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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여립은

정여립(鄭汝立·1546~1589). 조선 전기의 문신이자 사상가. 본관은 동래(東萊). 자는 인백(仁伯). 아버지는 첨정(僉正)을 지낸 정희증(鄭希曾)이다.

 

정여립은 1570년(선조 3) 과거에 급제하였고, 이이(李珥)와 성혼(成渾)의 후원과 촉망을 받았다. 1583년(선조 16) 예조좌랑이 되었고, 1585년 홍문관수찬이 되었다.

 

정여립은 주자(朱子) 사관이 정통으로 여겨지던 조선 사회에서 주자 사관과 배치되는 사마광(司馬光) 사관을 찬양하였고, "천하는 공물(公物)이니 일정한 주인이 있을 수 없다"라고 설파하면서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충성관 및 절대 군주를 부정했으며, 주자 성리학에 얽매이지 않고 다양한 학문을 섭렵하고 실천하고자 했다.

 

정여립의 사상은 주류에서 이탈하여 고루한 고정 관념에 도전하는 혁신적인 사상이었던 만큼, 조선의 사상계를 주자 성리학 중심으로 이끌어 가려는 세력에게는 매우 불온한 것으로 인식됐다.

 

정여립의 사상은 성리학의 이론보다는 구체적인 실천 행위, 즉 민생 문제 해결에 더욱 비중을 둔 것이었다. 또 대동계 조직 때 신분적으로 하자가 있는 인물들을 적극 수용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신분에 대해 상당히 개방적이었으며, 병법에 대해서도 꽤 조예가 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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