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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기형도 시인 '짧은 여행의 기록' 속 전북

짧았던 여행, 스스로의 삶을 반성했다 / 그의 발걸음, 또 다른 문학 성지가 되고…

▲ 故 기형도 시인

△ 빈센트 반 고흐

 

전주 구도심의 어느 골목길. 속도에 취해 무수한 상점들이 명멸해 가는 그 부박함 속에서 오롯이 묵은 향기를 풍기며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 곳이 있다. '빈센트 반 고흐'. 그 간판을 따라 지하의 좁은 나무 통로를 따라 내려가면, 아담하다기 보단 차라리 비좁다고 표현해야 적당할 어느 실내가 나온다. 희미한 조명, 빛바랜 LP판, 오랜 사연을 머금은 듯한 여러 장식, 책장에 두서없이 꽂힌 책들….

 

 

▲ 전주 구도심의 어느 골목길'빈센트 반 고흐'찻집. 24년전 故 기형도 시인도 이곳에서 커피를 마셨다.

이 곳에 앉아 커피 한잔을 마시며 접어두었던 책갈피를 들추면 그렇게 맘이 편해질 수 없다. 오랜 친구를 다시 만난 듯한 느낌. 긴 세월의 간극을 순식간에 무화시켜버리는 그 안온함. 24년 전의 기형도 시인도 이 곳에서 커피를 마셨다. '짧은 여행의 기록'에서, 시인은 이 카페를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식사 후 국일관 옆 까페 '빈센트 반 고흐'에 들렀다.……곰팡이 냄새가 났고, 어두웠는데 천정에는 수십 개의 사기컵들이 매달려 있다.'

 

 

▲ 찻집'빈센트 반 고흐'의 통로.

이 찻집에 관한 시인의 기록은 이것이 전부다. 하지만 기형도를 사랑했던 청춘들에게 이 짧은 기록은 빈센트 반 고흐라는 소박한 카페를 또 다른 문학의 성지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건 아마도 '고흐'라는 네덜란드 화가의 삶에 담긴 번뇌와 기형도의 청춘이 간직한 그 어두움의 정체가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 '짧은 여행의 기록'에서 시인이 스스로의 삶을 반성하는 공간으로 등장하는 전주 고속버스터미널.

△ 전주고속버스터미널

 

기형도의 오래된 발길을 더듬고 싶다면 전주고속버스터미널을 찾아보는 것도 괜찮다. '짧은 여행의 기록'에서 시인이 스스로의 삶을 반성하는 공간으로 등장하는 곳이 바로 전주고속버스터미널이기 때문이다.

 

'미안하지만 나는 이제 희망을 노래하련다 / 마른 나무에서 연거푸 물방울이 떨어지고 / 나는 천천히 노트를 덮는다 / 저녁의 정거장에 검은 구름은 멎는다 / (중략) 물방울이여, 나그네의 말을 귀담아들어선 안 된다 / 주저앉으면 그뿐, 어떤 구름이 비가 되는지 알게 되리 / 그렇다면 나는 저녁의 정거장을 마음속에 옮겨놓는다' (기형도 시인의 '정거장에서의 충고' 중에서)

 

전주고속터미널은 아직도 수십 년 전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매표소에서 승차장으로 내려가는 그 미로와 같은 고불고불한 길. 오래된 건물의 구조가 전하는 불편함이, 적어도 기형도라는 시인에 대한 기억으로 연결되면 '다행스러움'으로 다가온다. 새로운 것이, 편리한 것이 항상 좋은 것은 아니다. 적어도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그리고 그 흔적을 좇는 사람들에게….

 

이휘현 문화전문시민기자(KBS 전주방송총국 PD)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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