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악양 거주 박남준 시인 산문집 '스님, 메리크리스마스'
'지리산 도인'이 된 박남준 시인이 모악산을 떠나 지리산 자락 악양 동매마을에 둥지를 튼 지 올해로 꼭 10년. 사계절을 9번 거친 뒤 다시 맞는 봄이기에 그다지 새로울 것 같지 않지만 그에게 봄은 매양 생경스럽고 존엄하다.
"오늘도 하루 종일 집 마당에 나와서 '무슨 꽃이 피었나' 이 꽃 저 꽃 굽어보았습니다. 부추가 파릇파릇 올라오고, 노랗게 핀 복수초에 나비가 찾아왔습니다."
자신의 말에 설명을 붙이는 데 인색한 시인이지만, 복수초 이야기에 이르러서는 사정이 달랐다. 복수(福壽)가 무병장수를 의미하며, 눈을 뜨고 핀다해서 눈새기꽃으로, 얼음 사이를 뚫고 피어난다 해서 얼음새꽃으로 부르기도 한다고 친절하게 설명했다. 모악산에서 키우던 복수초를 지리산까지 옮겨 심었으니 복수초에 대한 시인의 애정을 가늠할 것 같다. 여기에 기자와 전화 통화하던 날(2월27일), 마침 복수초에 벌과 나비가 날아와 앉은 모습을 봤으니 시인의 감정이 올라섰을 법도 하다.
시인은 이렇게 매일 아침 눈을 뜨면 마당으로 달려가 꽃과 나무와 인사를 나누고, 마당에서 피고 지는 꽃들을 통해 세상과 교감한다.
그런 지리산 속에서 사는 재미를 산문집으로 풀어놓았다. '스님, 메리 크리스마스'(한겨례출판). 6년 전 낸 '산방일기'의 후속편 격이다.
1부에서는 지리산 자락에 집을 마련하고 텃밭을 가꾸며 사는 이야기들로 꾸려졌다. 새로 이사 온 집에 나무를 심고 연못을 가꾼 집 단장 이야기, 텃밭 농사로 차린 소중한 밥상 이야기, 계절마다 번갈아 오는 새와 피고 지는 꽃 이야기 등 한가할 틈 없이 더불어 사는 자연 속 시인의 일상이 차려졌다.
2부에서는 혼자이면서도 혼자이지 않는, 사람 냄새 나는 이야기들이다. 가난한 시인이라 여기며 공짜로 밥을 주는 전주 콩나물국밥집 아주머니, 하룻밤 비운 사이 텃밭에 마음껏 농약 치고 제초까지 해주는 이웃집 할아버지, 등단하자마자 서울로 불러 시인의 자세를 가르쳐주신 선생님, 아버지 같기도 큰 형님 같기도 어깨동무 같기도 한 정양 시인, 저자의 앉은뱅이책상을 가져다 옻칠로 멋진 작품을 만들어준 동네 동생 등을 정감있게 그렸다.
3부에서는 잘못된 사회적 행태를 시인의 눈을 통해 다시 읽을 수 있는 장이다. 제주 강정마을, 4대강 사업, 학교폭력, 장애인 복지, 용산 참사 등에 대한 시인의 마음이 잘 드러나 있다.
지리산에 묻혀있지만, 시인의 사회를 향한 따뜻한 마음은 산문집 제목에서도 잘 드러난다. 크리스마스 때 사찰에서 아기 예수 탄생을 축하하는 현수막을 걸어놓고, 석가탄신일에 교회와 성당에서 역시 부처님의 탄생을 축하하는 모습을 통해 사회 상생과 화합·조화를 이야기 하고 싶어서다.
출판사에서 철 지난 크리스마스 제목이 계절적으로 맞지 않다며 바꾸자 했지만, 시인은 상생과 조화를 말하는 데 계절이 따로 있냐며 현 제목을 우겨 지켰단다.
책은 책이고, 지난겨울 별 일 없었냐고 근황을 물었다. 국가적으로 대통령이 바뀌고, 개인적으로는 자신이 죽지 않고 산 것이 큰일이었단다. 방구들에서 가스가 새 두 번이나 죽을 뻔했다. 나무로 지피는 온돌이지만, 구들의 구조물이 슬레이트와 스티로폼으로 놓여 여기에 문제가 생긴 때문이었다. 20여일에 걸쳐 구들을 새로 놓은 것이 시인에게는 올 겨울 큰 공사였던 셈이다.
외딴 곳에서 10년간 사는 게 외롭지 않을까. 시인의 답은 간명했다. "군중 속에서도 외로운 게 사람 아니냐"였다. 자연을 친구로 삼고 있는 시인에게 지인들이 많이 찾아와 피곤할 정도라는 엄살도 부린다. 세상에 받은 게 많아서 나눠주고 싶다는 게 지인들을 맞이하는 시인의 마음이다.
하루 주요 일과가 글 쓰는 일? 그렇지 않단다. 시인은 놀고 술 마시는 게 일상이고, 아주 심심하면 글을 쓴다고 했다. 전주 한 번 나가려면 화개로 가서 구례-곡성-남원을 거쳐야 하는 관계로 5시간이나 걸린다. 서울까지 3시간 40분 보다 멀다. 시인은 그래도 2달에 1번꼴로 전주를 찾아 지인들과 술잔을 기울이며 세속을 얻어간다.
1984년 시 전문지 '시인'으로 등단했으며, 시집'세상의 길가에 나무가 되어' '풀여치의 노래'등 20여권의 저서가 있다.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