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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나무 3

곶감을 만들 때

 

꼬챙이에 감을 열 개씩 꽂았는데

 

아버지는 어쩌다가

 

열한 개씩을 꽂기도 했다

 

아이들을 위한 배려였다

 

곶감을 깎고도 감이 남으면 병아리를 키우는 덧 가리나 커다란 소쿠리에 감을 담아 짚으로 따듯하게 덮어 높은 감나무 위나, 지붕위에 얹어 둔다. 그렇게 보관한 감을 눈 속에 파묻어 두었다가 감이 돌멩이처럼 단단하게 얼면 먹기도 했다. 감을 깎을 때 나오는 감 껍질은 실타래처럼 묶어 햇볕에 잘 말려 깨끗한 짚더미 속에 넣어두면 촉촉하게 젖고 껍질에 쌀가루 같은 것이 뽀얗게 생겨났다. 곶감에도 그렇게 뽀얀 가루가 저절로 생겨났는데 사람들은 그 걸 '옻 났다'고 했다. 옻이 떡가루를 뿌려 놓은 것처럼 뿌연 곶감이 좋은 상품이어서 사람들은 곶감을 팔러 가기 전에 쌀가루를 뿌리기도 했다.

 

감 껍질은 그냥 군것질로 먹기도 하고 호박떡을 할 때 호박과 같이 넣으면 여간 달작 지근한 게 아니었다. 농촌의 겨울밤은 정말 길기도 하다. 길고 긴 겨울밤은 군것질이 없는 농촌 마을의 밤을 더욱 더 길게 한다. 긴긴 겨울밤을 보내며 망태를 만들기도 하고 가마니를 짜기도 하고 덕석을 만들기도 해도 달은 중천이어서, 배가 출출해지면 사람들은 닭서리를 하기도 하고, 텃밭에 묻어 둔 무를 꺼내다가 깎아먹기도 하고 고구마를 삶아먹기도 하고 감을 내려다 먹기도 한다. 우리 동네 누님들이 우리 집에서 모여 놀았는데, 밤이면 온갖 서리들을 다 했다. 이것저것 하다하다 할 게 없으면 누님들은 남의 집 김장 김치를 꺼내다가 하얀 쌀밥을 해 먹기도 했다. 농촌 마을의 닭서리나 감 서리는 그래서 다 용서가 되었다.

 

감을 다 깎아 처마 밑이나 헛간에 매달아 놓으면 곶감은 가을 햇살과 건조한 날씨로 꼬독꼬독하게 마른다. 감이 다 말랐다 싶으면 아버지는 마른 곶감 꼬챙이를 거두어 방에 쌓아 놓고 접는다. 꼬챙이에 꿰어진 감을 접는다는 것은 곶감을 상품으로 완성시키는 일이다. 요새는 꼬챙이를 잘 사용하지 않지만 시장에 나가 있는 곶감을 보면 더러 꼬챙이에 열 개씩 꿰어져 있는 곶감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완성품을 만들기 위해 아버지가 곶감을 동글동글 예쁘게 접고 있으면 우리들은 옆에서 꼬챙이의 감 숫자를 센다. 꼬챙이에 감을 열 개씩 꽂아두는데, 어쩌다가 아버지는 열한개씩을 꽂아 둔 꼬챙이도 있다. 곶감을 접을 때 우리들에게 한 개씩 빼먹게 하려는 배려였고, 그 보다는 곶감을 말리는 과정에서 동네 사람들이나 아이들이 지나가며 한 개씩 빼먹는 수가 종종 있기 때문에 미리 예방을 한 셈이고, 곶감이 한두 개씩 썩을 수도 있기 때문에 대비를 해 두는 것이다.

 

감 한 꼬챙이가 열 개씩이고, 열 꼬챙이가 한 접이다. 감은 '접'이라고 하는데, 곶감 한 접은 백 개를 말한다. 그렇게 감을 고이 접는 다음 다시 한 접씩 묶어 또 말린다. 완성 된 곶감을 말릴 때는 가을 일이 다 끝나고 한가할 때여서 아이들의 서리 대상이 됨으로 아버지들은 감을 마루 끝 처마에 매달아 둔다. 아이들이 쉽게 접근을 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다. 가을 달이 높이 뜨고 서리가 하얗게 깔리면 우리들은 초저녁을 어영부영 보내다가 열두시가 넘으면 슬슬 밖으로 나가 낮에 보아두었던 곶감서리를 한다. 곶감 서리를 한 우리들은 곶감을 한 꼬챙이씩 나누어 들고, 곶감을 한개 씩 한 개 씩 빼먹으며 이웃마을로 천천히 걸어간다. 물론 곶감 씨를 여기 저기 띄엄띄엄 떨어뜨려 이 곶감 서리를 한 놈들이 이웃마을 사람들이라는 것을 표시 하면서 말이다. 그렇게 곶감을 쏙쏙 빼 먹으며 걷다 보면 이웃마을에 도달한다. 이렇게 겨울이 깊어 가면 감나무는 까치밥도 낙엽도 하나 없이 빈가지로 겨울을 지내게 된다.

 

동무들이 다 도시로 떠나고 홀로지내는 겨울 밤 내가 제일 견디기 어려웠던 것은 마른 감잎과 마른 지푸라기가 밤바람에 끌려가는 소리였다. 마른 마당에 이는 바람에 감잎이 끌려가는 소리는 홀로 사는 사람의 애간장을 긁기에 충분했다. 강 건너 앞 산 상수리나무에 달린 마른 잎이 바람에 수런거리는 소리와 감잎 뒹구는 소리를 견디기 위해 나는 시를 썼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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