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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공연 극단 '별'의 세 남자] "야외공연은 가장 정확하고 냉정한 무대죠"

두 배우와 마술가가 뭉쳐 소품인형 직접 뚝딱 만들고  불러주면 어디든 달려가 / 내년부터 판소리 다섯바탕 마리오네트 인형극 만들 것

▲ 김호, 박규현, 송이석씨(왼쪽부터)가 한옥마을 공연에 앞서 준비를 하고 있다.

분명 만나기로 한 날이 맞는데 연락이 되지 않았다. 날짜와 시간이 적힌 수첩을 펼쳐서 확인한 다음 한번 더 전화를 걸었다. 다행히 전화를 받았다. 주변이 시끄러운 듯 했고 전화기의 주인은 다짜고짜 전주 한옥마을로 오라고 했다. 그들의 이번 무대는 한옥마을이라는 말과 함께. 도리가 있나. 별 볼 일도 없이 바빴던 하루를 뒤로 하고 극단 '별'을 보기 위해 나섰다. 연극배우인 한 남자, 그리고 얼마 전까지 동문 네거리 술꾼들에게 '별아저씨', '별사장님'으로 불리우던 한 남자. 현재 법대생인 또 다른 남자. 시커먼 세 남자가 참으로 어울리지 않는 '별'이라는 이름으로 뭉쳤다. 거리극을 하는 극단 '별'의 단원들. 송이석 씨(47)와 박규현 씨(37), 김호 씨(27)가 그 주인공이다. 이들에겐 거리가 공연장이고 작은 수레가 그들의 무대다.

 

△세 남자의 인형극

 

11월 한옥마을을 지나는 바람은 상냥하지 않았고 그곳을 지나는 사람들의 눈길을 붙드는 것은 너무 많았다. 공연이 시작되자 먼저 알아챈 것은 아이들이었다. 아이들이 걸음을 멈추었으므로 아이의 손을 잡은 부모들도 그냥 지나칠 수 없게 됐다. 인형들이 하나둘 아이들 앞에 나왔다. 짧게는 3~4분, 길게는 5~6분 정도의 이야기를 담은 박규현 씨의 인형극이 이어졌고 마지막으로 김호 씨의 마술 공연이 펼쳐졌다. 눈을 반짝이며 마술사의 손놀림을 쫓는 아이들과 어른들. 그때 극단 '별'의 맏형 송이석 씨는 4m가 넘는 도깨비 인형을 짊어지고 공연장 주변을 돌고 있었다. 공연을 마친 박규현 씨에게 물었다. 찬바람 막아주는 공연장을 떠나 밖으로 나올 결심을 한 것은 무엇 때문이냐고. 

 

"야외 공연의 어려움은 어느 정도 예상을 하고 처음에 시작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상 의외의 상황들이 생겨요. 당장 공연하는 장소에서 제가 관객과 소통하고 같이 호흡을 하지 못하면 바로 사람들이 가버리니까요. 바로 그런 점 때문에 가장 정확하고 가장 냉정한 무대가 거리인 거 같아요."

 

△아이들 눈망울이 힘

 

무려 10년씩 나이 차가 나고 공통점도 없어 보이는 세 남자는 어떻게 만나 '별'이 됐을까. 극단 '별'이 만들어 진 것은 지난 2011년도 여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처음엔 두 남자의 작당(?)으로 시작됐다. 인형극단 '꼭두'에서 활동한 송이석 씨와 평소 친분이 있던 연극배우 박규현 씨는 인형극과 거리극에 대한 공통 관심사를 발견하게 됐고 그때부터 두 남자는 제대로 눈이 맞았다.

 

전주시 완산구 풍남동 2가에 마련한 송이석 씨의 목공예 작업실에서 날이면 날마다 속닥속닥한 끝에 극단 '별'이 탄생하게 된 것. 공연에 대한 구상은 두 남자가 함께하고 이야기를 다듬는 작업은 박규현 씨의 몫. 인형은 송이석 씨가 직접 만든다. 어른 키를 훌쩍 넘기는 커다란 도깨비 인형에서부터 줄을 연결해 조종을 하는 크고 작은 마리오네트 인형들, 손가락에 끼워서 조작하는 소품 인형, 인형극의 무대가 되는 손수레에 이르기까지. 인형극에 쓰이는 인형은 모두 송이석 씨의 손끝에서 만들어졌다.

 

그리고 극단 '별'의 첫 번째 거리공연은 2년 전. 전주 완산칠봉에 마련된 근린시설 안에서였다. 두 남자에겐 여러 모로 잊을 수 없는 공연이다. 음악이 필요해서 음향장비를 준비해갔는데 하필이면 태풍이 지나간 후여서 전기 시설이 고장 난 상태. 궁리 끝에 차를 가지고 올라온 두 남자. 앞뒤 네 짝의 차문을 활짝 열어둔 채 차의 오디오로 음악을 재생해 가면서 공연을 무사히 치를 수 있었다. 공연 후에 두 사람은 없는 형편에 2000만 원짜리 음향장비로 공연을 했다고 우스갯소리를 주고 받기도 했다.

 

잊히지 않는 것 하나, 바로 아이들이다. 마침 가까운 동네 아이들이 공연을 보러 왔는데 공연 내내 신기하게 바라보던 눈망울들이 아직도 기억난다고 했다. '아이들은 그냥 인형만 갖고 가는 것만으로도 참 좋아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란다.

 

단출하던 극단에 식구가 늘어난 것은 지난 봄. 올 첫 번째 공연부터 김호 씨가 '별'에 합류했고 막내 단원이 됐다. 고등학교 때부터 마술에 빠져 살았던 김호 씨. 학교 수업과 공연이 없는 날에는 방과후 교실에서 초등학생들에게 마술지도를 하고 있다. 

 

△불러도 부르지 않아도 거리공연

▲ 극단'별'이 한옥마을에서 인형극을 펼치고 있다.

세 남자가 본격적으로 함께 공연을 다닌 것은 올해 3월부터다. 전주시 교동에 자리한 한옥생활체험관 마당에서 열었고 그 인연으로 매월 넷째주 금요일에 공연을 해왔다. 거리가 이들의 무대이므로 불러 주는 곳이면 어디든 가고 때로는 부르지 않은 곳이라도 간다. 전주시 '동문거리축제'에 참가했고 부안, 남원 등을 돌아다녔다. 시장에도 가고 섬에도 다녀왔다. 학생이라고는 탈탈 털어 3명이 전부인 식도에서 바닷바람을 맞으며 전교생 앞에서 공연을 했다. 단원이 세 명인 '별' 극단은 올해 30여차례 거리 무대에 섰다.

 

단원은 단출해도 앞으로 계획은 단단하다. 앞으로는 판소리 다섯바탕으로 마리오네트 인형극을 만들어 보고 싶단다. 그래서 내년에는 먼저 다섯바탕 중에 하나를 만들어 볼 계획.  극단 꼭두에서 춘향전을 인형극으로 무대에 올린 적이 있었는데 당시 송이석 씨가 인형극에 사용된 인형을 만들었고 박규현 씨가 인형 조종자로 참여를 해본 경험이 있기 때문에 자신감을 얻었다고 한다.

 

세 남자는 꾸준히 거리에 무대를 마련하고 공연을 펼칠 공간을 만들 생각이다. 별스럽게도 극단 '별'의 단원들은 거리극이 좋으니까. 별나게도 이들은 거리에서 만난 관객이 좋으니까.

● 직장인에서 배우로 변신한 박규현씨 "어느날 지는 해 보며 불쑥 연극하고 싶어졌어요"

11월의 햇살이 다정한 날. 박규현 씨를 다시 만났다. 20대 후반에 연극을 시작해서 10년간 무대에 올랐던 배우다.

그는 한동안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다 연극판에 뛰어들었다. 이동통신 관련된 분야에서 일을 했지만 하면 할수록 그에게 맞지 않는 옷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지는 해를 보는데 불쑥 마음 속에서 무언가가 치밀었다.

'연극을 해야겠구나.' 밑도 끝도 없는 그 생각을 따라간 그는 늦은 나이에 연극배우가 되었다. 평소 좋아하던 영화 관련 일도 아니고 학창시절 빠져 지낸 음악도 아니고 왜 하필 연극이었는지는 아직도 그에게 풀리지 않는 숙제.

지는 태양을 따라간 그는 연극무대에서 떠오르기를 꿈꾸었던가 보다.

그 후로 10년 동안 무대에서 기꺼운 마음으로 웃고 울었다. 그리고 거리공연은 그의 삶을 또 한번 바꾸어 놓았다. 맨 처음 거리극에 대한 그의 관심은 우연한 만남에서 시작했다. 

김정경 문화전문시민기자(전주MBC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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