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양병원에 근무하다보면 고혈압이나 당뇨병약을 잘 드시지 않아서 뇌경색, 뇌출혈 등의 합병증이 발생하여 급성기 병원에서 치료 받고 사후관리를 위해 입원하는 어르신들이 많지만, 가끔은 약에 너무 의존해 부작용이 발생하여 오시는 경우도 있다.
68세 박할머니가 그런 경우셨다. 할머니는 자택에서 요양보호사의 간호를 받던 중 의식상태가 점차 나빠져 입원했다. 평소에 척추의 압박골절과 요통으로 종합병원 정형외과에서 장기간 처방약을 복용하는 중이었다.
그런데 복용하는 약을 모두 가져오도록 해 확인한 결과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환자가 수개월 동안 복용한 약은 하루 3번, 한번에 열여섯알이었다. 정형외과 약 외에도 치매와 뇌기능 개선을 위한 신경과 약, 요실금으로 비뇨기과 약, 속쓰림으로 위장약까지 총 4개 진료과에서 하루 48개의 알약을 복용했던 것이다. 게다가 환자의 약보따리 속에는 언제 지었는지도 모를 정체불명의 환약도 있었다.
"약만 드셔도 배부르셨겠네요" 했더니 꾸벅꾸벅 졸던 환자가 "그래도 그 약을 먹어야 살아"라며 약에 대한 강한 집착을 보이셨다.
환자를 수일에 걸쳐서 설득해서 꼭 필요한 약 이외의 약은 모두 중단하도록 하고 한번에 5알 정도로 줄이고, 비타민제와 철분, 칼슘 등 노인에게 꼭 필요한 영양제를 보충해줬다. 한 달 정도 지나니 어지럽고 기운 없고 졸리기만 하다며 계속 누워있던 환자가 워커를 사용해서 걷는 등 활동을 잘 했다.
"전에 드시던 약 또 드시고 싶으세요?" 했더니 할머니는 "안돼. 그렇게 다 먹으면 약이 독이 되지" 하면서 계면쩍게 웃었다.
노인 환자는 신장과 간의 기능이 젊은 사람과 달라 주의를 더 기울여야 한다. 그럼에도 여러 가지 질병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아 약을 많이 먹게 되고 약물 상호작용과 부작용들이 발생하기도 한다.
요양병원의 내과의사로서 내가 하는 일이 환자의 증상에 따라 주사와 약물을 처방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은 환자가 기존에 복용하던 여러 군데 병원에서 처방받은 약을 정리해주는 일이다.
'과유불급'이란 말이 이런 경우에 적합한 말인 것 같다.
노인 환자를 대할 때 꼭 다음 수칙을 지켰으면 한다.
첫째, 약은 꼭 필요한 약만 처방하고 알수를 줄인다. 둘째, 약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영양, 총칼로리는 줄이되 단백질 섭취비율은 늘리고 비타민과 무기질을 보충해 준다. 셋째, 최대한 신체활동량을 늘리게 노력하면서 와상환자라도 침대에서 팔운동이라도 해서, 열심히 운동해야 혈액순환이 잘 되고 근력이 유지된다는 점을 인식시킨다. 넷째, 고혈압, 당뇨병, 우울증, 빈혈, 골다공증 등이 발생하는지 관심을 가지고 잘 파악한다. 다섯째, 가족과 의료진이 관심과 사랑을 가지고 치료하고 있다는 것을 반복해서 알려주고 손과 등을 자주 만져주고 다독여 준다 등이다.
정치경제적으로 격동기에 젊은 날 고생이 많으셨던 우리의 부모님들은 역사의 뒤안길로 밀려나는 지금, 많이 외로우시다. 따뜻한 말 한 마디, 전화 한 통, 따뜻한 몸짓 하나가 주는 효과는 우리가 상상하는 그 이상이다.
더불어 전문의사와 상의해 치매와 노인병 예방에 효과가 입증된 비타민과 무기질이 함유된 영양제를 선물해 드리는 것도 좋은 일일 것 같다.
/ 김정은(효사랑전주요양병원 내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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