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진문화재단 운영실장
소리의 길에 들어선지 얼마나 되셨나요. 공연히 소리가 좋아서 혹은 주변의 권유에 의해 덜컥 이 길로 들어서 명창으로 불리우고 있지만 지금은 솔직히 지치지 않았나요. 소리배우는 과정의 고생에 비해 벌이가 썩 괜찮은 것도 아니고 판소리명창이라는 사회적 지위가 그리 폼나는 것도 아니지요. 애들 교육비나 집안살림에 드는 소용이 소리꾼이라해서 특별히 면제되는 것도 없는데, 누리는 것 없이 책임과 의무는 잔뜩 지워진 당신의 어깨, 많이 눌리어 있지요.
지고지난한 소리의 길에 들어선 소리꾼은 순례자와 비슷하지 않습니까.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여정을 홀로 가야합니다. 홀로 무대에 선 당신의 모습은 험준한 산맥과 비바람, 더위와 추위, 거친 노면을 견디는 순례자와 겹치어지는군요. 순례자가 야고보의 산티아고성당에 다다랐을 때의 환희는 당신이 득음의 경지에서 느끼는 경이로움에 견줄만하겠지요.
그러나 지금 이 순간 당신을 흔들리게 하는 것은 판소리라는 장르가 과연 지속가능한 예술이 될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일본의 노나 가부키도, 중국의 경극도 모두 같은 고민에 쌓여있다지요. 오죽하면 유네스코가 문화유산이니 무형유산걸작이니 하는 지위를 부여해가며 전통연희의 생존방식에 관여하겠습니까.
20년 넘게 판소리공연을 열어온 문화재단에 몸담고 있는 저는 당신께 조심스럽게 완창으로 돌파구 삼을 것을 권합니다. 완창은 공연형식으로 보면 소리꾼에게나 관객에게 부적합한 양식일지도 모릅니다. 짧게는 3시간, 길게는 7~9시간이 소요되는 긴 공연을 한명의 소리꾼이 하루에 해내는 완창을 두고 과연 누구를 위한 공연이냐고 묻는 이들도 있습니다.
상황이 어려울수록 정면돌파하라는 말이 있지요. 고 박동진 명창은 판소리가 고사위기에 있던 1960년대 50대의 나이에 처음으로 완창을 시도하고 다섯바탕을 내리 완창하여 대중의 관심이 판소리에 쏠리게 하였습니다. 소리를 살리기 위해 탄생한 공연양식이 완창이었던 것입니다. 완창을 준비하는 긴 시간동안 당신은 앳되고 설익은 소리로 책걸이하듯 완창하였던 초심자시절의 포부를 떠올릴 것입니다. 완창은 완창 자체로서의 의미보다 소리의 진면목을 되살리는 힘의 원천으로서의 의미가 크지요. 처음부터 끝까지 소리의 전바탕을 다시 연습한 당신의 소리는 더욱 단단해지고, 깊고도 풍부한 판소리의 예술성에 흠뻑젖은 당신은 다시 순례의 길을 계속할 힘을 얻게 되지 않을까요.
진정한 무대는 지켜봐줄 관객을 갖게되고 소릿길과 순례는 백년 이백년 이어지지 않을까요.
※ 김 실장은 전북대 국문과를 졸업한 후 전북대 행정대학원 언론홍보학 석사를 마쳤다. 도내 일간지 기자로 활동한 바 있다.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