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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진흥기금 단상(斷想)

김선희 우진문화재단 운영실장

   
 
 

Good

 

9월이 오고있다. 문화예술인들의 가장 큰 언덕이자 디딤돌인 문화예술진흥기금 지원금 사업들이 9월부터 러시를 이룬다. 문예진흥기금은 1972년 공포된 문화예술진흥법을 근거로 조성됐으니 새마을운동과 비슷한 시기에 탄생했다. 흰쌀밥 먹기가 죄스럽던 가난한 시절임에도 사회구성원 중에 문화예술인이 더욱 어렵다하여 창작활동을 돕기 위한 기금이 조성됐으니 참 고마운 일이다. 문화예술인들에게는 일용할 양식과도 같은 이 기금은 그동안 착실히 운용됐고 우리도의 경우 도세에 비해 꽤 짱짱한 기금규모를 갖고 있다. 연말이면 문화예술인들은 다음해 사업계획을 세워 기금사업 제안을 하고 연초 심사 선정이 이뤄져 봄부터 사업이 시작되지만 여름 휴가기간을 거쳐 9월이 돼야 모든 장르에서 본격적인 활동이 개시된다.

 

Better

 

언제부터인가 문예진흥기금이 아마추어나 동호인들도 노려봄직한 '만만한' 기금이 됐다. 선정된 사업과 단체 목록을 살펴보면 씁쓸함을 금할 길이 없다. 문화예술계에서 일하는 이라면 누구나 골라낼 수 있는 비전문가의 사업들이 상당수 포함돼있다. 문진금은 문화예술을 업으로 살아가는 이들의 창작활동을 돕는데 사용돼야한다는 본래의 취지는 빛을 잃어가고 있다. 지방자치제 이후 시민의 문화향유가 중요한 덕목으로 자리 잡으면서 빚어진 일이다. 당초 시민의 문화향유란 문화예술인의 성과물을 더 많은 시민이 누리게 하자는 것이지 시민이 직접 만들어내는 문화예술을 문진금이 지원해야한다는 취지는 아니었다. 시민이 만들어내는 문화예술은 '사회단체보조금'등에서 수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경제적 양극화와 상대적 결핍감속에서 문화예술인들은 그 어느 때보다 어려운 시기를 통과하고 있다. 문진금만큼은 문화예술인에게 주어지는 것이 마땅한 일이다.

 

Best

 

우리 문화예술계 일부에서는 문진금을 당연한 선물로 여기는 풍조가 있다. 문진금은 내가 속한 공동체의 양보와 배려 속에서 형성된 기금이다. 기금을 혹시 '눈먼 돈' 쯤으로 여기지 않았는지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수십년 받아온 기금이기 때문에 관성이 붙어 도덕적 책무를 소홀히 하지 않았나 되돌아봤으면 한다. 많은 사람들의 양보로 내게 주어진 이 돈을 써도 좋을 만큼 내 준비가 충분한가, 나는 최선을 다했는가, 끝없이 스스로 검증해야 한다. 내 준비가 부족하다면 나보다 더 준비가 잘된 이들에게 양보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수많은 문진금 사업이 튀어나오는 가을, 시민들이 문화예술의 향연에서 무엇부터 선택해야할지 모르겠다는 즐거운 비명이 아우성을 이루도록.

 

Beyond best

 

우리는 언제쯤 문진금이 필요 없는 세상을 만들 수 있을까. 문화예술계 달력에서 1~3월은 암흑기에 해당한다. 문진금 접수와 심사, 선정이 이뤄지는 시기, 기금이 가동되지 않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문진금이 없으면 활동을 못하는, 혹은 안하는 현실이다. 문화예술인은 이 3개월 동안 밥을 먹지 않나? 시민의 문화향유는 3개월쯤 유예돼도 좋은가? 지난 40년동안 우리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문진금의존증에 걸린 것은 아닐까. 문화예술인의 건강한 삶은 자신의 예술을 팔아 생활할 때 가능한 것이다. 미술작품과 공연을 구매하는 사람들이 늘어나야 문화예술인이 생활인으로서 자존감을 가질 수 있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더 많이 공연하고 그림 그려야 한다. 문진금을 넘어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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