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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전북일보 신춘문예 동화 당선작] 붕어빵 잉어빵 형제 - 김정미

▲ 그림=권휘원

남동생 승하가 우리 학교 병설유치원에 입학했다. 그래서 요즘 엄청 신경 쓰인다. 동생을 챙기는 게 힘들어서 이러는 건 절대 아니다. 내가 얼마나 듬직한 형인지 알 사람은 다 안다. 승하도 나를 굉장히 잘 따르고 말이다.

 

하지만 승하랑 등교하는 건 정말 조마조마한 일이다. 오늘도 친구들이 성가신 질문을 할까봐 가슴이 콩닥 거렸다. 친구들이 동생 이름표를 못 보도록 숨기는 것도 한 두 번이지 언젠가는 모두 알게 될 것이다. 승하도 언젠가는 물어볼 텐데, 그땐 뭐라고 말해야 하지? 머리가 다 지끈거린다.

 

3교시 수업이 끝났을 때, 누가 나를 불렀다.

 

“박준하, 네 동생 왔어!”

 

나는 화들짝 놀라 문을 쳐다봤다. 복도에 노란색 유치원복을 입은 승하가 서 있었다. 나는 재빨리 복도로 뛰어갔다.

 

“여기 왜 왔어?”

 

말도 없이 찾아온 승하를 보니 화가 났다. 승하는 뭐가 좋은지 헤벌쭉 웃고만 있다. 친구들이 승하 이름표를 보면 어쩐담? 나는 승하 손을 잡고 계단으로 끌고 갔다.

 

승하가 내 걸음을 따라잡지 못하고 철퍼덕 넘어졌다. 승하는 바보처럼 엉엉 울고만 있었다.

 

“빨리 안 일어나?”

 

나는 승하를 일으켜 세우면서 엄마가 말할 때처럼 또박또박 무섭게 말했다.

 

“형 미워! 엄마가 크레파스 안 챙겨줘서 빌리러 왔단 말이야.”

 

“그러게 진즉에 준비를 했어야지!”

 

크레파스를 꺼내러 사물함에 다녀왔는데 우리 반 송이가 승하를 달래고 있었다. 송이는 3학년 중에서 제일 예쁘다. 공부도 잘하고 말도 잘해서 인기도 많다. 혹시 송이가 승하 이름표를 본 건 아닐까 걱정이 됐다.

 

“둘이 붕어빵이다.”

 

송이가 승하랑 나를 번갈아 쳐다보면서 생글거렸다. 송이 오른쪽 볼에 보조개가 움푹 파였다. 가슴이 쿵쾅거렸다.

 

승하랑 내가 붕어빵이라고? 나는 승하 얼굴을 오래 들여다봤다. 동글동글한 얼굴에 시커먼 눈썹, 낮은 콧대랑 까무잡잡한 피부가 나랑 닮은 것도 같았다.

 

승하를 돌려보내고 송이랑 함께 반으로 들어갔다. 송이가 눈을 깜빡거리며 내게 질문을 했다.

 

“준하야, 궁금한 게 있는데 물어봐도 돼?”

 

마음속에서 새 한 마리가 노래를 부르는 것 같았다. 나는 활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가장 자신 있는 수학 문제를 물어보면 좋으련만. 그럼 멋지게 대답해 줄텐데.

 

“너는 왜 남동생이랑 성이 달라?”

 

송이의 질문에 노래 부르던 새가 포르르 날아가 버렸다. 아까 승하 이름표를 봤나 보다. 갑자기 머릿속이 함박눈 내린 운동장처럼 새하얘졌다.

 

“내 성은 원래 남동생이랑 똑같은 김씨였어. 그런데 어릴 적 시골 할머니 댁에서 오래 살아서 성이 바뀌었어. 할머니 성함이 박 복자 순자시거든. 그래서 내 성도 ‘박’이 되어 버린 거야.”

 

말도 안 되는 이야기들이 내 입에서 술술 흘러나왔다. 다행이도 송이는 내 말에 속아 넘어가는 눈치였다.

 

“와, 부럽다. 나도 성 바꾸고 싶어.”

 

송이는 양 씨다. 그래서 별명이 ‘양송이버섯’이 됐다. 친구들이 아무리 놀려대도 송이는 늘 당당했다. 그런데 많이 힘들었나 보다.

 

“나도 할머니랑 오래 살면 성이 바뀔까?”

 

“글쎄……. 그, 그럴 지도.”

 

나는 대충 둘러대고 서둘러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꾹 참았던 숨을 길게 내쉬었다.

 

송이가 내 말을 믿어줘서 정말 다행이었다. 승하랑 내가 왜 성이 다른지 말하려면 마음속에 꼭꼭 담아뒀던 비밀을 다 끄집어내야 한다. 내가 아주 어릴 적에 친 아빠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는 것, 엄마가 지금 아빠랑 결혼해서 남동생 승하를 낳았다는 것, 그래서 승하랑 내가 성이 다르다는 것 모두 말이다.

 

내가 말을 배운 후 아빠라고 부른 사람은 지금 아빠 밖에 없다. 그래서 나는 한 번도 아빠를 가짜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하지만 친구들에게 사실을 말해주려면 지금 아빠를 ‘새 아빠’라고 불러야 한다. 그 말을 꺼내는 순간 나도 가짜 아들이 돼버릴 것 같아 무섭다.

 

내 성을 김씨로 바꿔달라고 졸라댔던 적도 있다. 하지만 시골에 계신 할머니가 반대해서 바꿀 수 없었다. 친 아빠를 낳은 할머니는 내가 박씨 가문의 삼대독자라서 성을 바꾸면 절대 안 된다고 말씀하셨다. 하늘에 계신 조상님들이 화가 나서 벌을 내린다는 거다. 할머니가 아주 무서운 표정으로 말했기 때문에 더 이상 조를 수가 없었다.

 

쉬는 시간, 이번에는 유치원 선생님이 나를 찾아왔다.

 

“승하가 아직도 안 와서 찾으러 왔어.”

 

“네? 아까 크레파스 줘서 보냈는데…….”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선생님 표정도 어두워졌다.

 

선생님과 나는 서로 흩어져서 승하를 찾기로 했다. 먼저 4층을 돌아봤다. 4층에는 3학년 교실과 어학실, 과학실이 있다. 수업을 마치고 나오는 아이들 사이에 승하는 보이지 않았다. 3층으로 내려갔다. 2학년 교실과 컴퓨터실, 방송실 순으로 둘러봤지만 승하는 없었다. 나는 발을 동동 구르며 2층으로 내려갔다. 화장실까지 샅샅이 뒤져봤지만 승하가 없다. 눈물이 찔끔 삐져나오려고 했다.

 

나는 한숨을 쉬며 창밖을 내다봤다. 그때 ‘생태 연못’에 노란색 옷을 입은 꼬마가 쪼그려 앉아 있는 게 보였다. 등을 돌리고 있어서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승하가 분명했다.

 

나는 재빨리 연못으로 뛰어갔다.

 

“승하야, 김승하!”

 

승하가 뒤돌아봤다.

 

“형!”

 

“너 여기서 뭐해?”

 

“유치원에 가려는데 길을 잃어버렸어. 형! 이거 봐봐. 잉어들 정말 크지? 새끼도 있어!”

 

연못 안에는 알록달록 고운 옷을 입은 잉어들이 헤엄치고 있었다.

 

그때, 승하가 뜬금없이 이렇게 말했다.

 

“잉어들은 좋겠다. 이름도 없으니까 성이 왜 다르냐는 질문도 받지 않을 거 아냐.”

 

갑자기 머리가 띵했다.

 

“왜? 친구들이 형이랑 왜 성 다르냐고 물어봐?”

 

승하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승하에게도 사실을 말해 줄 때가 되었나 보다. 하지만 용기가 나지 않았다. 머리가 뒤죽박죽 했다.

 

“이따 집에 갈 때 형이 왜 그런지 말해줄게.”

 

나는 승하가 뭐라고 말하기 전에 얼른 유치원으로 데려다 줬다.

 

수업을 받는 내내 승하에게 뭐라고 말해야 할지 걱정이 됐다.

 

학교 수업을 마치고 유치원으로 가면서 머리를 굴려봤지만 뾰족한 답이 생각나지 않았다.

 

유치원에서 날 기다리는 승하와 함께 집으로 향했다. 학교에서 집까지는 30분이 걸린다. 승하 혼자서 다니기엔 정말 먼 거리다.

 

약국 사거리에 도착했을 때 승하가 내 팔을 당기며 말했다.

 

“형! 붕어빵 사 줘.”

 

약국 앞 포장마차에서 턱수염이 숭숭 솟은 아저씨가 붕어빵을 굽고 있었다. 승하랑 나는 붕어빵을 가장 좋아한다. 달달한 팥을 혀로 살살 녹여먹으면 정말 맛있다.

 

아저씨는 숟가락으로 팥을 떠서 틀 안에 열심히 담고 있었다. 노릇노릇 구운 붕어빵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나는 용돈으로 받은 2천원을 주머니에서 꺼냈다.

 

“아저씨 붕어빵 주세요.”

 

“이건 붕어빵이 아니라 잉어빵인데?”

 

아저씨가 손가락으로 종이봉투를 가리켰다. ‘황금 잉어빵 출시’라고 써있었다. 잉어빵은 붕어빵이랑 생김새가 똑같았다. 뱃속에도 단팥 앙금으로 꽉 차있다. 냄새도 붕어빵처럼 고소하다. 그런데도 왜 잉어빵이라고 부르는 건지 모르겠다.

 

“붕어빵이랑 똑 같이 생겼는데 왜 잉어빵이라고 불러요?”

 

“그냥 이름만 다르지, 둘이 형제야 형제.”

 

아저씨가 붕어빵, 아니 잉어빵을 뒤집으면서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생김새도, 뱃속에 팥을 품고 있는 것도 똑같은데 다른 이름으로 불리는 잉어빵이 나처럼 느껴졌다.

 

우리는 붕어빵을 한 손에 들고 집으로 걸어갔다. 내가 잉어빵의 바삭바삭한 테두리를 깨작깨작 뜯어먹으니까 승하도 날 따라했다. 갑자기 승하가 나를 불렀다.

 

“형아, 형아.”

 

“응?”

 

“붕어빵이랑 잉어빵도 아빠가 다른 가봐. 둘 다 이름은 ‘어빵’인데 성이 ‘붕’이랑 ‘잉’인 걸 보면 말이야.”

 

숨이 턱 막히는 것 같았다.

 

“너 알고 있었어?”

 

“옛날에 형이랑 시골에 놀러갔을 때 할머니가 하는 말 다 들었다 뭐.”

 

승하가 나에게 혀를 쏙 내밀었다. 나는 승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러곤 잉어빵을 한입에 넣어 버렸다. 승하도 나를 따라 잉어빵을 입속에 욱여넣었다. 우리는 복어처럼 빵빵해진 서로의 볼을 쳐다보며 키득거렸다. 달달한 팥이 입안에 가득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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