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념사업회 〈전주성을 점령하라〉 전주·완주 유적지 어제·오늘 담아
동학농민혁명은 전북에서 일어나 전국에 떨친 한국 역사상 가장 큰 농민항쟁이었다. 동학농민혁명을 빌미로 청나라와 일본군이 들어와 청일전쟁의 도화선으로 작용했고 전통적인 중국 중심의 동아시아 지역질서까지 재편시켰다. 시민사회단체를 중심으로 동학농민혁명이 갖는 역사적 의미가 1980년대 이후 활발하게 재조명됐고, 이를 바탕으로 혁명 발생 110년만인 2004년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등의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혁명에 관한 기념사업들은 여전히 많은 과제를 남겨두고 있다. 특히 기념일 제정을 두고 지역간 첨예하게 맞서 혁명의 의미를 퇴색시키고 있다. 또 혁명의 역사적 흔적들이 대부분 지워졌고, 유적지 또한 체계적으로 관리되지 못하는 게 현주소다.
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이사장 이영호)가 내년도 혁명 2주갑(120년)을 앞두고 발행한 〈전주성을 점령하라〉는 앞으로 어떻게 혁명을 기려야 할 지 제시하고 있다. '전주·완주 동학농민혁명 유적지 답사안내서'로 제작됐지만, 혁명의 전체적 윤곽과 함께 전주·완주 유적지별로 과거와 현재의 거울로 비추고 있다.
사업회에 따르면 지금까지 동학농민혁명을 기념하기 위해 전국에 조성된 기념시설물은 70여곳. 1895~1935년까지 조선정부와 유림·지방유지 등이 건립·설치한 기념시설물 40여 곳, 1960~80년대 군사독재정권시기에 관주도로 설치된 시설물 10여 곳, 종교단체인 천도교에서 설치한 시설물 10여 곳, 민간단체에서 설치한 기념물 10 곳 등을 합쳐서다.
사업회는 1960~1980년대 군사정권시기에 추진된 기념사업을 3가지 특징으로 분류했다. 군사쿠데타로 정권을 탈취한 세력들이 취약한 정통성을 가리고 미화하기 위해 동학농민혁명의 의미를 편취해 정치적으로 이용한 경우, 특정 종교단체와 관련된 기념사업을 시혜적으로 허용한 경우, 민간 기념사업을 통제하면서 특정지역 몇 곳에만 기념사업을 추진하거나 묵인한 경우 등이다.
이 책에서는 또 동학농민혁명군의 전주성 점령과 전주화약이 갖는 의미를 부각시켰다. 전라도 수부인 전라감영이 자리한 전주성은 조선 건국자의 본향이라는 상징성과 함께 풍부한 물산의 집산지로 조선왕조 재정의 근간을 이루는 중요한 곳이었기 때문에 1893년 고부에서 모의된 사발통문 거사계획 때부터 제1차 점령목표였다. 그래서 1894년 4월27일 농민군의 전주성 점령은 혁명 전 과정에서 농민군이 이룬 최대 승전이었다. 특히 농민군의 전주성 점령 후 조선정부와 동학농민군 사이에 '전주화약'이 성립됐고, 이를 바탕으로 전라도 53개 군현에 집강소를 설치, 폐정개혁을 단행한 것은 우리 역사상 최초로 피지배계층인 농민이 직접 통치권을 행사한 근대 민주정치의 효시라고 평가했다.
동학농민군의 숙영지였던 삼천, 진을 쳤던 용머리고개, 가장 먼저 진격했던 전주성 서문지, 집강소 총본부인 대도소가 설치됐던 전라감영 터 등의 역사적 의미와 현재의 모습들을 책에서 담고 있다.
사업회는 "동학농민혁명은 한국근대 민족민주운동의 총 본산으로 동아시아 역사와 세계역사에서 그 맥락과 의미를 추구할 때 비로소 그 진면목을 확인할 수 있는 거대한 산이다"며, "전라도 지방사로 왜곡·축소되어온 동학농민혁명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나갈 기념사업 모색이 절실히 요청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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