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춘문예는 문학인의 추억을 불러오고, 문학 지망생들이 꿈을 꾸게 한다. 등단 작가 치고 신춘문예 때문에 가슴 설레지 않았던 이가 누가 있겠는가. 작가를 지망하는 사람이라면 신춘문예를 통해 문학의 길로 들어서고자 하는 꿈을 꾸게 마련이다. 우리 심사위원은 응모작을 추억보다는 꿈에 중점을 두고 읽었다.
김경락, 서귀옥, 고동현, 김만성, 황지호, 성보경 등의 작품을 살펴보았다. 일상사를 평상적으로 다룬 작품들은 문학을 지망하는 이들의 꿈과는 거리가 있다고 판단해서 제쳐놓았다. 그 결과 김경락의 〈폭설 내린 날〉, 서귀옥의 〈낙화(烙畵)〉, 고동현의 〈청바지 백서〉 세 편을 놓고 검토했다.
김경락의 〈폭설 내린 날〉은 개척교회 목사가 겪는 현실의 문제와 목회자로서 성찰과 내면의 갈등을 무난하게 형상화한 작품이다. ‘착한소설’로 평가할 수 있는 안정성이 돋보이기는 하지만, 치열한 내면의 고뇌는 스쳐갔다는 허전함이 남는 작품이다. 일상에 매몰된 작품은 의식의 지평을 열기 어렵다.
폭력과 마모되는 육체와 인간의 도덕적 타락을, 인간에 대한 증오심과 함께 그리고 있는 〈낙화〉는 응축된 플롯 속에 사태를 다루는 솜씨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심리묘사가 치밀하고 플롯 구성이 탄탄하다. 그러나 ‘소설적 자유’라는 점에서는 작가의 자기해체나 자기분석이 뒤따라야 할 것으로 보았다. 소설적 근성이라는 것을 살려 보기 바란다.
〈청바지 백서〉는 현대사회에서 개인이 소외되는 메커니즘과, 결국은 실종에 이르고 마는 보이지 않는 구조적 억압을 치밀하게 그린 작품이다. 외주업체에서 어느 회사 전산실로 파견된 주인공이 생일선물로 받은 ‘셔츠 한 벌’이 계기가 되어, 그 셔츠에 맞는 청바지를 구입하러 돌아다니다 끝내 실패한다. 선물로 받은 티셔츠에 맞는 청바지를 끝내 찾지 못하고, 상표로 헝클어져 존재하는 현실의 톱니바퀴에 물려 실종하고 만다. 그것이 단편양식이란 점을 감안한다고 해도, 소설은 개인 이야기를 넘어 사회적 관심으로 확장되는 이야기값을 지녀야 한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소설미학의 어느 수준에 이르렀다고 보아도 좋을 것으로 판단하였다. 소설을 구성하는 데 필요한 장치에 대해서는 새로운 감각을 살릴 필요가 있을 것이다. 현대 사회의 중요한 문제를 소설로 다루어 나가는 진지한 추구를 기대한다.
응모한 분들이 문학적 열정을 부단히 지펴올리고 소설작업에 정진하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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