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인들에게 노래 선물하고 직접 부르는 '동네앨범' 제작
전주 서서학동 1-1번지. 나무 대문을 열자 넓은 마당이 먼저 반긴다. 마당 한쪽엔 겹홍매가 분홍빛으로 처마를 밝히고 있다. 홍매화 그늘 끝에는 대파며 치커리, 상추들이 해바라기 한다. 한옥이 앉은 앞마당에는 사람 키를 훌쩍 넘긴 모란이 잎을 틔웠고 그 밑에 돋아난 작은 잎들도 사이좋게 봄볕을 나눠 가지고 있다. 마당의 주인은 이형로 씨와 김저운 씨. 음악을 하는 남자와 글을 쓰는 여자가 한지붕 아래에 살고 있다. 이 부부를 맺어준 것은 다름 아닌 음악.
부안에서 나고 자란 김저운 씨. 학교 오가는 길에 늘 노래를 흥얼거리며 다녔다. 매일 수업이 끝나면 음악실에 가서 살았고 방학 때면 교회에 가서 '우리동요 365곡집'을 한 장 한 장 넘기면서 풍금을 치고 노래를 불렀다. 교사로 첫 발령을 받은 경기도 안성에선 합창단원으로 활동 중이다. 비록 문학을 향한 열정에 지고 말았지만, 음악에 대한 그녀의 남다른 애정은 음악하는 남편과 함께 하면서 제대로 피어나고 있는 셈이다. 소설과 수필을 쓰는 김저운 씨가 노랫말을 직접 쓰고 이형로 씨가 곡을 만든 노래가 10여 곡, 다른 작가들의 글에 곡을 입힌 것이 10여 곡, 거기다 두사람은 '한사람 1곡 갖기 운동'이라는 독특한 프로젝트도 진행 중이다. 시인·화가 등 예술인들에게 노래를 선물하고 그들이 직접 노래를 부르는 '동네앨범' 제작이 그것이다. 부부는 함께 완성한 곡으로 가끔 무대에 오르기도 한다.
△ 모던민속밴드 '놉'의 리더 남편과 후원자 아내
"어릴 때 형님이 음악을 했어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음악을 접하게 됐지요. 기타가 있으니까 기타를 치고 피아노가 있으니까 피아노도 뚱땅거려 보고 학창시절엔 그룹사운드 활동을 하기도 했어요. 음악을 하는 건 저한테는 그냥 자연스러운 일이었던 것 같아요."
재즈 음악에 오랫동안 심취했지만 '서양악기로 왜 서양음악만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품게 된 이형로 씨. 젊은 시절 틈틈이 거문고를 익히고 정정렬 바디 '춘향가' 보유자인 최승희 선생 밑에서 10년 동안 판소리를 배우기도 했다. 무언가 그의 속에서 꿈틀거렸지만 손에 닿을 만큼 가깝지는 않아서 전주를 떠나 서울로 갔다. 8년 전 다시 전주로 내려와서 운명처럼 지금의 아내를 만났다. 그때부터 그가 하고 싶었던 음악의 토대를 만들게 됐다는 이형로 씨. 음악에 대한 것이라면 김저운 씨가 물심양면으로 도왔고 모던 민속밴드 '놉'이 탄생하기까지 아내의 공이 컸다.
판소리, 농악, 민요 등 전통국악에 현대적인 감각을 입힌 새로운 음악이 하고 싶어서 5년 전 '음악하는 일꾼'이라는 의미를 담아 '놉'을 결성했다. '놉'의 음악은 옛 것에 뿌리를 두었지만 과거에 머물지는 않는다. 피아노, 드럼, 섹소폰 등 서양악기로 민속음악을 재해석한다는 시도 자체가 실험이고 도전 아닌가. '놉'은 지난해 전주세계소리축제에 경연 방식으로 진행된 '소리 프론티어' 에 최종 선발된 8팀 중 한 팀으로 참가하기도 했으며 1년 한번 정기공연도 갖는다. 최근 몇 년 간은 굿의 형식을 빌어와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하는 작업에 몰두하고 있는 이형로 씨. 그동안 작업한 곡들을 모아서 조만간 연주음반을 내놓을 계획이다. 또한 '놉'에서 같이 활동하고 있는 유성운 씨의 앨범 '전라도 길'도 막바지 작업 중이다.
△ 마당 넓은 집에서 꽃출석부를 만드는 시간
음악작업을 하지 않을 때는 마당에 나와 있는 시간이 많다는 이형로 씨. 그런 남편을 보는 아내의 눈이 곱지만은 않다.
"어느 날엔가 도라지 스무 송이를 마당에 심는다고 하더라고요. 어떻게 심으면 그럴 수가 있는지 아직도 모르겠는데 꼬박 4시간이 걸렸어요. 지금 장독대 자리도 이리 옮겼다 저리 옮겼다 3번 정도 한 것 같아요. 마당에서 뭘 한다 하면 한나절이에요."
남편의 반박도 만만치 한다. 직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출근해서 업무를 보고 점심을 먹고 퇴근할 때까지의 모든 시간을 일하는 시간으로 포함하는 것처럼 그가 마당에 머무는 시간 또한 음악을 만드는 작업에 포함이 된다는 것. 도라지 심는 데 걸리는 시간이 반나절이든 한나절이든 부부는 마당이 있어서 좋다.
"박완서 선생님의 수필 '꽃출석부'에 복수초로 시작해서 피어나는 울안의 꽃들을 출석 부르신다는 표현이 있어요. 형로 씨가 봄에 핀 꽃들을 세어본 적이 있는데 저희 집 마당의 꽃도 60여 가지 되더라구요. 박완서 선생님 댁처럼 야생화들이 많이 포함돼 있긴 하지만요."
부부의 '꽃출석부'가 있는 마당과 별채 2층에 마련한 김저운 씨의 아담한 '글방'은 가끔 손님들 차지가 되기도 한다. 얼마 전 민박을 시작한 것. 이름을 '마당 넓은 집' 이라고 짓고 이형로 씨는 블로그에 '마당은 주인의 마음입니다'라는 문장을 손수 골라 같이 걸어두었다. 민박을 하기로 결정한 것은 전주를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서서학동 마을을 알리고 싶은 마음이 첫 번째 이유고, 이 마을에 둥지를 튼 예술인들의 자생력을 키울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자는 것이 두 번째 이유다. 남편이야 1층 작업실이 따로 있으니 그렇다 쳐도 글을 쓰는 작가가 자기만의 공간을 내어놓는다는 것이 김저운 씨에겐 큰 모험이었다. 그러나 사람 만나는 즐거움이 언젠가는 그녀의 글밭을 풍성하게 만드는 일이 될 것이라고 믿고 있다.
△ 제일 먼저 이사온 죄로 서학예술마을 촌장이 된 이형로 씨
넓은 마당에 반해서 이 집을 고치고 다듬어 살기 시작한 부부. 서서학동의 주민이 된 것은 올해로 3년째다. 이곳에 정착하려는 다른 예술가들에게 집을 소개하기도 했다. 그렇게 하나, 둘 모여든 사람들이 현재는 열네 가구쯤 된다. 마을 입구에는 '서학예술마을' 표지석도 섰다. 제일 먼저 이사온 죄(?)로 남편 이형로 씨는 서학예술마을의 촌장이 됐다.
"맞은 편에 사는 한숙 화가가 이 마을에서 와서 십몇 년 만에 아기를 낳았어요. 제가 남부시장에서 새끼줄 사고 숯과 고추를 가져가서 대문에 매달아줬어요. 여기서 살아보니까 사람 사는 동네 같은 느낌이 들어요."
하루에 오며 가며 들리는 사람들이 제법 많다. 어느 날은 하루 동안 30개가 넘는 찻잔을 씻기도 했단다. "그래도 이런 게 사람 사는 재미"라며 이형로 씨는 사람 좋게 웃는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마을 사람들을 불러모아 마을축제를 열 계획이다. 공연도 하고 음식도 나누어 먹고 그렇게 정과 흥이 끓어 넘치는 '사람 사는 동네'를 만들고 싶은 이형로김저운 부부. 이들의 마당 넓은 집에는 상큼한 봄내음과 은은한 사람의 향기가 가득하다.
/김정경 문화전문시민(전주MBC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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