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 활동 이종희 시인 현지 교육봉사 인연 / 5년여 작업 끝 시집 러시아어로 번역 출간
톨스토이, 도스토예프스키, 체호프, 막심 고리키, 고골리, 투르게네프, 푸시킨…
우리에게도 널리 알려진 러시아 대문호들이다. 그렇다면 한국 문학이 러시아에는 얼마나 알려져 있을까. 2001년 한국문학번역원이 설립된 후 러시아어로 번역된 한국 시인의 작품은 고작 4~5명 정도다. 고은·정지용·김남조 시인 등의 시집이 러시아어로 번역돼 출간됐을 뿐이다.
중등 교장으로 정년퇴임한 후 전주에서 활동하는 이종희 시인(74)의 시가 러시아어로 번역돼 시집으로 발간됐다.'새해를 맞으러 뿌쉬낀으로 간다'(모아드림). 이 시인의 5년여에 걸친 노력 끝에 거둔 결실이다. 이 시집은 한·러 대역((對譯, 원문의 단어, 구절, 문장과 맞대어서 번역함) 시집으로 발간돼 러시아에 한국문학을 알릴 수 있다는 점에서 뿐 아니라 러시아에 사는 우리 교포(고려인)들에게 우리 글로 된 시를 함께 접할 수 있는 시집으로서도 의미를 더한다.
이 시인의 시가 러시아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정년퇴임 후 러시아에'교육 선교'로 나서면서다. 시인은 쌍뜨 빼쩨르부르그의 근교에 있는 뿌쉬낀에서 러시아 교포들에게 한글을 가르치고 한국 혼을 심는 봉사활동을 한 게 그 계기가 됐다.
당시 러시아에서 만난 통·번역 프리랜서인 김환씨가 1차 번역 작업을 했고, 러시아 시인이자 언론인인 블라지미르 쎄멘체크씨가 2차 작업을 맡았다. 이 시인은 특히 블라지미르를'귀인'이라고 했다. 당초 2차 번역자로 나섰던 인사와 문제가 생겼을 때 만난 블라지미르가 그의 시에 감동을 받아 선뜻 맡아줬기 때문이다.
실제 블라지미르는 "작품을 번역하는 동안 푸른 하늘로 솟아오르게 해 그곳에서 내가 모르는, 그러나 친근하고 이해가 가는, 놀랍고 새로운 것들로 충만한 열정과 철학적 사색으로 덮여 있는 세상을 지켜보게 했다"는 심정을 시집 서평에 담았다. 그는 또 "진정한 시는 꽃과도 같은 것이다. 꽃의 아름다움은 설명이나 묘사로 대신할 수 없으며 꽃이 지니고 있는 조화로운 비율 또한 측정하거나 재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시를 번역하면서 그 감흥은 이국의 식물이나 씨앗을 얻게 된 사람의 느낌에 비할 수 있다"는 감회도 비쳤다.
가족을 소재로 한 시들이 친근하게 와 닿았으며, 광범위한 테마에 놀랐고, 조국의 풍요로운 역사와 문화에 대한 긍지도 흥미로와 러시아 사람들의 마음에 감동을 주리라는 게 역자의 평이다. 서정과 서사에 담긴 동방 특유의 비유와 가슴 깊이 파고드는 선율, 신뢰를 주는 억양, 깊은 신앙을 가진 예지가 사로잡는다고 덧붙였다.
이 시인은 흔쾌히 나서준'귀인'이 고마워서 그를 전주의 집으로 초대해 10여 일간 한국에서 함께 보냈으며, 한국의 장묘문화에 관심을 갖고 있던 그를 보며 쓴'묘비명'이라는 시를 시집에 담기도 했다.
시인의 시는 이번 시집이 발간되기 전 블라디보스토크에 소재한 문예지 〈루베쥐〉에 21편의 작품이 평과 함께 집중 소개됐으며, 크라스노스야르스크 지역에서 발간되는 문예지 〈젠 이 노치〉에서도 7편의 작품이 실리며 러시아에 존재감을 알렸다.
그의 시가 이렇게 한러 대역 시집으로 나오기까지 5년여에 걸쳐 250여개의 이메일과 70여 통의 국제전화가 오갔다고 한다.
시집은 1부 거기서 살고 싶다, 2부 살만 한 세상, 3부 하늘 길을 간다, 4부 기도시로 나눠 120여 편의 시가 수록됐다. 러시아어로 번역된 시는 여기에 주(註)를 달아 러시아 독자들에게 시에 대한 이해를 돕도록 했다. 총 800페이지에 이른다.
이 시인의 시집에 실린 시와 관련, 문효치 시인과 문학평론가 유성호 교수(한양대)가 해설을 넣었으며, 제자이기도 한 이동희 시인이 발문을 맡았다. 문효치 시인(전 국제펜클럽한국본부 이사장)은"휴머니즘과 헤브라이즘 즉 기독교 정신이 혼합된 시인의 시집이다"며,"삶의 흐름을 거스르지 않고 정서적 감성과 이성을 조화롭게 조율하여 삶의 여백을 채워나가는, 그리하여 시작과 마지막의 울림이 있는 시인의 삶의 기록이다"고 평했다.
시집은 1차 1500부가 발행됐으며, 내년 인천 소재 한국이민사박물관 등 러시아 관련 단체 등에 배포할 계획이다. 이 시인은 "필생의 프로젝트로 삼아 한러 대역 시집을 낼 수 있게 됐다"며, "러시아 교포들이 우리 문학에 자긍심을 가질 수 있는 데 힘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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