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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 등재 남사당놀이와 처용무

▲ 정상열 국립민속국악원장
우리나라는 전쟁의 폐허를 헤쳐내고 급격한 경제성장을 이루며 1970~1980년대는 가발과 신발, 1990년대 조선과 자동차, 2000년대 휴대전화와 몇몇 대기업 등 피눈물 나는 땀과 노력으로 이제는 어느덧 IT강국으로서 선진국의 문턱을 넘어서려 하고 있다. 하지만 불과 얼마 전까지도 외국인들에게 "KOREA"하면 떠오르는 국가이미지를 물었을 때, 대부분 김치와 자동차 외엔 더 이상 알지도 못할뿐더러 '관심'도 없었다.

 

옛날 대표적 대중문화 남사당놀이

 

그런데 10여년 전부터 이런 상황이 대역전되어 세계인들이 우리의 문화와 한국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바로 한류가 전 세계 문화의 중심에 우뚝 서서 유행을 선도했고 지금은 그 중심에 아이돌 그룹으로 대표되는 대중문화가 있다. 아이돌들의 춤 솜씨는 정말 기가 막힐 정도로 현란하고 완성도가 높은 동작들을 구사하는데, 그들은 이러한 춤동작과 노래를 구사하기 위해 짧게는 1년에서 길게는 10년에 이르는 준비 기간을 거쳐 대중들 앞에 나선다. 바로 이렇게 눈물겨운 기다림 속에서 피나는 노력과 열정으로 준비했기에 세계인들이 그들의 춤과 노래에 반하는 것이다.

 

문득 이런 생각을 해본다. 과거에도 대중문화가 있었을까? 당연히 있었다. 지금과는 좀 방식이 달랐을 뿐, 과거에도 엄연히 대중문화는 존재하고 있었다. 멀리 동네 어귀에 꽹과리 소리가 다다르면 그 뒤를 따르는 각 종 악기들과 악사, 광대와 재주꾼, 소릿꾼 등 수 많은 볼거리들이 동네마당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바로 남사당놀이(중요무형문화재 제3호, 2009년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 등재)이다.

 

남사당놀이는 서민사회에서 자연 발생한 민중놀이로, 꼭두쇠를 정점으로 공연을 기획하는 화주, 놀이를 관장하는 뜬쇠, 연희자인 가열, 새내기인 삐리, 나이든 저승패와 등짐꾼 등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아울러 풍물, 버나, 살판, 어름, 덧뵈기, 덜미 등으로 이루어져 당시에는 볼 수 없었던 수 많은 볼거리로 대중들의 혼을 쏙 빼놓으며 사로 잡았고, 이들이 들려주는 소리판에서 삶의 애환과 지난한 삶을 위로 받는 소중한 기회를 제공 받았다. 남사당놀이에는 다양한 볼거리가 있었는데 그중에서 덧뵈기는 탈을 쓰고 하는 일종의 탈놀이다.

 

그런데 궁중정재(무용)중에서 덧뵈기처럼 탈을 쓰고 춤을 추는 유일한 궁중정재가 딱 하나 있다. 바로 사람형상의 가면을 쓰고 추는 처용무(중요무형문화재 제39호, 2009년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 등재)가 그것이다. 처용무는 통일신라 헌강왕(재위 875∼886)때 살았던 처용이 아내를 범하려던 역신(疫神 : 전염병을 옮기는 신) 앞에서 자신이 지은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춰서 귀신을 물리쳤다는 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처용무는 5명이 동서남북과 중앙의 5방향을 상징하는 옷을 입고 추는데 동은 청색, 서는 흰색, 남은 붉은색, 북은 검은색, 중앙은 황색이며, 춤의 내용은 음양오행설의 기본정신을 기초로 하여 악운을 쫓는 의미가 담겨 있다.

 

1000년 역사 자랑하는 처용무

 

처용무는 그 춤이 기원으로부터 1000년을 넘어 우리민족의 역사를 관통하며 현재까지 전승되어 오고 있는데, 이는 말 그대로 문화민족으로서 긍지를 갖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한류와 아이돌, 남사당과 처용무를 생각하며 천년 후의 우리 문화는 어떻게 그려질지 참으로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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