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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발버둥 쳤길래" 길목마다 올무, 총기 밀렵보다 잔인

무주 부남 불법 수렵기구 수거 동행취재기 - 2시간만에 32개 제거…야생동물 사체 처참…단속 대장도 눈시울

▲ 무주군 부남면의 한 야산에서 불법 엽구 수거에 나섰던 밀렵감시단 정만택 대장(왼쪽) 등이 올무에 걸려 죽은 고라니 사체를 조심스럽게 수습하고 있다. 추성수기자chss78@

겨울철 야생동물들은 먹이를 찾아 민가까지 내려온다. 밀렵꾼들은 이런 야생동물의 습성을 이용, 올무 등 불법 엽구(獵具)를 산 아래에 집중적으로 설치해 이들을 노린다. 겨울철이면 극성을 부리는 밀렵을 막기 위해 나선 환경청과 밀렵감시단의 불법 엽구 수거현장에 동행했다.

 

지난 18일 오후 2시, 무주군 부남면의 한 마을. 엽구수거에 앞서 새만금지방환경청 직원들과 야생생물관리협회 밀렵감시단원들이 수색 방법을 논의한다. 이날 수색은 마을 뒷산을 중심으로 진행하기로 했다. 마을 주민들은 갑자기 찾아온 감시단이 반갑지 않은 표정이다.

 

경력 15년차인 밀렵감시단 장만택 대장을 따라나섰다. 산으로 오르는 길에 장 대장은 "눈이 이렇게 쌓여 있는데, 자동차 바퀴자국이 나 있는 것이 의심스럽다"고 했다. 길을 오르던 장 대장이 갑자기 숲으로 향한다.

 

"이게 고라니 발자국이에요. 사람이 다닐 수 없는 곳인데 사람 발자국도 있잖아요. 이런 곳에는 불법 올무가 설치됐을 가능성이 아주 높아요."

 

장 대장의 말이 귓가를 떠나기도 전에 올무를 만들다 만 재료(와이어 줄)가 눈에 띄었다. 그리고 불과 5m 떨어진 곳에서 올무가 발견됐다. 올무를 제거하는 사이에 장 대장의 무전기가 갑작스레 요란스럽게 울린다.

 

"고라니 사체(死體)가 있습니다." 장 대장의 발걸음이 빨라진다. 사체가 발견된 현장으로 이동하는 곳곳에서 불법으로 설치된 올무가 눈에 띄었다. 동물이 지날 수 있는 길목이면 어김없이 올무가 설치돼 있었다.

 

도착한 현장에는 태어난 지 2년 정도 돼 보이는 고라니가 싸늘하게 죽어 있었다. 목에는 굵은 와이어 줄이 감겨 있고, 주변에는 털이 널려 있다. 고라니가 올무에서 벗어나기 위해 얼마나 발버둥을 쳤을지 짐작케 했다.

 

사체를 살펴보던 장 대장의 눈시울이 붉어진다. 장 대장은 "몸 상태를 보니 죽은 지 이틀 정도 된 것 같아요. 그리고 임신 중인 것 같다"며 말을 흐린다. 장 대장은 조심스럽게 고라니 목에 걸린 올무를 풀고, 사체를 수습했다.

 

고라니 사체 주변 30m 안에서만 10여개의 올무가 발견됐다. 나무를 잘라 와이어 줄을 설치한 멧돼지용 올무부터, 나무에 직접 묶어 놓은 고라니용 올무, 지름이 10cm 정도 밖에 되지 않아 잘 보이지 않는 토끼 올무까지. 그야말로 올무 밭이었다.

 

무전기가 또 쉴 새 없이 울린다. 이번엔 멧돼지 사체다. 장 대장은 "올무 수거를 많이 다니지만 이렇게 심한 곳은 처음"이라고 했다. 그만큼 야생동물 밀렵이 성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장 대장이 바삐 옮기던 걸음을 중간에 멈춘다. 그 곳에는 차마 눈 뜨고는 보기 힘든 처참한 광경이 벌어져 있다. 올무에 걸린 고라니를 도살한 흔적이다. 고라니 가죽만 현장에 덩그러니 남아 있다. 전문밀렵꾼의 소행이라는 게 감시단의 설명이다.

 

멧돼지 사체는 고라니가 죽어 있던 바로 앞산에서 발견됐다. 일반인은 제대로 오르기조차 힘든 곳이다. 멧돼지 상태를 살펴보던 감시단은 지난 늦가을 올무에 걸린 것 같다고 했다.

 

이날 2시간 남짓 진행된 불법 엽구 수거작업에서만 총 32개의 올무가 제거됐다. 밀렵꾼들은 이런 식으로 밀렵한 고라니는 30~50만원, 멧돼지는 1근(600g)에 1만 원 정도를 주고 판다.

 

밀렵감시단 정영국 전북본부장은 "불법 엽구를 이용한 밀렵은 지역을 잘 알거나 인근에 사는 사람들이 설치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며 "엽구를 이용한 밀렵은 총기를 사용하는 것 보다 더 악랄하다. 올무에 걸린 동물들이 죽을 때까지 엄청난 고통을 겪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새만금지방환경청 오기석 과장은 "아직도 전국의 산에는 불법 엽구들이 많이 설치돼 있다"며 "이 같은 불법엽구로부터 야생동물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도민들의 적극적인 신고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야생동물을 잡거나 거래하는 사람 또는 불법 엽구를 설치하거나 제작·판매하는 사람은 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 의거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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