고받는데 몇 해 전아내의 생일 때 그린 그림이다. 형상화할 수 없는 꽃밭을 담았다"고, 이상화 교수의시에 대해서는 "아내의 시가 '싸가지 없이' 나보다 더 낫길래 한 편 슬쩍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내년 아내가 정년 퇴임한다"며 "내후년에는 멋지게 준비해서 시베리아로 여행을 떠날 것"이라며 아내를 위한 또 하나의 선물을 준비하고 있음을 공개했다.

 

292쪽. 9천500원.

 

◇'내 변방은 어디 갔나' = '상화 시편:행성의 사랑'이 고은 시인의 첫 연시집으로 눈길을 끈다면 '내 변방은 어디 갔나'는 시인의 시적 전통을 잇는 시집으로서의미를 갖는다.

 

고은 시인은 "두 시집을 유비(類比)할 수는 없다"며 "시인으로서는 '내 변방..'을 지키고 싶고 '상화 시편'도 양보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양손에 술잔을 들고어느 것을 마실지 정하지 못하는 모양새"라고 설명했다.

 

군사독재 치하에서도 뜻을 굽히지 않았던 고은 시인은 이 시집에서 현시대와 문명에 맞서며 당당하게 목소리를 낸다.

 

"저 1970년대 10년의 날들/그 싸움 기슭/내 맹목의 살점들 지글지글 타던/모두의 숨찬 넋들로 새로이 와야 한다//이 모독의 지상 여기저기/내 석탄의 고뇌가 와야한다"('태백으로 간다' 중)그는 '변방'을 자처한다.

 

문학평론가인 도정일 경희대 영문학과 명예교수는 시인이 말하는 '변방'을 "시는 이 시대의 변방"이라며 "변방은 우리의 고향이고 시대를 넘어선 곳에 있으며 시대를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설명한다.

 

"삼천리강산이 모조리 서울이 되어간다/오, 휘황한 이벤트의 나라/너도나도/모조리 모조리/뉴욕이 되어 간다 (중략) 가장 흉측망측하고 뻔뻔한 중심이라는 것 그것이 되어 간다"('내 변방은 어디 갔나' 중)고은 시인은 이어 '중심 문명'을 향해 "더이상 발견하지 말 것/다시 말한다/더이상 발견하지 말 것"('포고' 중)이라고 일갈을 날린다.

 

그러면서 그는 세상이 새롭게 태어나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절망보다는 희망을, 부정보다는 긍정의 힘을 강조한다.

 

"그래도 다시 태어나야 한다/이 모독당한 산야에 태어나야 한다 (중략) 그래도 살아야 한다/생명이란/얼마나 독점이냐/얼마나 집착이냐 (중략) 그래도 일어서야 한다/이 과잉의 땅에서/이 소외의 땅에서/('그래도 다시 태어나야 한다' 중)

 

136쪽. 7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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