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의 문화전쟁 그리고 단오절 / 강릉 단오제 유네스코 등재에 中 '원조타령' 찬물 끼얹져 / 조선족 농악·널뛰기도 자국의 무형문화유산으로 등록
낼 모레면 단오다.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4대 명절이라고 했다는데 지금으로서는 그 말이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많이 쇠락했거나 잊혀져가고 있는 게 분명하다. 단오 문화가 시들해진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견해가 있다. 그 중에서 이앙법 보급과 같은 농경방식의 변화로 인해 단오를 즐길만한 시간적 여유가 없어졌다는 것이 보편적이다. 즉 과거에는 보리를 수확한 뒤 약간의 시간적 여유를 두고 모내기를 하기 때문에 단오를 즐길 수 있었지만, 이앙법이 도입되어 모내기가 보급된 조선후기 이후에는 농사일이 급박하게 돌아가는 상황이라 점차 단오 풍속이 쇠퇴하였다는 것이다. 그나마 전주는 과거부터 덕진연못을 중심으로 전해오던 단오풍속이 끊기지 않고 전승되고 있어서 다행이다. 근자에는 민가에서 행하던 단오풍속이 단절된 대신 지자체나 관련단체에서 이를 계승, 재현하려는 노력을 보이고 있다. 전주 덕진공원에서는 이날 덕진물맞이, 단오기원제, 단오부채만들기 등 다양한 행사가 마련된 단오축제를 벌인다.
농경사회에서 단오는 밭에 뿌린 씨앗이 성장을 시작하거나, 모내기를 마치고 한숨 돌릴 수 있는 즈음이다. 그리고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되는 시절이다. 속담인지 노랫말인지 "동지때 부채 팔아 마누라를 샀는데 오월 단오 다시 오니 부채 생각 간절하네."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단오는 그런 시절이라 모내기를 마친 고단한 몸으로 가까운 물가에 가서 물맞이를 하며 피로회복을 하거나, 약초를 뜯어 원기회복을 도모한다. 더위를 함께 나기 위해 부채를 만들어 선물하는 풍속도 유래가 깊다.
요즘은 영토전쟁과 다름없이 문화전쟁도 치열하다. 총성만 없을 뿐이다. 우리는 특히 수천 년을 이웃해 살고 있는 중국과 심한 마찰을 빚고 있다. 중국이 이른바 '동북공정' 프로젝트로 공격적 역사만들기를 수행하면서 문화전쟁 총성이 시작되었고, 2005년에는 한국이 '강릉단오제'를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시킴으로써 역공에 성공하였다. 이때 중국은 단오의 원조를 자처하며 격심하게 항의하였다. 공교롭게도 이 사건 이후로 유네스코 지정제도가 바뀔 정도였다. 즉 이전에는 격년제로 '인류구전 및 무형유산 걸작'으로 국가별 무형유산 등재를 신청 받아 지정해 왔지만, 2006년부터는 각국의 무형문화유산을 한데 모아 일종의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는 대표목록(R epresentative List) 제도로 바꾸어 버렸다. 다시 말하면 어느 나라든 자국의 문화재로 지정만 되어 있으면 무제한으로 신청할 수 있는데, 이때 심사는 자국이 하고 유네스코는 승인만 하는 제도가 된 것이다.
그러자 다시 중국이 재역공을 시작하였다. 2006년부터 중국은 '문화적 동북공정'을 노골적으로 강행하기 시작했는데, 중국 조선족의 농악, 널뛰기, 그네타기, 장구춤, 전통혼례 등을 자국의 무형문화유산으로 등록시켜버렸다. 이는 다분히 바뀐 세계문화유산 제도를 틈타 자국의 문화유산으로 먼저 등록함으로써 자격을 갖춘 후에, 곧바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받으려는 전략의 일환이다. 결국 중국은 2009년에 '농악'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중국의 문화유산으로 등재하는 데 성공하였고, 급기야 작년에는 '아리랑(阿里郞)'을 중국의 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하고 말았다. 한국이 방심하였거나 뒷짐지고 있는 사이에 중국은 '어우동' 복장으로 '장구춤'을 추는, 한국의 전통문화를 해괴망측하게 왜곡하여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으로 소유하게 된 것이다.
단오는 중국에서 유래한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강릉단오제는 한국의 단오 풍속이다. 중국의 단오와 아무 상관이 없다. 이것에 대해서 중국이 원조타령을 하는 것은 마치 재즈음악이 아프리카계 흑인음악이기 때문에서 미국음악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문화는 그런 것이다. 북한에서 단기간 배워 흘러들어간 개량된 조선족의 문화를 자국의 문화로 주장한다고 해서 그 나라의 전통문화가 되는 것도 아니고, 비록 전래된 문화라고 해도 오랜 세월동안 자국의 토양아래 퇴적된 문화는 더 이상 전래문화가 아닌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이치이다.
중국 단오절은 여러 유래를 가지고 있다. 그 중에서 널리 알려진 단오의 유래는 전국시대 초나라의 충신으로 유명했던 굴원(屈原)에 대한 고사에 기원을 둔 설이다. 그 내용은 이렇다.
초나라에 굴원이 생존하던 전국시기에는 제, 초, 연, 한, 조, 위, 진나라 등 일곱 나라가 있었으며, 그 중 진나라가 가장 강하여 항상 다른 여섯 나라를 침략하곤 했다. 굴원은 초나라의 대부로 국가의 위기를 보고 여러 차례 왕에게 내정과 외교를 개혁하고, 다른 나라들과 연합하여 진나라에 대항해야 한다고 충언하였다. 그러나 굴원의 주장은 반대파에 의해 번번이 묵살되었으며, 급기야 초나라 왕은 반대파들의 말만 듣고 그의 관직을 박탈하고 도성에서 내쫓기까지 하였다. 후에 진나라가 초나라의 도성을 함락시키자 굴원은 자신의 희망이 모두 물거품이 되었음을 깨닫고 비통한 마음으로 멱라강에 몸을 던져 죽었다. 이것이 기원전 278년 5월 5일이었다.
굴원이 죽을 때 큰 돌을 안고 멱라수에 몸을 던졌으므로, 그 지방 촌민들이 충신 굴원의 시신을 물고기가 뜯을까봐 '종자'(찹쌀에 대추 등을 넣어 댓잎이나 갈잎에 싸서 쪄 먹는 단오 음식)를 던지며 급히 노를 저어서 다투어 그의 시신을 건졌다고 한다. 그래서 중국에서는 이날이 되면 종자를 만들어 먹으며, 용 모양으로 장식한 배로 경주하는 놀이인 '용선경도'(龍船競渡)를 하는 풍속이 생기게 되었다. 중국의 용선경도는 충신 굴원의 원혼을 위로함으로써 재앙이 물러가고 행복이 돌아오리라는 기대심리와, 가뭄에 비가 내려 풍년과 무사태평을 기원하는 소망을 담고 있다.
이밖에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음양오행설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즉 1, 3, 5, 7, 9는 양에 속하는 수로, 이들 숫자들은 오묘한 의미를 담고 있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그 중에서도 양월 양일이 겹치는 날, 즉 1월 1일, 3월 3일, 5월 5일 등은 양기가 최고조에 이르는 시기를 가리키며, 이는 곧 균형이 어긋났다는 것을 의미하는 금기의 날을 말한다.
그 중에서도 5월 5일은 양기가 가장 왕성한 날이기 때문에 이날은 천지귀신에게 제사지내고, 풍년과 복을 기원하는 날로 정했다는 것이다.
중국의 전통적인 단오풍속의 이면에는 5월을 악월(惡月)로 여기는 관념이 지배하고 있다. 즉 5월은 음기와 양기가 아주 치열하게 투쟁하는 달이기 때문에 자칫 삼가지 않으면 생명의 양기가 쇠약해지고, 죽음의 음기가 점차 강대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단오절에 악귀를 물리치기 위한 벽사의 풍속이 집중되어 있다. 창포나 쑥물 등에 목욕하는 것도 그렇고, 높은 곳에 오르는 등고(登高)를 하는 까닭도 그렇다. 양기가 쇠퇴하고 음기가 왕성해지므로 높은 곳에 올라가는 것은 음기를 피하기 위해서이다. 또 이날 창포의 뿌리로 술을 담그는 것도 나쁜 기운을 피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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