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은 제자와 후배를 가이없이 사랑하셨다. 습작기에는 (중략) 심지어 제목 다는 요령까지 무엇 하나 소홀함이 없으셨지만, 어떤 경로를 통해서든 일단 등단하여 기성 작가 대우를 받기 시작하면 어디에 무슨 글을 어떻게 쓰든지 참견을 하지 않으셨다."
(10쪽 '한국 현대문학의 거목' 중)'무녀도' '등신불' 등을 쓴 소설가 김동리(1913~1995)가 생전에 제자를 대하는 태도가 구체적으로 묘사되고 있다.
"용둔마을의 신동은 6세부터 10세까지 서당에서 '천자문' '동몽선습' '명심보감' '논어' '맹자'를 읽었다. 이 신동은 상상력도 수준이 높았다. (중략) 하늘에 총총한 별마저 먹을 것으로 보여 별을 따달라고 울어 보챈 기억도 있다."
(73쪽 '5세 신동의 50년' 중)는 부분은 시인 고은(78)의 어릴 적 이야기다.
이처럼 한국 현대 문학사의 한 장을 장식한 문인들의 삶과 일화를 생생하게 그린 이는 바로 '관촌수필'의 작가 이문구(1941~2003)다.
당대 문인과 누구보다 폭넓게 교류한 소설가 이문구가 동료 선후배에 대해 풀어놓은 이야기가 '이문구의 문인기행'(에르디아 펴냄)이라는 책으로 묶여 발간됐다.
책은 이문구가 생전에 잡지 등 여러 곳에 남긴 글 가운데 현대문학의 주요 문인에 대한 자료만 모았다.
이 책의 편집주간인 시인 이흔복은 "이문구는 동료 문인에 대해 무척 깊은 애정을 갖고 있다"며 "문인에 대해 잘 알고 또 그 이야기를 재미있게 쓸 작가는 이문구외에 없다고 판단했다"고 책 발간 배경을 설명했다.
김동리, 신경림, 고은, 한승원, 염재만의 인물평은 1부에 실었고 2부에서는 박용래, 송기숙, 조태일, 임강빈, 강순식 작가의 단행본에 쓴 발문을 모았다.
우리말 특유의 가락이 담긴 글로 유명한 이문구는 각 인물에 대한 애정을 듬뿍담아 유장한 문체를 펼쳤다.
구수한 입담과 해학을 토대로 문인 세계의 풍경을 전한다.
특히 이문구와 친분이 두터웠던 시인 박용래와의 일화를 담은 글에서 이런 분위기가 잘 드러난다.
"그는 조상 적 이름의 풀꽃을 사랑하여 풀잎처럼 가벼운 옷을 입었고, 그는 그보다 술을 더 사랑하여 해거름 녘의 두 줄기 눈물을 석 잔 술의 안주로 삼았다. 그는 그림을 사랑하여 밥상의 푸성귀를 그날치의 꿈이 그려진 수채화로 알았고, 그는 그보다 시를 사랑하여 나날의 생활을 시편의 행간에 마련해두고 살았다."
(91쪽. '내가 왜 울어야 하나' 중)흥겹고 유려한 문장으로 박용래의 삶을 노래한 그는 박용래의 눈물에 얽힌 일화, 시인 정지용이 자신의 고향 선배인지도 모르던 한 시인을 호되게 꾸짖은 일 등 다양한 에피소드를 전하고 있다.
이어 3부에는 이문구가 '월간문학' 등에 작가 탐방을 주제로 연재한 글이 실렸다.
황석영, 박상륭, 김주영, 조선작, 박용수, 이정환에 대한 글이다.
마지막 4부는 박태순, 서정주 등에 대한 실명 소설 추도사를 담았다.
328쪽. 1만3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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