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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산가족 상봉 마친 진안 이효국 옹, 70년만에 꿈에 그리던 만남 "보자마자 핏줄인줄 알았지"

건강악화로 병원 이송…마지막 인사 못해 눈물 / "빨리 통일 돼 한지붕 아래서 오손도손 살고 싶어"

▲ 지난 20일 금강산이산가족면회소에서 열린 이산가족 단체상봉행사에서 남측 상봉자인 이효국 옹과 이옹 아내인 김순이 할머니, 북측 두 조카딸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왼쪽부터 리명희 씨, 김순이 할머니, 리명심 씨, 이효국 옹. 사진제공=이효국 옹 가족
짧았던 2박 3일 간의 이산가족 1차 상봉이 막을 내렸지만, 70여년만에 만난 혈육의 정은 뜨겁고 깊었다.

 

이번 남측 상봉자 가운데 호남지역에서 유일하게 선정된 이효국옹(91·진안군 부귀면)은 상봉행사에서 북쪽에 두고 온 두 남동생 중 큰남동생의 유일한 혈육인 리명심씨(53·여), 리명희씨(51·여)를 만났다.

 

이옹은 1945년 반공 투쟁 사건에 가담한 일로 소련군의 추적을 피해, 그해 고향인 평안북도 용천을 떠나 홀로 남으로 내려왔다.

 

이때 가지고 나온 단 한 장의 사진. 세월이 흘러도 주름 하나 없는 어머니와 어린 동생들의 사진 속 모습을 바라보는 것이 그의 유일한 낙이었다.

 

명절만 다가오면 고향노래를 부르며 눈시울을 적셨던 그는 이달 20일부터 22일까지 이어진 상봉행사에서 조금이나마 한을 풀었다.

 

이미 세상을 떠난 아버지와 어머니, 두 남동생을 보지 못한 것이 아쉬움으로 남지만 어머니와 남동생의 생전 모습을 떠올릴 수 있는 조카들을 보며, 켜켜이 쌓인 회포가 풀린 것.

 

이옹은 상봉행사때 조카딸들의 얼굴을 어루만지고, 어깨를 다독이며 평소 자식들에게 조차 보이지 않았던 다정한 모습을 보였다.

 

이처럼 상봉행사 내내 웃음을 잃지 않고 애써 밝은 내색을 보였던 이옹은 상봉 마지막날인 22일 건강에 이상을 보여, 병원으로 이송됐다.

 

이 때문에 두 조카딸과 작별인사를 하지 못했다.

 

건강하지 못한 몸으로 먼 길을 떠나면서 얻은 신체적 피로와 언제 다시 볼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불안함이 겹쳐지면서 일순간 쇼크가 온 것.

 

이옹은 병원으로 향하는 동안에도 조카들을 애타게 찾았다.

 

이옹의 곁을 지키던 아내 김순이 할머니(80)는 이런 이옹을 대신해 두 조카딸에게 “통일되면 다시 만나세. 큰 아버지는 아무탈 없이 다시 일어설 것”이라는 기약없는 인사말을 남긴 채 발길을 돌렸다.

 

23일 전주의 아들 집에서 만난 김 할머니는 “(이옹이)독감 증세로 현재 병원에 입원해 있다”면서 “조카들과 마지막 인사를 하지 못한 것이 너무 안쓰러워 눈물이 났다”고 말했다.

 

김 할머니는 “조카들도 영감님 안부를 물으며, 줄기차게 눈물을 흘렸다”며 “애써 안심시켰지만, 영감이 어떻게 되는 것은 아닌지 노심초사했다”고 말했다.

 

현재 이옹의 건강은 회복 상태이다.

 

또 김 할머니는 두 조카들로부터 선물받은 북한술 세 병과 탁자보를 꺼내 보이면서 “돌아가신 시어머니와 시숙들의 생전 모습을 담은 사진과 이야기를 통해 그간의 사정을 전해들을 수 있었다”면서 “처음부터 핏줄의 끌림을 느꼈다. 보자마자 (조카들을)알아봤다”고 말했다.

 

김 할머니는 “북한에서 잘 살고 있다고 말하지만 그것을 어찌 다 믿을 수 있겠냐”며 “하루빨리 통일이 돼 한지붕 아래서 오손도손 살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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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명국 psy2351@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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