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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의 香 - 젊은 예술가와 섬진강 동행

강은 사람을 품고 사람은 강물을 따라 자연과 벗하니…나만의 작은 물줄기를 만나다

▲ 임실 덕치면 구담마을 정자 위에서 바라본 섬진강 풍경과 작은 징검다리를 가로지르는 강굽이는 한 폭의 그림 위에 활력을 불어 넣는 듯 하다. 안봉주기자 bjahn@

2009년 프랑스 믹스아트 미릭스(MIXart Myrys)에서 아티스트 레지던시를 마치고 돌아온 후 힘겨운 시절을 보내고 있었다. 외국작가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생애 또 한 번의 거대한 폭풍을 만난 것이다. 다양한 예술장르와 고유한 경험과 사상이 섞이고 나뉘고 다시 뭉쳐 거침없이 작품으로 품어져 나오는 '즉흥과 통섭의 에너지'는 감당할 수 없는 거친 폭풍 그 자체였다. 세상의 몇 가지 담론과 모순, 삶과 예술 사이의 간극이 있다는 사실만 지레짐작 할 뿐……. '어디로 가야하는지? 왜 가야하는지?' 묻고 또 물으며 나침반 없는 폭풍의 소용돌이 안에 머물러 있었다. 세상은 마치 큰 강물과 같았고, 그 물살에 힘없이 떠밀려 어디로 가고 있는지도 모를 하나의 작은 부유물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물가에 뿌리를 단단히 박고 지난 폭우에 불어난 거친 물살을 견뎌내며, 가뭄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서있는 적송 한 그루가 부러웠다. 그런 나무가 되고 싶었던 게다!

 

 

▲ 임실 덕치면 구담마을 매화꽃 피는 언덕.

 

▲ 전남 구례 섬진강 화개장터, 지리산 쌍계사 가는 길목의 풍경.

△ 섬진강을 만나다

 

어느 날, 배낭 한 짐 들고 무작정 집을 나선다. '어디로 가야할지? 무엇을 위해 가야하는지? 얼마나 가야하는지?'는 잠시 접어두고 묵묵히 걷는다. 해질 무렵 진안 데이샘 작은 물줄기가 모여드는 섬진강 상류의 운암 옥정호를 만난다. 그 시절 섬진강과 젊은 예술가의 만남은 필연인 듯했다. 섬진강 물줄기를 만난 그 날부터 어깨에는 배낭 하나, 마음속에는 무엇인지 모를 물음표 하나를 짊어지고 9박 10일간 섬진강과의 동행이 시작된다.

 

섬진강 물줄기를 찾아 강진으로 넘어가는 고갯길에서 임실 필봉농악전수관에 들러 물 한 모금 얻어먹으니 민주화운동이 한창이던 시절에 풍물패 이야기와 풍물패와 농민운동 그리고 우리나라의 민주정신이 한데 얽히는 대서사시를 덤으로 얻어간다. 긴 오르막길에 지쳐서 손짓 발짓하다 얻어 탄 어느 작은 학교 교장선생님의 자동차안에서는 강진의 고향마을 이야기와 강진면 다슬기해장국 맛의 풍미를 듣는다. 그리고는 강진 시외버스 터미널 맞은편에 오래된 다슬기해장국집(성심회관)에서 기어이 국밥 한 그릇 먹여주시는 인정을 맛본다. 섬진강은 강이 아니라 사람을 품고, 역사를 품고, 문화를 품어 안은 그릇이구나! 해질녘 이름 모를 717번국도 간이 버스정류장에서 잠을 청하면서 문득 생각한다.

 

천담. 구담리를 넘어가는 고개 길은 정말 고약하다. 비까지 내리는 날은 더욱 약이 오른다. 하지만 계곡 따라 구비치는 섬진강 물줄기와 매화 향내 물신 나는 구담마을의 진경을 만날 수 있다니 어찌 반갑지 않겠는가? 구담마을 정자 위에서 바라본 장구목 너머의 작은 징검다리를 가로지르는 굽이진 강은 한 폭의 그림 위에 활력을 불어 넣는 화룡정점이다.

 

임실을 지나 동계, 섬진강 본류와 팔공산 작은 물줄기들이 모인 오수천이 적성강을 이루기 위해 내려가는 길목에 구남교가 있다. 동네 어른들이 다리 위에 낚싯대를 널어놓으신다. 적성강은 바위가 깔린 계곡을 지나면서 많은 모래흙을 싣고 와 넓은 모래밭을 형성했는데 예전에는 이곳에서 은어들이 많이 잡혔다고 하신다.

 

섬진강은 순창에서 또 한 번 사람을 품어준다. 섬진강 상류의 오염되지 않은 지하 암반수는 햇볕 좋은 순창의 땅에서 자란 고추를 우리민족의 고유의 전통발효식품으로 만들어 주었다. 그 맛이 세계일품인 이유 중 하나가 섬진강이다.

 

섬진강은 순창을 지나 전라도 계를 넘어 목과에서 입천(순자강)을 만난다. 그리고 곡성에서 요천과 합류하여 구례로 흐르는 큰 강을 이룬다. 이곳에서 섬진강의 약수는 지리산 정기와 더불어 쌍계사 계곡 야생차밭의 새순을 키우고, 마을 사람들은 절기에 맞춰 정성껏 우전 세작 중작 대작을 따고, 덖고 우려내어 다관과 찻잔에 한가득 자연의 풍미와 이치를 느낄 수 있게 해준다.

 

하동에 이르러 화개천과 합류한 섬진강은 과거 경상도와 전라도를 아우르며 지역특산품과 사람을 실어 나르는 뱃길로 삶의 터전을 만들어 주었기에 화개장터가 형성되었고, 남해의 수산물이 섬진강의 수문을 통해 교역하는 통로의 역할을 해주었다.

 

진안 백운면 데미샘으로부터 시작된 작은 물줄기가 전라도 너른 땅과 계곡 500리를 흘러 하동에 이르니 비로소 섬진강이라 불리게 된다. 섬진강은 80리 하동 하얀 모래위를 지나 광양만 남해 앞바다로 나아간다. 그리고 본래 가야할 또 다른 여행을 바다와 함께 다시 시작한다. 열흘간의 섬진강 동행은 섬진강대교 길목에서 이렇게 끝난다. 저 멀리 보이는 광양제철소의 풍경과 바다 내음을 맡으며 섬진강을 뒤 돌아본다. 그리고 묻는다.

 

 

△ 섬진강에서 나만의 물길을 찾다

 

섬진강은 나에게 무엇인가?

 

무작정 집을 나오면서 짊어진 무엇인지 모를 물음은 무엇인가?

 

삶의 길, 예술의 길을 묻는 젊은 예술가에게 섬진강은 고요히 침묵을 지킨다. 하지만 섬진강은 짧은 동행중에 보여주었다. 섬진강 물길은 이렇게 흐르고, 섞이고, 구비치고, 모여서 넓은 바다로 간다고…….

 

세상의 흐름과 거친 물살을 이겨내며 홀로 견디는 적송 한 그루가 되기보다는 내 스스로가 데미샘의 한 방울의 물이고, 강을 이루고 바다를 이루는 섬진강 그 자체임을 바라본다면, 저 멀리 프랑스에서 '예술의 즉흥과 통섭'으로 느낀 경험을 섬진강처럼 사람과 역사, 문화를 품는 그릇을 되어 담아내어야 할 일이 젊은 예술가가 가야할 물길이 아닐까?

 

그래서 섬진강처럼, 젊은 예술가는 형식이 만들어 놓은 예술장르의 틀을 품어 안을 그릇이 되어야 한다. 섬진강처럼 흙, 모래, 바위, 계곡, 개흙을 만나 거침없이 하나 되어 이 모든 것들을 스스로 통섭하듯 세상의 삶과 개념의 모순을 섞고, 현실과 이상의 괴리에 거침없이 부딪치고, 너와 나의 다름을 만나서 본디 우리 시대를 담아내는 물길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유유히 흐를 나만의 작은 물줄기가 되어야 한다. 더불어 다른 물줄기와 함께 흘러 바다로 또 다른 여행을 시작하는 삶을 생각해야한다. 섬진강은 젊은 예술가에게 모든 것을 품어 안은 그릇이며, 그 것을 물길을 통해 증명해준 스승이 되어 주었다.

 

△ 다시 섬진강을 만나다

 

▲ 송대규(전북일보 문화전문시민기자)

강은 사람을 품고 사람은 강물을 따라 자연과 벗하니 온전한 공생이라.

스스로 품은 모든 것에 한 몸 다 내어주고 바다를 이루니 상선약수(上善若水)의 변이 명언일세.

데미샘 아래 작은 물줄기가 바다가 되는 광양만 섬진강대교에서

수순하게 쓰이고 흐를 나만의 작은 강줄기 하나 생각한다.

송대규(전북일보 문화전문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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