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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복효근(卜孝根) 편] 변증법적 실존 미학

▲ 복효근 시인
남원 출생인 복효근(1962-)시인은 일상적 체험이나 자연적 소재 속에서 비판적 현실인식과 자기성찰로 가치 지향적 세계를 향하면서 존재에 대한 탐구와 생의 깊이를 더하는 변증법적 실존미학을 추구하고 있다.

 

늘 푸르다는 것 하나로

 

내게서 대쪽같은 선비의 풍모를 읽고 가지만

 

내 몸 가득 칸칸이 들어찬 어둠 속에

 

터질 듯한 공허와 회의를 아는가

 

고백하건대

 

나는 참새 한 마리의 무게로도 휘청댄다

 

흰 눈 속에서도 하늘 찌르는 기개를 운운하지만

 

바람이라도 거세게 불라치면

 

허리뼈가 뻐개지도록 휜다 흔들린다

 

[.....]

 

아아 고백하건대

 

그 놈의 꿈들 때문에 서글픈 나는

 

생의 맨 끄트머리에 있다고 하는 그 꽃을 위하여

 

시들지도 못하고 휘청 흔들리며 떨며 다만

 

하늘 우러러 견디고 서있는 것이다.

 

- '어느 대나무의 고백'에서

 

'칸칸이 들어찬 어둠 속에/ 터질 듯한 공허와 회의', '바람이라도 거세게 불라치면 / 허리뼈가 뻐개지도록 휜다 흔들린다'등과 같이 현실과 맞서 있는 시인의 자세가 사뭇 비장하다. '생의 맨 끄트머리에 있다고 하는 그 꽃을 위하여/ 시들지도 못하고 휘청' 거리며 버티고 있는 그의 가치 지향적 열망이, 마치 '한 발 재겨 디딜 곳조차 없는 - 북방 고원 서릿발 칼날진 그 우에서도'('절정') 광복을 위해 한 몸을 던진 육사의 지사적 풍모를 연상케 한다.

 

"그의 시는 개인의식과 사회·역사의식이 서로 서로 껴안고 감싸면서 서정성과 예술성 그리고 철학성을 함께 섭수해 들임으로써 새로운 서정시의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열어가고 있다."(김재홍) 사랑과 이별이라고 하는 어찌할 없는 인간의 숙명적 고독을 '익어야 하는 것은 갈빗살인데 / 석쇠가 먼저 달아오른다.// 너를 사랑하기에 숯불 위에 / 내가 아프다'('석쇠의 비유'에서〉)고 절절하게 풀어내면서, '하나'가 되기 위해 '내가 먼저 달아올라 - 너를 안고 벌겋게 - 뒹굴어도' 영원한 타자로 끝내 분리될 수밖에 없는 석쇠의 고통과 외로움에 대한 응시도 그 중의 하나다.

 

그걸 내 마음이라 부르면 안되나

 

토란잎이 간지럽다고 흔들어대면

 

궁글궁글 투명한 리듬을 빚어내는 물방울의 그 둥근 표정

 

토란잎이 잠자면 그 배꼽 위에

 

하늘 빛깔로 함께 자고선

 

토란잎이 물방울 털어내기도 전에

 

먼저 알고 흔적 없어지는 그 자취를

 

그 마음을 사랑이라 부르면 안되나

 

- '토란잎에 궁그는 물방울같이는' 전문

 

안도현 시인은 '토란잎과 그 위에서 구르는 물방울의 관계를 이렇게 아름답게 그려 놓은 시를 나는 아직 보지 못했다. 토란잎도 둥글고 물방울도 둥글다. -시인은 생태학적 상상력과 불교적 사유를 배경으로 시적 자아의 보폭과 목소리의 크기를 조절하는 데 성공하고 있다. 세속을 벗어나지 못하면서도 세속에 동화되지 않으려는 자아가 부단히 자기 성찰을 행하는 모습은 곳곳에서 빛나는 시들을 낳는다.'고 하였다. 그러나 양자가 서로 상처 받지 않고 둥글기 위해서는 '토란잎이 물방울'을 털어내기 전에 흔적 없이 내가 먼저 사라지는 자기 절제와 희생이 담보되어야 함을, 그리하여 '사랑은 그저 주는 것이지, 취하는 것이 아님(love is giving, not take)'을 비유적 암시로 일깨워 주고 있다.

 

시인·백제예술대학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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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용 kimwy@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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