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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와 비애 있는 詩 쓸 수 있도록 분투하겠다"

시 당선소감

▲ 이영종

1961년 정읍 출생

우석대 대학원 문예창작학과 재

호남제일고 교사

2011년 크리스마스 저녁이었다. 마음의 모든 정물들을 설레게 했던 당선 통보를 받고, 나는 산양이 바위를 건너는 법을 생각했다. 약속한 것은 아니었지만 해거름에 전화해도 그냥 한 잔 할 수 있는 사람처럼 늘 거기 있을 것 같은 산양의 눈망울을 떠올렸다. 산양이 아니라면 건너기 힘든 바위를 딛고 사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하나의 법을 알았다 했더니, 어느새 새로운 바위가 나를 기다리는 날이 지속되고 있다. 결국 바위를 건너는 법을 다 알지 못하고 가고 말 것이다. 하지만 살아있는 한 지속되어야 할 고통스럽고 즐거운 일이다.

 

내가 사는 곳은 눈이 많이 내린다. 겨우내 이 땅의 주인은 사실 눈이다. 내가 아끼는 나무를 부러뜨려 눈을 흘기면 "내 것 내 맘대로 하는데 네가 무슨 상관이야."라고 말하는 듯 처마에 고드름을 수십 개나 매달아 놓은 적도 있다.

 

나는 하루 종일 집에 갇혀 있거나 엉금엉금 친구를 만나러 나간다. 원래 만나려 했던 친구를 나는 늘 만나지 못한다. 그가 이 땅에서 살았던 자취를 거두어 자기 땅으로 망명해 버린 지 몇 해가 되었기 때문이다. 13권 대하소설 '마적'을 마치고 삶 또한 마친 친구 서 권은 지금도 눈 내리는 감나무 가지에 와서 내 집 개를 밤새워 짖게 한다. 나가 담배를 피워 그와 소통을 하는 일이 뜸해졌다. 그도 이제 돌아갈 곳을 찾았는지도 모른다.

 

심사위원들께서는 관계를 성찰하여 희열 가득한 세계를 창조할 수 있는 면허증을 내주셨습니다. 재미와 비애가 있는 시를 쓸 수 있도록 분투하겠습니다. 오랫동안 시를 쓴다 하였지만 눈 뜨지 못한 나에게 점안을 해주신 안도현 교수님, 아낌없는 비판을 해주었던 우석대학원 문예창작학과 문우들께 금오도를 드립니다. 내가 살았던 날들을 빨래처럼 비틀면 흘러나올 물 색깔이 거의 똑같을 나의 친구들, 함께 젓가락 딸그락거리던 어머니와 아내, 식구들께는 무엇을 드려야할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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