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묘사·개성있는 양식에 관심…젊은 작가들 새로운 장르 개척 기대
"교과서에서나 볼 수 있었던 세계적인 작가들의 작품을 직접 볼 수 있다니…"
"내 눈이 너무 호강하는 것 같습니다". "술자리 대화의 품격이 높아졌습니다"
전북도립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세계미술거장전에 쏟아지는 관람객들의 찬사다. 지난 10월 19일 개막 이후 '나의 샤갈, 당신의 피카소'거장전을 찾은 관람객이 10만명에 육박한다. 관람객 수만으로 이미'대박'을 터뜨린 셈. 단일 이벤트로 이렇게 많은 관람객을 끌어들인 전시회는 전북에서 처음이다. 전북도민들의 눈을 사로잡은 거장전을 그렇다면 미술인들은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전북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4명의 미술 작가들과 전시장을 찾아 작가들의 생각을 들어보았다. 서양화가 이문수(교동 아트센터 큐레이터)·서양화가 진창윤(전북민예총회장)·전북장애인미술협회 전해진 회장·미디어 아티스트 정상영씨가 동행했다.
△신화적 아우라, 관람객들 전시장으로
전시장을 찾았을 때가 마침 크리스마스 날이어서 전시장은 발딛을 틈이 없었다. 많은 관람객들 앞에서 동행한 작가들이 모두 흔연스러워 보이지는 않았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관람하느냐로 전시회의 평가 지표를 삼는 데, 그게 좋은 지표라고 보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의미는 있습니다. 평소 전북에서 접할 수 없었던 전후 세계의 미술들에 개념 정리를 할 수 있는 기회며, 작가들에게 새로운 자극도 줄 수 있고요"(진창윤)
"피카소 샤갈 등 신화적 아우라가 도민들을 전시장으로 끌어들인 것 같습니다. 관람객들이 그림 앞에서 이렇게 진지하고 열심히 불 수 있다는 게 놀라웠습니다. '내가 느끼지 않으면 손해다'는 자세로, 신화와 같은 작가의 작품들 앞에서 뭔가 찾으려는 느낌이 감동적입니다"(이문수)
"샤갈과 피카소는 붙어 다니는 것 같습니다. 몇 년 전 인천에서 두 작가의 작품전을 관람하면서 전북에서도 이런 전시회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특히 장애인들의 경우 이동에 어려움을 겪기 때문에 좋은 전시회가 있다 하더라도 멀리까지 가서 감상하기가 어렵습니다"(전해진)
"전시회 이름을 보고 피카소와 샤갈 작품만 있는 줄 알았는 데, 다양한 작품이 있어 세계미술의 전반적 흐름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전북지역 작가들이 자신감도 가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정상영)
△대가들, 자신만의 양식 개척
거장전의 객관적 가치를 떠나 전북미술의 희망을 볼 수 있어 고무적이라는 작가들이 많았다.
"79년도인가 80년인가 전북예술회관에서 피카소 도예전이 열렸어요. 그 후 30년만에 전북서 열리는 명화전인 셈입니다. 당시 그림을 보면서 '속았다'는 느낌과 함께 '나도 그리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진창윤씨는 서양예술에 도배된 교육을 통해 그 스스로 명화전이라면 서울도 마다하지 않고 열심히 찾아다녔으며, '신화적 작품'에 대한 환상도 깰 수 있었다고 했다. 1번 2번 자주 접하다 보면'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길 것이라는 이야기다.
이문수씨는 '신화창조'는 여기서 멈춰야 한다고 곁들였다. 도립미술관이 '대박'을 터뜨렸지만 그대로의 거장전이 아닌, 마디와 매듭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제는 다음의 준비가 필요하며, 우리 안의 오리엔탈리즘을 강화하는 쪽에 관점을 둬야 한다는 입장이다.
"러시아 극사실주의 작가 일리아 랩민의 전시회를 보면서 발이 안 떨어진 적이 있습니다. 인간이 어떻게 저리 그림을 그릴 수 있을까. 그림을 때려치우고 싶을 정도였습니다. 물감을 사용하는 방법이 달랐던 것입니다. 그가 사용한 방법이 우리가 왕의 초상을 그릴 때 뒤에서 물감을 칠하는 방법이었습니다. 피카소가 우리 도공들이 만든 분청사기의 손가락 터치를 응용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유럽 미술이 동양의 미술을 차용해 새로운 경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도 합니다."
진창윤씨는 피카소에만 경도되지 말고 이제 우리 미술과 미술인들에게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리 대학생들을 보면 재능 있고 유망한 학생들이 참 많은 데, 졸업 후 어디로 가는지 모르겠습니다. 젊은 작가들도 묘사 능력에서 거장들과 별 차이가 없다고 봅니다. 문제는 시대 흐름을 읽고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느냐에 달린 것 같습니다."
피카소가 시대의 흐름을 읽고 자기만의 양식을 만들었기에 미술사에 남았다는 이야기다. 대학생들이 무엇을 그려야 할 지 모르거나, 교수 혹은 선배의 흐름으로 따라가는 경우가 많은 데 그저 뒤따라가서는 미술사에 흔적을 남기지 못함을 거장전의 반면교사로 삼을 필요가 있다고 진씨는 덧붙였다.
△지역미술발전의 계기로
화제는 자연스럽게 지역 미술의 발전 방향으로 모아졌다. 전혜진씨는 농반진반으로 거장전에 전북작가를 '끼워팔기'했으면 어떨까 의견을 냈다. "독일에서는 큰 전시에 거장과 신예 작가의 작품이 함께 걸리도록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지역 혹은 신진 작가들의 작품을 보아야 거장전을 볼 수 있게 동선을 배치합니다. "
진씨는 그러나 우리 미술풍토에서 그게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장애 미술인들의 모임에서 주최하는 전시회에 유명 작가들이 선뜻 참여하려 하지 않습니다. 전시 레벨을 보고 작품 출품 여하를 결정하는 게 일반적이지 않습니까"
정상영씨는 침체된 전북미술에 거장이 새 자극이 될 것으로 기대했다. 좀 더 치밀한 기획을 전제로, 매년 이런 정도 규모의 전시회가 열리길 바라면서다. 그럴 경우 일반인들의 미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미술 작품에 대한 눈도 더 크게 뜰 것으로 보았다. 피카소를 등에 업고 지역 미술계가 뜰 수 있으며, 그 몫은 작가들에게 달렸다고 정씨는 덧붙였다.
이문수씨는 "미술이 박물관에 있다고 하는데, 전시장을 찾은 관람객들에게서 전북미술의 희망을 보았다"고 했다. 낙서 같은 그림을 받아들이고, 예술이 뭔가를 고민하며, 거장전과 비교해서 우리 지역 작가들의 작품도 작품이 될 수 있구나를 느낄 것이란다. 우리 작가들이 제대로 만들면 얼마든지 가능성이 있다는 이야기였다.
진창윤씨 역시"서양예술에 대한 환상도 깨면서 격차 해소의 계기가 될 것이며,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고 거들었다. 우리 주변에도 숨어있는 좋은 그림이 얼마든지 있으며, 훌륭한 전시를 만들 수 있다는 설명이다.
전해진씨는 거장전에서도 장애의 벽을 실감했다. 관람객이 워낙 많은 탓에 그림을 보기 위해 끼어들 틈이 생기지 않아서다. 관람객들이 앞을 가로막아 휠체어를 탄 그로서는 정상적인 관람이 어려웠단다. 장애인을 포함한 다른 관람객을 배려할 줄 아는 전시회 관람문화도 생각해볼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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