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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상축제

이근영 삼도헌 운영실장

 
밥은 지어먹는 밥, 사 먹는 밥, 얻어먹는 밥 등이 있다. 명색이 '일하는 여성'이란 자부심으로 살아 온 나는 시어머니, 시누이, 친정언니로부터 얻어먹는 밥과 사먹는 밥을 위주로 하고 지어먹는 밥은 대충 때우며 살 수 있었다. 그러다보니 양가 부모님은 물론 자식, 남편에게도 내가 지어서 밥상 한번 근사하게 차려준 기억이 없다. '남 돈 받고 일하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어렵다.'는 말을 무슨 신념처럼 가슴에 새기며 스스로 당당하기까지 했다. 때문에 늘 내게 특별한 밥상을 준비한다는 것은 '이름난 새로운 식당'을 찾는 것이었다.

 

그러다 우연한 기회에 밥하고, 청소하고, 빨래하고, 하룻밤 가족을 돌보고 등 '살림'하는 것이 직업이 되었다. 그리고 '일'로 '밥'을 짓는다. 참으로 신기한 것이 '내 집안일'로는 손이 안 가던 똑같은 일들이 '월급 나오는 회사일'이 되니 하게 되더라는 것이다.

 

그리고 비로소 보게 되었다. 지어먹는 밥의 풍성한 축제를. 일단 모든 밥상을 차리기 위해선 처음에 기획이 필요하다. 왜 밥상을 차리는가(기획의도), 누구를 위한 밥상인가(대상), 몇 명이나 되는가(규모), 어떤 메뉴를 올릴 것인가(프로그램), 언제어디서 준비하고 먹을 것인가(일시와 장소). 기획이 끝나고 나면 다음엔 운영이다. 참가자들에게 언제 어디서 무엇을 먹게 될 것인지 연락하고 참가를 확답 받고(섭외), 예산범위 내에서 참가자의 기호를 고려하여 식재료를 구입하고, 정해진 시간 안에 음식을 준비한다. 시간이 부족하면 일손을 구하기도 한다. 친구나 언니, 이웃 등 자원봉사자 일 수 도 있고 임시 전문인력(도우미)을 청할 수도 있다.

 

드디어 시간이 되면 밥상축제가 시작된다. 약속된 사람들이 자리에 앉고, 밥상이 차려진다. 밥을 푸고, 국과 찌개를 나르고, 식사를 하며 음식과 음식을 준비한 사람에 대한 칭찬과 평가와 오간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밥상 앞에서는 칭찬할 말을 찾으려 애쓴다. 싱거울 경우에만 소금을 찾는 경우가 더러 있을 뿐이다. 초대받은 사람들이 밥상에서 물러나면 주인은 안도하며 축제 뒷정리, 즉 설거지를 시작한다. 이것도 매우 중요하다. 잘 마무리를 해야 다음 밥상을 차릴 때 손이 덜 간다.

 

자, 여기까지가 한 번의 밥상축제다. 이 축제의 특징은 매일 매일한다는 것이다. 심지어 는 참가자 규모가 작던 크던 간에 하루에 두 세 번씩 평생 열릴 확률이 매우 높다. 또한 이 축제의 기획과 구성과 연출과 운영책임자는 매번 똑 같은 '한 사람'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 밥상축제에 초대되는 사람은 그 '한 사람'이 가장 사랑하는 가족, 친지, 동료, 친구들일 것이다. 그들이 가장 자주 이 축제의 참가자이자 평가자인 것이다.

 

결국 그 '한 사람'이 매일 매일을 차질 없이 '상설로 밥을 지어 상을 차린다.'는 것은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을 '온전히 살리는 일(살림)'이 틀림없다. 앞으로 나 같은 따위가 '일하는 여성'과 '살림하는 여성'이라 편 가르는 일이 있더라도 잊지 않길 부탁한다. 당신은 TV에 나오는 그 어떤 성공한 여성보다 가치 있는 '밥상축제의 평생 총감독이자 연출가'라는 것을.

 

추신 : 문화마주보기 첫 번째 글을 15년째 밥상한번 못 차려 드린 막내며느리가, 존경하는 시어머니에게 바친다.

 

△이근영 실장은 전주세계소리축제 공연기획팀장과 문화체육관광부 아시아문화중심도시추진단 마케팅분야 전문관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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