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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죽했으면 굶겼을까' 그렁그렁 눈물 삭힌다

소 키우는 詩人이 전하는'소 값 사태'

▲ 김유석…시인

새벽장에 소를 내고 돌아오는 박 노인의 걸음을 싸락눈이 받는다. 네 발 달린 짐승의 것처럼 비척비척 찍히는 발자국을 쓸어대는 바람의 싸리비질 소리, 무언가를 눌러 참듯 자꾸 밭어내는 노인의 헛기침을 안동하고 몇 걸음 앞서 돌아오는 것이 있다. 꽝꽝한 겨울 새벽 집을 떠나면서 떨구고 간 울음이다.

 

소는 세 번 운다. 밥 달라 울고, 새끼 젖 떼 낼 때 울고, 한 번은 팔려가면서 우는데 그 울음은 들리지 않는다. 사래 길던 그 봄날이야 쟁기 끌며 막심 쓰느라 울기도 하였지만 요즘 소들은 그 밖의 따로 울 일이 없다.

 

소와 더불어 한평생이다. 박 노인에게 소는 생의 동반자이고 식구였다. 꼴 베던 유년에서 입때까지 노인에게서는 늘 외양간 냄새가 났다. 근동 사람들이 노인의 집을 '소집'이라 부를 만큼 문간 달개집에서부터 제법 근사한 오늘의 우사에 이를 동안 하고 많은 소들을 정들였다. 화답하던 농부가 한 소절이 있고 소에 딸려 여읜 자식들이 있고 따라지 끗발을 죄던 노름판 기억 속에도 애꿎은 소가 있었다. 고삐를 받아내지 못하는 늙은 힘을 팔았고, 배고픈 식솔들의 울음을 대신 팔았고, 어쩌다 흑사리 껍데기에 어린 새끼 생젖을 떼 내기도 했지만, 오늘 정읍(井邑)장에 내다 판 것은 무엇일까.

 

코뚜레를 뚫지 않으면서부터 소는 사람에게서 버림받았다. 기계화에 노동력을 빼앗긴 힘은 거친 숨을 내몰던 들판 대신 좁은 축사에 갇혔고 풍경 딸랑거리던 정경은 동화 속으로 사라진지 오래 됐다. 가계의 기둥이던 사실도 먼 옛말, 허구헌 날 살 오르기 위해 죽음을 반추하면서 좁고 차가운 시멘트 바닥을 바장거려야하는 오늘의 소들은 단지 인간의 먹이일 뿐으로 전락해버렸다.

 

소를 치는 농투성이들은 안다. 젖떼기가 무섭게 거세를 당해야 하는 수소들의 비애를. 생이랬자 고작 30개월 남짓의 세월을 발정은 커녕 황소답게 힘 한 번 못써보고 고깃덩이가 돼야하는 언니(?)들. 암소들은 또 어떤가. 인공수정으로 애비 모를 씨를 받아 젖을 물리다가 뿔도 돋지 않은 것들을 떠나보내야 하는 몇 번의 생이별뿐인 일생, 잘못되어 사산이라도 하는 날엔 주인 눈살에 울음을 삼키며 죽은 새끼를 미친 듯 핥아대는 모습을 지켜보지 않았는가.

 

참으로 '수상한 시절'이라는 걸 박 노인은 안다. 몇 차례 고비가 있었지만 구제역이란 전염병과 외국산 소의 쓰나미에 오늘처럼 위태롭게 내몰린 적도 없었단 것을 소들도 잘 안다. 사료 값은 이래저래 오르기만 하는데, 소 값은 일 년 만에 반으로 폭락해버리는 어떤 나라의 살림살이가 기막혀 주인도 웃고, 소도 웃는다. 사람은 굶어도 거느린 짐승은 굶기지 않는 법, 오죽했으면 자식 같은 소를 굶겨 죽였을까. 빚덩이만 얹는 사료 값 때문에 헐값에라도 어쩔 수 없이 팔아야 하는 심정을 알기나 하듯 커다란 소의 눈망울에 그렁그렁 눈물이 고인다.

 

소를 키운 지 다섯 해, 몇 마리 소를 우시장에 끌고 가기도 했지만 아직 소가 울음을 삭혀듣지 못하는 내가 소 대신 울어본다. "X발, X발." 그렇게 운다.

 

△ 김유석 시인은 고향인 김제에서 소를 키우면서 시를 쓰고 있다. 1989년 본보 신춘문예(시 부문)로 등단했으며, 시집 '상처에 대하여'(2005)를 출간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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