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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문을 열어다오

백화점 점포와 미술관 전시실은 창문이 없다. 백화점은 구매력의 은근한 강요를, 미술관은 햇볕을 차단하여 그림을 보호하고 시력의 분산을 막아 집중력을 조성하기 위해서다. 문은 집에서 사람이 드나들거나 여닫도록 된 시설이고, 창문은 채광이나 통풍을 위해 벽에 낸다. 한옥의 문은 열어야 밖이 안으로 들어오고 양옥의 문은 열지 않고도 밖을 볼 수 있다. 한옥이나 초옥이나 우리가 살던 집은 자연을 보는 대상이 아니라 온몸으로 맞이하는 구조를 갖고 있다. 햇빛과 달빛, 그리고 바람을 한 겹 창호지 문으로 걸러 받아들이고, 보고 싶으면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창호지를 바른 문이나 창문은 여닫이, 미닫이, 봉창, 뙤창이 있다. 봉창은 열지 못하는 문이다. 봉창을 방의 어두운 뒤쪽에 있어서 채광의 역할을 하기도 하고 한편이 막힌 방의 답답함을 풀어주었다. '저놈 자다가 봉창 뜯는다'는 말은 잠결에 나갈 문이 아닌 열리지 않은 봉창을 뜯는다는 말이니, 상황을 전혀 모르고 엉뚱한 짓을 하는 사람을 이르는 말이다. 봉창은 잔 돌멩이를 던져 애인을 불러내기기도 하는 낭만의 달콤한 창구이기도 했다. 밖을 내다보기 위해 손바닥만 한 유리를 문에 붙인 공간을 뙤창이라고 한다. 뙤창은 사시사철 시시때때로 밖의 상황을 관찰하고 참여하는'환한 소통의 창구'였다. 봉창이나 뙤창이나 창문이나 문은 안에서는 밖을 향한 소통의 창구지만 밖에서 보면 건축의 외벽을 지루하지 않게 꾸며주는 미적인 장치이기도 했다.

 

건축에서 창문과 문은 세상과의 소통과 그리고 적절한 단절을 생각하기 때문에 건축의 핵심 중의 핵심이다. 창문과 문을 어디로 내느냐에 따라 생활의 내용과 생각이 달라진다. 한옥은 주로 앉아서 지내기 때문에 문턱이 낮고, 양옥은 의자에 앉아 지내는 시간이 많기 때문에 창틀이 높다. 그러나 지금은 양옥들도 창문을 방바닥에서부터 시작되어 천장에 까지 닿는 통유리로 만들어지고 있다. 현대건축에서 창문과 벽의 개념이 지워지고 있다. 어떻게 하든 자연을 안으로 끌어들이려는 노력이 거의 필사적이다. 통유리 벽으로 밖을 안으로 최대한 끌어들이고 어떤 건축물은 통유리를 열어 젖혀 밖과 안의 경계를 지워버리기도 한다. 자연에 목마른 현대인들의 삶의 반영이다.

 

도시근교의 카페나 레스토랑들은 보면 한눈에 모든 풍광을 보려는 욕심으로 시선을 어수선하게 만들어버리기도 하고 다시 더 볼 수 없는 신비로움을 없애 풍경을 무심하게 해 버리기도 한다. 신비함이 사라진 사랑이 죽은 사랑이듯, 새로움이 없이 습관이 된 풍경은 죽은 풍경이다. 절정을 아껴두고 수고를 통해 경치를 감상했던 옛날의 정자들을 생각해 볼 일이다. 단 한 번의 시선으로 모든 경치를 보지 말고 절정을 비껴 창문을 내고, 보기 좋은 나무나 호수나 산이 있는 쪽으로 다양한 크기와 모양의 액자창문으로 밖의 풍경을 담아야 한다. 집에서 가족들이 가장 오래 머무는 곳에서 바라보는 창밖 풍경이 그 집의 중심이다. 창문은 풍경을 담는 액자다. 창문은 밖의 경치를 고정시켜놓은 틀이 아니라 다가가고 들여다보고 내다보고 고개 돌려 볼 때마다 달라 보이는 액자 역할을 한다. 보는 각도에 따라 거리에 따라 시선에 따라 변화무쌍한 풍경을, 아니 살아 있는 그림을 그려 주도록 해야 한다. 모든 것들이 다 그렇듯이, 아름다움을 보고 곁에 두고 싶은 욕심과 자연에 대한 두 손 모은 겸손, 의도와 무심이 격을 높이고 품격을 갖추게 한다. 창문이 마음의 문을 열어 세상을 맞이하고 세상으로 나를 내 보내는 문이다. 건축은, 건축주가 세상을 어떻게 살아왔고 어떻게 살고 있고 어떻게 살아갈지를 보여주는 건축주의 철학이 고스란히 담긴다. 창문을 열어다오. 햇빛과 바람, 그 일기가 만들어 낸 창문의 1년과 하루는 길고도 길다. 수 없이 많은 세월과 일들이 그 창문에서 일어나고 소멸한다. 문득, 눈 안으로 들어선 풍경이 경이로워야 나의 창문이다.

 

/본보 편집위원

김원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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