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농민군을 민중으로' 선언적 접근 / 1994년 다각적 성과 도출…획기적 진전 없어 / 인식 확장, 학문 경계 허무는 종합적 관점 필요
△폭발적 성과
1894년 동학농민혁명이 일어나고 올해로 120년이 되었다. 그동안 동학농민혁명에 대한 인식은 역사의 발전과정에 호응하여 변화되어 왔다. 그리고 동학농민혁명에 대한 연구도 그러한 인식의 변화에 짝하여 크게 발전되어 왔다. 동학농민혁명 직후부터 일제강점기는 ‘동학란’이라는 기본적인 인식위에서 연구가 이루어졌다. 일제강점기의 대표적인 그리고 선구적인 연구인 김상기의 ‘동학과 동학란’에서 그러한 흐름을 확인할 수 있다.
해방 이후 1950년대를 거치면서 반봉건 반외세의 기조위에서 동학농민혁명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졌다. 1958년 김용섭의 〈전봉준공초의 분석〉이 이러한 흐름을 가지는데 결정적 역할을 하였다. 이는 또한 내재적 발전론에 따른 근대사의 실재적 모습을 찾는 연구가 한국사 연구의 핵심과제로 부각하면서 특히 각광을 받게 되었다. 1980년대 민중운동에 대한 관심이 크게 증가하면서 역사발전의 주체로서 민중이 부각되었다. 이러한 분위기 아래 동학농민혁명을 주도한 동학농민군이 바로 민중의 실재적 모습이라는 주장이 큰 관심을 받게 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동학농민군이 바로 민중임을 증명하는 구체적 연구보다는 선언적 의미의 연구가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동학농민혁명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는 100주년이 되는 1994년을 전후하여 집중적으로 이루어졌다. 동학농민혁명의 사회경제적 배경, 주체세력, 조직으로서 동학교단의 역할, 동학농민군의 이념, 동학농민군의 지향 등 다각적인 관점에서 동학농민혁명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졌다. 그러나 이러한 흐름은 지속되지 못하였다. 100주년을 기점으로 폭발적인 연구 성과가 도출되었으나 이후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지 못하고 동학농민혁명에 대한 연구는 한순간에 시들어버렸다. 그러한 흐름이 지금까지도 이어져오고 있다. 2004년‘동학농민혁명 참여자 등의 명예회복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어 국가적 차원의 명예회복이 이루어지고, 2010년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이 설립되어 정부 차원에서 기념사업을 전개하게 되는 상황이 만들어졌지만 실상 동학농민혁명에 대한 연구는 답보상태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학제간 연구로 통섭적 접근 중요
동학농민혁명은 1894년 단 1년 동안에 일어난 사건이지만 한국 역사발전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이제 동학농민혁명 120주년을 맞이하여 새로운 인식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그리고 이러한 인식의 전환이라는 바탕위에서 동학농민혁명에 대한 연구가 획기적인 진전이 이루어져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동학농민혁명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보는 인식의 폭을 확장하는 것이다.
첫째, 학제간 연구가 절실하다. 그동안의 연구는 역사적 사건으로서 역사학이라는 관점에서 주로 연구되어 왔다. 그러기 때문에 역사적 관점에서 벗어날 수 없고 연구 성과도 이에 한정될 수밖에 없었다. 이제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하여 철학, 종교학, 정치학, 경제학, 사회학, 민속학. 인류학, 심리학, 지리학 등 새로운 학문적 관점에서 동학농민혁명 연구가 이루어져야 한다. 그리고 그것이 별개의 연구가 아니라 종합적 연구 즉 ‘통섭’의 관점에서 동학농민혁명을 바라보는 것이 필요하다.
둘째, 1894년이라는 시간, 조선이라는 공간에서 있었던 모든 구성원의 관점에서 동학농민혁명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 전봉준을 비롯한 동학농민군 주도세력, 농민군을 구성하고 있은 수많은 농민들, 동학농민군의 가족, 동학농민군 토벌에 참여한 토벌군, 동학농민군 토벌에 직접 참여한 민보군, 동학농민군을 인정하지 못하는 유생, 조선의 중앙관료, 조선의 지방 관리와 아전, 국왕인 고종과 대원군 그리고 민비, 동학농민군을 토벌한 일본군, 그리고 최시형과 손병희로 대표되는 동학 교단세력 등 다양한 세력들이 1894년 조선에 존재하고 있었다. 각각의 입장에서 동학농민혁명을 어떻게 바라보고 이에 대해 어떻게 대응했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이렇게 했을 때 동학농민혁명의 실체에 더 가깝게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갑오개혁 등 통시적 연구 필요
셋째, 철저하게 지역적 관점에서 동학농민혁명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동안의 연구는 전봉준과 중심세력이 어떻게 동학농민혁명을 끌어가는지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이 때문에 전국적으로 있었던 동학농민혁명이 제대로 인식되지 못하고 전라도 일부지역에서 일어난 사건으로 인식되는 한계를 가져왔다. 최근에 와서 지역적 관점을 견지하고 이루어지는 연구가 조금씩 나오고 있다. 매우 고무적인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동학농민혁명이라는 역사적 사건이 각각의 지역에서 다양한 양상을 보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왜냐하면 지역을 구성하는 사람들이 달랐고, 동학농민혁명에 참여한 방식이 달랐고, 전봉준이 이끄는 동학농민군 주력과 연결고리가 대부분 취약했으며, 동학교단과의 관계도 지역마마 큰 차이를 보였다. 때문에 이렇게 다른 조건으로 인해 각 지역마다 동학농민혁명의 양상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지역의 관점에서 연구가 이루어지고 전국적 차원에서 이를 종합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넷째, 통시적 관점의 연구가 필요하다. 우선적으로 동학농민혁명과 갑오개혁과의 관련성에 대한 구체적인 연구가 절실하다. 1894년이라는 시간위에서 동학농민혁명이 원인이 되고 갑오개혁이 결과가 되었다고 볼 수 있는 측면이 있는데, 이에 대한 실증적 연구가 필요하다. 그리고 1894년을 기점으로 이전과 이후를 비교하는 종합적이고 심층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물론 그러한 작업이 지극히 어려운 작업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러한 연구가 이루어질 때 진정으로 동학농민혁명의 역사상이 성립될 수 있을 것이다. 1894년 이전의 사회구조 및 경제적 상황과 1894년 이후 사회구조 및 경제적 상황을 비교해 봄으로서 동학농민혁명이 한국사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그리고 어떤 위상을 가지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흔히 동학농민혁명이 3.1운동, 독립운동, 4.19혁명, 5.18광주민주화운동, 6.10항쟁으로 이어졌다고 말하고 있지만 이는 단지 선언적 측면이 강하다. 이에 대한 논증적 연구도 반드시 필요하다. 이러한 연구가 논증적으로 확고하게 이루어진다면 대한민국의 시작을 1919년 임시정부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1894년 동학농민혁명에서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세계혁명과 비교 연구해야
다섯째, 동아시아적 관점에서 동학농민혁명을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다. 동학농민혁명은 청일전쟁을 야기했고, 일본이 청일전쟁에서 승리하여 동아시아의 패권을 가지고 된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그 이상의 연구가 진행되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동아시아적 관점에서 동학농민혁명과 청일전쟁 그리고 삼국간의 관계를 파악하는 연구가 필요하다. 그리고 여기에 현재 우리가 처한 상황과 120년 전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다. 따라서 동아시아적 관점에서 깊이 있는 연구를 통해 현재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는 실마리를 찾을 수 있도록 연구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여섯째, 세계사적 관점에서 세계의 혁명과 비교하는 연구가 필요하다. 이는 동학농민혁명을 세계화하는 데도 반드시 필요하다. 동학농민혁명을 세계의 혁명과 비교하여 연구하는 데는 주체로서 농민, 조직으로서 종교(동학), 성격으로서 반봉건 ,반외세, 자치(집강소) 등의 관점을 가지고 비교 연구할 필요가 있다. 주체로서 농민은 독일농민전쟁, 중국의 태평천국운동, 동유럽의 농민반란, 라틴아메리카의 농민반란 등이 이에 해당하며, 조직으로서 종교는 중국의 태평천국운동, 독일농민전쟁이 이에 해당하며, 성격으로서 반봉건은 프랑스혁명, 러시아혁명 등이 이에 해당하며, 성격으로서 반외세는 필리핀, 베트남, 싱가폴의 반외세운동과 미국독립선언이 이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성격으로서 자치(집강소)는 세계사적으로 그 유례를 찾아보기 어렵다. 세계의 혁명과 비교연구를 통해 동학농민혁명의 보편성과 특수성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앞으로 동학농민혁명에 대한 연구의 방향은 세계사적 보편성을 추구한 동학농민혁명의 정신을 증명하는데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동학농민혁명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통해 한국의 미래 비젼을 제시해야 하며, 세계사의 미래 비젼을 제시할 수 있는 연구가 이루어져야 한다.
이병규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연구조사부장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