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가 있는 태권도 품새…종합예술로 승화
"송판만 깨뜨리는 태권도 시범은 가라."
지난 24일 끝난 '제9회 우석대학교 총장기 전국 태권도 품새대회'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우석대 태권도 시범단의 공연 '로미오와 줄리엣' 이었다.
품새·겨루기·격파·호신술 등 정통 태권도를 바탕으로 탄탄한 이야기와 음악 등을 버무린 이들의 시범은 '퓨전(fusion) 공연'을 넘어 '종합 예술'이라 불릴 만했다. 태권도에 일가견이 있다는 선수들이나 심판들조차 우석대 태권도 시범단의 신개념 '버라이어티 쇼'(variety show)에 넋을 잃은 표정이었다.
이들의 '무결점 태권도 시범' 뒤엔 2005년 첫 작품 '에피소드 사랑아 Ⅰ'부터 '에피소드 II 명성황후', '매직 스틱(마법의 봉)', '퓨전 서동요', '에피소드 사랑아 II', '동학농민혁명'까지 해마다 100회 이상 크고 작은 무대에 서면서 단원들이 흘린 땀과 눈물이 숨어 있다.
▲ 태권도학과 학생들이 웬 마라톤대회?
"우석대가 어디야?"
우석대 태권도 시범단(감독 박진수) 이정아 코치(25)가 2005년 입학 당시 가장 자주 들었던 말이다. 그 다음 질리게 들었던 말이 "우석대에 태권도학과가 있어?"였다.
우석대 태권도학과(학과장 최상진) 1기 졸업생인 이 코치는 "그때는 우석대와 태권도학과를 알리기 위해 학생들이 직접 차비를 내며 장애인 행사나 마라톤 대회 등을 찾아 다녔다"며 "07학번까지는 처음 받은 메달이 마라톤 완주 기념 메달일 정도"라고 말했다.
2005년 10명으로 시작한 우석대 태권도 시범단은 현재 70명으로 규모가 커졌고, 위상은 비교할 수 없이 높아졌다. 이미 우석대는 2009년 '제1회 세계태권도시범경연대회'에서 용인대·경희대·계명대·경원대 등 전국의 내로라하는 대학 태권도 시범단을 제치고 우승했다.
태권도 하나만 놓고 봐도 실력은 최정상급이다. 현재 국기원·대한태권도협회·세계태권도연맹 등 우리나라 3대 태권도 국가대표 시범단 선수 열에 서넛은 우석대 태권도학과 학생이라는 게 이 코치의 설명. 이 코치 역시 2008년부터 국기원 시범단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 태권도 시범단, 용접기·절단기 들다
우석대 태권도 시범단은 모든 공연의 시나리오부터 음악·의상·음향·소품 작업까지 단원들이 직접 준비한다. 이번 '로미오와 줄리엣' 공연에 쓰인 성(城)도 로미오 아버지 역을 맡았던 이상철 씨(24·태권도학과 3학년·3단) 등 '예비역 단원'들이 용접기와 절단기를 빌려 만들었다. 은색 골판지로 칼을 만들고, 막대기에 테이프를 감아 창을 완성하는 식이다.
대사와 노래, 음향 등은 애초 학교 녹음실을 빌려서 하다가 나중엔 최인아 씨(22·태권도학과 4학년·4단)가 스마트폰을 이용해 전체 소리를 녹음했다. 공연 때 현장에서 배경음악 등을 틀고, 끄는 음향 편집도 오롯이 최 씨 몫이었다.
줄리엣 역의 정보라 씨(22·태권도학과 4학년·4단)는 "한번은 전문 연출가가 이를 보고, '여태 연출을 10년 하면서 음향이 마음에 든 것은 처음'이라고 칭찬했다"며 "인아가 없었다면 이 작품은 만들어지지 않았다"고 동기에게 공을 돌렸다.
이런 자급자족(?) 문화는 시범단 안에 기획부·총무부·물품부·음향부·멀티부·훈련부·의상부·미화부가 있어서 단원들이 1학년 때부터 선배들한테서 노하우를 배우고, 스스로 요령을 터득하면서 시나브로 굳어졌다.
▲ "우리는 사이보그"…연습·공연 중 부상당하기 일쑤
"인조인간이 많아요. 다들 사이보그(cyborg)예요."
이정아 코치가 줄리엣 아버지 역을 맡은 최춘만 씨(24·태권도학과 2학년·4단)를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다. 최 씨는 이번 공연을 준비하면서 무릎 십자인대가 끊어졌다. 공연 때 그는 진통제를 먹고, 보호대에 의존해 섰다. 그의 오른쪽 집게손가락도 베인 자국이 뚜렷했다. '로미오 아버지'와 공연 중 칼싸움을 하다가 입은 상처다.
"호신술 할 때는 힘을 빼고 호흡을 맞추라고 했는데, 연기에 몰입하다 보니 온몸에 힘이 들어가 타이밍이 어긋났다"고 '로미오 아버지'이자 최 씨의 동기인 이상철 씨가 말했다. 그러면서도 시범단원 치고 몸에 이런 훈장(?)이 없는 사람은 없다며 이들은 웃었다.
2009년 뮤지컬 '타타 인 붓다'에서 타타 장군 역할을 맡았던 로미오 역의 최호경 씨(22·태권도학과 4학년·4단)는 "다른 학교 태권도학과에 들어간 선·후배들이 저희 공연을 보고 '어떻게 그렇게 하냐', '정말 멋있다'고 칭찬을 할 때마다 자부심을 느낀다"며 "오랜 시간 공연을 하면서 스토리는 탄탄히 자리 잡았다. 주인공 연기도 중요하지만, 엑스트라까지 한 장면을 살리기 위해 노력하면 더 멋진 시범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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