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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랑은 모란을 정말로 사랑했을까

오하근 교수 영랑 시 87편 전편 해석 '가슴엔 듯…' 펴내

 

'북소월 남영랑'. 일제강점기 소월 김정식과 함께 서정시의 쌍벽을 이룬 영랑 김윤식(1903~1950)을 두고 나온 말이다. 우리 현대시사의 신기원을 이룬 시문학파를 대표했던 영랑의 시 중 '모란이 피기까지는''돌담에 소색이는 햇발'은 중고교 교과서에 실려 널리 애송되기도 한다. 영랑의 삶과 시에 관한 연구 또한 활발히 이루어져 전기가 출간됐고, 영랑 시 관련 해설서도 적지 않다.

 

그러나 문학평론가 오하근씨(원광대 명예교수)에게 그간의 성과물들이 성이 차지 않는다. 오랫동안 영랑 시에 대한 연구작업을 하며 영랑 시 해석의 권위자로 통하는 그가 영랑 시 87편 전편에 대한 해석에 나선 이유다. 그가'가슴엔 듯 눈엔 듯 또 핏줄엔 듯'을 펴냈다(작가 출판).

 

"영랑 시에 대한 바른 평가를 위해서 그 텍스트를 정확하게 해석하는 작업부터 선행시켜야 한다. 텍스트의 의미를 모르고 평가는 무슨 평가이겠느냐"고 책머리에서 밝힌 글에서 그의 집필 동기를 읽을 수 있다. 그래서 책 이름에 '해설'이니 '평설'이니 '감상'이니 하는 이름을 버리고 '해석'을 택했단다.

 

오 교수는 영랑의 시가 긴축된 언어를 사용해서 해석상 많은 오류를 불러일으키는 것으로 보았다. 영랑의 맨 처음의 시'동백 잎에 빛나는 마음'(1930.3. 시문학)부터 맨 마지막 작품 '오월 한'(1950.5. 신천지)까지 필명을 김윤식이나 김영랑이 아닌, 그냥 '영랑'이라고 성조차 생락할 정도로 극도의 절제력으로 언어를 다룬 것으로 파악했다.

 

압축된 시어와 함께 율격을 가늠한 예스런 표현과 향토색 짙은 방언, 맛깔스런 낱말을 골라 갈고 다듬은 시어법(poetic diction) 등도 영랑 시의 난해성에 기여했다고 분석했다.

 

오 교수는 또 영랑의 시가 조국의 현실에 눈 감고 달콤한 순수서정의 세계에만 몰입한 시인으로 인식하는 평가에 대해서도 비판을 가했다. '영랑은 일제 강점 말기에 난다 긴다 하는 작가들 거의 대부분이 친일문학에 허리를 굽힐 때 누구보다도 격한 저항시를 쓰다가 아예 붓을 꺾었다. 그는 가장 서정적인 시인이 가장 저항적인 시인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한 몇 안 되는 시인이다. 그러나 그의 모란의 정취와 마음의 고요가 춘향의 일편단심과 두견의 피울음보다 더 깊고 더 짙어 저항시인이 아닌 서정시인으로 인식됐다'는 논리다.

 

대표적으로 '거문고'(1939.1. 조광) 시를 들었다. 우리나라 대표적인 고전 현악기를 매개로 일제의 어두운 그림자를 그린 작품으로 본 오 교수는 시에 나오는'문 아주 굳이 닫고 벽에 기대선 채'를 통해 붓을 거두고 끝내 침묵으로만 살면서 '내 기린'이 울 날만을 기다렸다고 평했다.

 

'음조가 아름답기로 그 정서의 면면함으로 우리나라 신시 역사 이후의 대표적인 걸작중의 하나'(서정주 시인'한국의 현대시')로 평가를 받는 '모란이 피기까지는'을 두고 평자들의 잘못된 오해를 짚었다. '시인이 모란을 지극히 사랑했다는 데서 출발하여 그의 정원에 심은 모란으로 이 시의 해제를 끄집어내는 상식은 문화 외적 접근이란 점을 떠나서라도 부정돼야 한다'는 것이다. 영랑이 '모란'을 시어로 사용한 시작품은 총 87편 중 3편(가늘한 내음, 오월 한)에 불과하며, 이는 영랑의 '모란'이 현실의 모란과는 별개의 관계에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보았다.

 

 

대신 '모란'은 울림소리로 이루어져 우리나라 꽃 이름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어감을 준다는 점, 동양에서 화왕(花王)으로 꼽히는 모란의 화려하고 사치스러운 이미지를 빌려 탐미적 세계를 보여주는 것으로 접근했다.

 

오 교수는 '현대문학' 평론부문에 추천됐으며, '김소월 시의 성상징 연구''김소월 시어법 연구''한국현대시 해석의 오류''전북 현대문학'(상·하)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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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용 kimwy@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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