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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이 없는 나라, 기초가 없는 지역

▲ 홍성덕 전주대 역사문화콘텐츠학과 교수
세종대의 일이다. 세종은 자신의 아버지인 태종 이방원에 대해서 사관들이 어떻게 기록했는지 궁금했고, 편찬이 끝난 태종실록을 보고 싶어서 사관들에게 가져오라 명하였다. 당시 좌의정이었던 맹사성 등이 말하기를 "전하께서 이를 보신다면 후세의 임금이 반드시 이를 본받아서 고칠 것이며, 사관(史官) 또한 군왕이 볼 것을 의심하여 그 사실을 반드시 다 기록하지 않을 것이니 어찌 후세에 그 진실함을 전하겠습니까."라 하니 세종은 실록 열람을 그만 두었다. 세종 13년(1431)의 일이다. 실록은 비밀기록이었고, 함부로 열람할 수 없는 역사였던 것이다.

 

최근 국정원의 고 노무현대통령 NLL대화록 열람허가와 국회의원들의 내용 공개는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행위이다. 정치적 의도로 채색된 논란의 핵심은 법을 만든 자들이 법을 어겼다는 점이다. 대화 내용의 진위에 앞서 여당 국회의원들은 일단 보안각서를 휴지조각으로 밖에 생각하지 않았다. 불감증이다. 기본이 되어 있지 않다. 국정원의 대화록이 대통령기록인가 아닌가를 떠나서 최소한의 법률이 규정하고 있는 공개금지 조차도 당리당략에 의해 아무렇지 않게 발설해버리는 기본이 없는 행위이다. 대통령기록은 역사의 평가에 맡겨야 한다. 정치적 상관관계가 얽힌 사람들에 의해서 이용될 수 없는 신성한 역사 기록인 것이다.

 

맹사성의 말처럼, 자신의 행위가 곧 바로 정치사냥꾼들의 먹잇감이 된다면 누가 진실을 기록할 것인가? NLL의 대화 내용보다 이런 일련의 정치적 행위들이 진실을 더 감추게 될 것이라는 점이 더 무서운 것이다. 대통령기록이 보호받아야 하는 기본적인 이유인 것이다. 기본이 반듯해야 뭘 해도 잘할 수 있다. 기본이 없는 나라는 언젠가 망할 수밖에 없다. 법이 중요한 것은 법이 바로 사람들이 합의한 최소한의 기본이기 때문이다.

 

사회적 합의가 기본이라면 기초는 사회적 합의 하에 이루는 학습이다. 기본이 튼튼해도 기초가 약하면 발전하기 어렵다. 기초는 기본을 사회적으로 실현하는 것인 셈이다. 세금낭비라는 비판은 기초가 잘못 되었다는 것이다. 기초가 잘못되면 반듯한 집을 지을 수는 없다. 기초가 없이 일을 벌이면 뭘 해야 할지 모른다. 국가정책으로 시행된 많은 일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아직도 국가시책을 생각하면 먼저 떠올리는 것이 하드웨어이다. 몇백억짜리 건물을 짓거나, 도로를 내는 데만 집중한다. 4대강 사업이 대표적이다. 기초를 튼튼히 해야 할 학문분야의 예산은 4대강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원전의 비리도 마찬가지이다. 기본과 기초를 갖추진 못한 인재들의 쌈짓돈이 된 것이다. 국민의 안전에 대한 불감증이다.

 

집을 짓긴 지었지만 뭘 해야 할 지 모르는 대표적인 건물 한국전통문화전당이다. 17회 한지문화축제가 이곳에서 열렸는데, 무슨 건물인지 아는 사람을 없었다. 한스타일진흥원으로 세워진 건물, 지금은 한국전통문화전당이라는 이름을 가졌는데 무슨 일을 하는지는 아무도 모르는 건물, 기초가 없기 때문이다. 전통문화의 도시, 가장 한국적인 도시 전주가 가지고 있는 현실이다. 전통문화도시의 이름은 얻었지만 전통문화에 대해 무엇을 가지고 있는지, 어떤 능력을 발휘해야 하는지, 무엇을 드러내야 하는지, 누구에게 무엇을 보여주고 가르쳐야 하는지 통 알 수 없다. 뭔가 있을 것 같은데 뭔지 알 수 없는 참으로 복잡한 도시가 되는 것은 아닌지. 전라감영 복원문제가 지지부진 한 것만큼 갑갑할 노릇이다. 기본 없는 나라처럼 기초 없는 지역이 누군가의 불순한 의도에서 재생산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알 수 없지만, 지금이라도 시작해야 할 것이다. 튼튼한 기초를 쌓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 것이지 살피고, 곧바로 실천에 옮겨야 할 때이다. 정치가 문화에 우선할 수 없고, 문화는 사람에 우선할 수 없다. 사람이 사람다운 세상을 만들고, '백성들이 곧 하늘이다.'라는 조선시대 국왕들의 정치 철학은 이 사회에 가장 기본이 되고 기초가 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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