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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천의 덕행과 봉사

▲ 진창선 문학평론가
마크 트웨인은 “우리가 죽었을 때 장의사도 슬퍼하도록 멋지게 살자”고 했다. 지금은 마침내 인간화시대다. 근대 이후 기계문명과 물신주의는 인간성의 상실과 급기야는 인간을 도구화로 전락시키고 말았다. 이런 시대적 상황은 그러니까 24시 다음은 희망의 1시가 와야 할 터인데 ‘절망의 25시’가 온다는 것을 형상화한 작품은 게오르규의 ‘25시(時)다.

 

농기(農旗)가 빛 바랜 지는 오래이나 그런 대로 철 따라 논밭을 가는 누렁 암소 워낭 소리 한가한, 인정도 아름다운 상생공동체의 살 만한 나라다. 다만 도시화의 물결은 피할 수가 없다 보니 위기 상황을 맞고 있다.

 

야스퍼스 말대로 현대는 기술과 기계와 대중의 시대다. 오늘의 기계문명이란 인간의 꾀로 이룩한 것이라 그 앞에서 오들오들 떠는 나약한 존재가 되고 말았으니 이 같은 위기로 말미암아 인류를 슬프게 만들었다.

 

그러므로 이런 비극적인 부조리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높은 지혜와 철학 그리고 실천 의지가 선행되어야 한다.

 

그 중 삶을 불안하고 외롭게 만든 것은 인간 소외(疏外)일 것이다. 다행이 우리만이 가진 ’역경극복의지유전자‘는 조상이 내린 덕(德)이다. 어떤 철학자는 ’즐거운 혁명‘을 내세우기도 한다.

 

역사가 있는 민족은 아름답다. 퇴폐한 자본주의로 질퍽하게 어지러진 이 땅에는 어떤 등불이 어둠을 밝히고 있을까. 어느 섬마을 교회 목사는 독거 노인네를 돕자고 날마다 새끼를 꼬아 한 푼 두 푼 모으고 있는 위연함은 높다란 십자가요 또 한편 동산 아래 절집의 한 비구니승은 방안 가득한 불우 고아들과의 인연을 주어진 업보로 다스리는 푸른 세월, 정녕 이 두 성직자의 사랑은 어둠을 밝히는 빛이 아니겠는가.

 

한편 천년 고도 온고을에도 선행을 실천한 이들, 첫째 백세청청(百世靑靑) 서노송동에는 얼굴마저 감춘 천사가 연말이면 어김없이 한 해 동안 피와 땀으로 모은 것을 고스란히 상자에 담아 제 자리에다 두곤 불우 이웃을 도우라는 부탁 말고는 그림자조차 가리는 이 지선지미의 덕행(德行)은 천하의 귀감이다.

 

하나 더 고르면 완산칠봉의 아랫 마을에 자리한 전북노인복지(효)연구원은 가정 교육의 바탕이며 질서라 일컫는 우리 효도 문화의 부흥을 위해 효지도사들과 효도의 실천 운동에 앞장을 선 원장 소순갑 박사, 묵묵히 혼신의 힘과 열정을 다하다 보니 그만 언론매체로부터 조명을 받고 만다. 때문에 백행의 원(源)인 모처럼의 효 부흥을 위한 진력에 행여 누를 끼칠까 이내 송구스러워 한다.

 

봉사(奉仕), 영국의 속담에는 ’남이 나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것을 해 주라‘고 했으니 최고의 표어도 봉사다.

 

실천 사례로는 학교 인성 교육과 접맥이 실효를 거두면서 효행학생 표창과 더불어 홍보의 효과도 활력소를 높였다.

 

이러는 동안 가정에서는 뿌리로 학교와 사회에서는 미담으로 지평을 열어가니 모름지기 지성을 다한 삶이라 음미해 볼 만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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