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로 보면 스스로자(自)에 그러할 연(然)이다. 다시말해 본능적 자연스러움을 의미 한다.
전주의 다양한 곳을 다각적 추억으로 스케치를 해보았다. 손목시계 귀하던 시절 중앙동 소방서망루 오포소리에 맞춰 점심을 서둘렀고, 전라북도 인구 250만 시절 노송동 전주역사에서 23시30분 용산 발 기적소리에 알싸한 서글픔을 안았던 적이 있었다.
적송이 즐비한 덕진 왕릉의 가을소풍, 도민체전에 동원되었던 초·중학교시절 카드섹션, 종합경기장 남쪽 담 벼랑에 기대어 지독한 현기증을 풀던 포플러 그늘 밑은 지금 생각해보아도 흑백사진 중에서 소중한 편린이다.
우전동네 앞 물길은 은행잎이 노랗게 물드는 시점이면 오줌싸게 막내를 위해 미꾸라지 잡아 연탄불에 구워내던 일과 송천동에 살고 있는 술 참봉 박씨는 자신의 주량을 저울로 달아보기 위해 35사단 앞 막걸리 집에서 한잔으로 시작하여 오후 노을이 질 무렵, 중앙시장 육교 밑에서 토악질 후 두 다리 뻗고 퍼져버렸다는 아슴한 술꾼 이야기도 스케치에 올려본다.
전주의 자연스러움은 가슴에 존재하고 있지만, 현재의 전주거리 현상(現像)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얼마 전 전주비빔밥축제가 있어 연일 한옥마을에서 진을 치고 있었다.
옛말에 ‘산천은 유구 한데 인걸은 간데없다’ 라는 말이 거꾸로 다가왔다.
경기전을 중심으로 한옥마을에는 지역 외에서 많은 사람들이 대거 몰려왔다. 무엇 때문에 이곳을 찾고 있는 것 일까?
나름대로 여러 가지 이유야 있겠지만, 어쩌면 천년 고도 전주에서 전주만이 안고 있는 정취와 역사적 현장을 보다 자연스럽게 느껴보기 위해서가 아닐까 하고 생각해보았다.
자연스러움을 자연스럽게 기획하고 보완해 가는 것만이 미래지향적인 전주의 자연스러운 문화 환경을 살리는 일이라고 생각이 들어서 이다.
전주의 상징이 되어가고 있는 한옥마을에 무늬만 기와인, 강판 지붕이 참으로 어색하지 않을 수가 없다.
전주 역사 문화정서에 촉촉함을 채우기 위해서는 한옥마을 안에는 각설이패도 필요하고, 기마 순찰단도 필요하고, 엿장수와 장돌뱅이 소리꾼도 필요하다. 돈 많이 드는 거창한 무대보다는 한옥마을 곳곳에 쌈지 광장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차가운 사랑방에 불을 지피듯 전주의 자연스러움을 그렇게 지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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