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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목일 단상

▲ 안 평 옥 시인·전북임우회 회장

4월이 되면 지금도 설레는 마음에 가끔은 소주잔을 기울이곤 한다. 결코 짧지 않은 40년의 공직생활, 그 안의 숱한 사연과 애환이 뇌리를 스친다. 생각하노라면 공직(公職)에서 물러난지 10년 사이 하얗게 변해버린 머리칼이 거울 너머에서 배시시 웃고 있다. 약관을 갓 넘어 시험에 합격한 이름이 자랑스럽게도 활자화된 신문과 합격통지서며 임명장, 발령통지서, 임용장 등을 보노라면 그동안 공사 간에 시행착오로 물의를 야기했던 일들이 주마등같이 스쳐 지나 간다. 때로는 추억을 더듬는 입가에 쓴웃음이 맴돌곤 한다.

 

1964년 12월 1일 5시간에 걸쳐 버스에 몸을 싣고 말로만 듣던 오지의 대명사 격인 무주군으로 초임발령을 받았다. 이후 벌거벗은 산을 녹화해야 한다는 당시 대통령 박정희의 의지에 따라 적게는 50~60ha 많게는 200여ha가 넘는 광대한 면적의 책임을 맡았다. 아침에 걸친 운동화를 밤이 되어서야 벗었던 일들이 지속되면서 지금도 가슴 아픈 일은 보릿고개에 끼니거리가 없는데도 주민들을 강제로 동원해 조림했던 일이다. 그 후 480-양곡이라 하여 약간의 밀가루를 지급했으나 주린 배를 채우기에는 턱없이 부족했었다. 그러면서도 땔감 문제를 해결해야 산림녹화가 이루어진다며 빨리 자라고 베어내어도 움이 돋아나 다시 심지 않아도 되는, 당시로서는 최상의 선택이라고 자부했던 아카시아 리기다소나무 오리나무 상수리나무를 한그루한그루 정성을 다해 심었다. 그때 동원됐던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미안하다는 생각을 지울수가 없다. 지금쯤은 이승보다 저승에 더 많이 계실 그분들이야말로 이 땅의 진정한 치산녹화의 역군이었음은 아무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가 하면 우리의 의사와는 전혀 상관없이 각종 선거나 추곡수매에 응하도록 쥐꼬리만 한 권력을 휘둘러 주민들로부터 지탄을 받은 일들은 두고두고 사죄해도 모자랄 것이다. 그러나 심은 나무는 뿌리가 내리고 텅 빈 허공을 채우려는 듯 하늘로 치솟아 올라 산마다의 푸르름이 꿈과 희망을 불러와 가뭄과 홍수가 조절되면서 격양가 소리가 드높았다. 때맞추어 나타난 19공탄에 이어 석유와 가스가 등장하면서 연료의 산림의존도가 점차 줄어들어 전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속성 산림녹화를 이룩하게 되었다. ha당 임목축적 등 그간에 이룩한 계량적(計量的) 수치의 나열은 생략하더라도 요즈음의 조림을 보면 다목적에 주안점을 두면서 목재와 삼림욕에 최고의 수종인 편백 삼나무에 속성목재수인 백합나무 낙엽송, 유실수로는 호두 대추 감나무 잣나무를 식재하고 약용수종인 헛개나무와 경관수인 은행나무 단풍나무 느티나무 층층이나무 등을 식재하는 것을 보면서 격세지감을 느낀다. 근시안적이었던 선배들을 감싸 안아주느라 열심히 일하고 연구하는 후배들의 모습이 참으로 대견하고 자랑스럽다.

 

다른 직종과는 달리 뻗어나감에 한계가 있어 때로는 절망과 자조 섞인 한숨이 나도 모르게 나오는 것이 사실이지만 좌절하거나 스스로를 비하하지 말기를 바란다. 또한 나무를 심는 때가 되면 여기저기서 산불이 함께하는 어려움을 긍정적인 즐거움으로 승화하는 모습을 보면서 주민들도 기꺼이 동참하여 주리라는 믿음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어쭙잖은 선배라는 이름으로 후배들의 직분에 대한 끝없는 가치창출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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