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돼지 - '발효생햄' 개발 성공…상품화·대중화 과제 / 미꾸리- 토질·수질오염으로…생산량 갈수록 줄어
남원은 복 받은 땅이다. 천혜의 자연환경 덕분에 지리산 흑돈과 남원 미꾸리가 선구적 농업인의 땀과 결합 돼 탄생할 수 있었다. 뛰어난 명성 만큼 이들 식재료 자체는 전국적으로 품질 우수성을 인정받고 있다. '명품 음식, 지역 식재료의 재발견'에서는 남원이 집중 육성코자 하는 '지리산 흑돈'과 미꾸리를 통해 발전 가능성을 엿본다.
△ 100% 순종 버크셔 개량한 흑돈, 한미 FTA 파고 넘길 대안
보통 흑돈하면 제주산 흑돈을 떠올린다. 또 토종 돼지로 잘못 안다. 물론 국내에서 자라던 돼지가 까만색이긴 했으나, 일제 강점기 이후 영국산 버크셔가 들어온 뒤 종자 관리가 안 돼 잡종이 된 상황.
그러나 지리산 흑돈은 기능성 유전자 분석을 통해 인정받은 100% 순종 버크셔만을 대상으로 한다. 특히 해발 500m에 위치한 남원 운봉 일대는 맑은 공기와 물, 일교차까지 큰 뛰어난 자연환경이다. 지리산 흑돈을 내놓은 다산육종 박화춘 박사는 오랜 연구 끝에 몸에 축적되지 않은 불포화 지방 함량을 높이면서 쉽게 분해 돼 몸에서 빠져나갈 수 있도록 개량했다. 흑돈 성장 단계에 맞는 음악을 틀어주고, 발육이 부진한 돼지들에겐 유산균 음료까지 특식으로 제공한 결과다.
그렇다면 맛은 어떨까. 불포화 지방이 적당히 끼면서 촉촉한 상태를 오래 유지하도록 개량해 짜지 않고 담백하다는 평. 박화춘 박사는 2006년 '지리산 흑돈'으로 상표등록을 하고 단가를 더 싸게 내놓으라는 유통업자들을 설득해 다른 돼지고기보다 2배 정도 비싸게 팔았다. 건강까지 생각한 친환경 먹거리(슬로푸드)로 고급화시키자는 것.
돼지고기는 소고기에 비해 향이 강한 편이라 굽기 외에도 고추장·간장 양념을 곁들이고 탕으로도 조리가 가능해 다양한 조리법을 적용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발전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고 봤다.
박 박사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한국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돼지고기 부위인 삼겹살 대신에 비선호 부위인 뒷다리를 자연 발효시켜 '발효생햄'을 내놨다. 2000년 전부터 유럽에서 먹어온 이 발효생햄은 스페인의 하몽과 이탈리아의 파르마, 미국 컨추리햄과 같은 최고급 햄으로 간주된다.
발효생햄은 돼지 뒷다리를 통째로 소금에 절여 9~12개월 동안 그늘진 곳에서 자연 발효시켜 만드는 게 특징. 흑돈 뒷다리가 거꾸로 매달아 자연 발효 시킨다. 신기한 대목은 발효가 되면서 지방이 고기로 흘러 들어가 자연스러운 마블링이 생긴다는 것이다. 발효생햄을 제조하고 있는 농업회사법인 솔마당 오인숙 대표는 "국립축산과학원에서 기술 지도를 받아 천연 소금과 허브를 첨가해 맛과 향이 뛰어나다"고 했다. 자연 발효시키면 수분이 30~35% 밖에 남질 않아 '드라이 햄'으로도 알려진 이 발효생햄을 먹어본 소비자들은 "오래 기다려 숙성시킨 덕분에 풍미가 뛰어나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대개 수입업체를 통해 들어온 발효생햄을 보아온 소비자들에겐 국내산은 품질이 별로일 것이라는 선입견 때문에 뒤늦게 입소문이 나고 있다.
△ 더 고소한 미꾸리, 치어 통해 생산량 높이는 게 과제
미꾸라지와 미꾸리는 다르다. 하지만 이것을 모르는 소비자들이 많다. 추어탕 음식점을 운영하는 대표들도 육안으로 이걸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물론 추어탕은 미꾸리와 미꾸라지로 끓이는 탕이 맞다. 하지만 미꾸리로 탕을 끓이면 더 고소하고 담백해 콩가루나 들깨가루를 많이 넣지 않아도 될 정도. 그래서 추어탕이 유명한 남원은 일찍부터 미꾸라지가 아닌 미꾸리 생산을 역점 사업으로 추진 중이다. 농림식품부의 향토산업 육성사업으로 선정된 남원시는 지난해까지 3년 동안 30억을 들여 추어 브랜드 사업단을 꾸려 미꾸리 양식장을 건립하고 추어탕 가공 기술을 지원해왔다.
미꾸리와 미꾸라지는 어떻게 다를까. 생물학적으론 다른 종이나, 일반적으론 미꾸리로 통칭해 불린다. 둘 다 입가에 수염이 있고 비늘이 없는 대신 미끌미끌하며 어둠을 좋아하고 가물거나 겨울이 되면 흙 속으로 들어가 동면을 한다. 몸통이 약간 둥그스럼하고 뼈가 연하고 맛이 고소한 미꾸리는 '둥글이'라고 불리고, 세로로 납작하나 뼈가 억세고 팔딱팔딱 거리는 미꾸라지는 '납작이' 혹은 '넙죽이'라 불린다.
대개 추어탕 하면 미꾸라지로 끓인다고 알려진 것은 미꾸라지가 미꾸리에 비해 더 빨리 자라서다. 치어를 받아와 15㎝로 키우려면 미꾸라지는 1년, 미꾸리는 2년은 족히 넘겨야 한다.
게다가 미꾸라지는 1㎏당 1만8000원, 미꾸리는 1만9000원으로 미꾸리가 더 비싸다. 결국 양식업체는 미꾸라지를 선호할 수밖에 없고, 추어탕음식점은 미꾸라지로 탕을 끓이게 된 것.
'남원 추어요리 협의회' 총무를 맡고 있는 유해조씨는 "추어탕을 좋아하는 분들은 그래도 미꾸리를 선호한다"면서 "다른 양념을 넣지 않아도 그 자체로 고소한 맛이 나기 때문"이라고 했다.
어른들이 추어탕을 먹으면서 맛이 예전 같지 않다고 불평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남원에서 추어탕이 유명해진 이유는 섬진강 지류에서 미꾸리나 미꾸라지를 잡을 수 있었던 곳이 많았기 때문이다. 남원 운봉과 인월 등에서 많이 재배됐던, 추어탕에 들어가는 무시래기 생산도 일조했을 것으로 보인다.
남원 추어탕집의 원조는 1950년대 남원 광한루 일대 우시장이 들어서면서 상인들을 대상으로 한 '새집 추어탕'과 '3대 원조 할매 추어탕'이 생긴 뒤 장사가 잘 된다는 입소문을 타면서 이곳저곳에서 가게가 생겨났다. 광한루원 정문 일대에 형성된 추어탕 골목에서 추어탕만 파는 가게는 22곳, 다른 음식과 함께 파는 곳만 해도 35곳이나 된다.
하지만 상당수 가게가 미꾸라지를 사용하고, 남원 농기센터의 미꾸리 치어를 양식으로 받는 음식점은 4~5곳에 불과하다.
남원 농기센터 현장지원과 추어 육성을 담당하는 정의균 주무관은 "미꾸리 생산량이 적은 것은 생산기술이 체계화 돼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일단 인공 부화 시설을 갖춘 시설식은 영세한 농가에겐 부담이 크고 생산량 증대는 아직 검증되지 못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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