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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예술작품 속 동학농민혁명] "혁명정신 대중화 꾀할 기념비적 대형 작품 나와야"

공연·전시 다양한 장르 걸쳐 재조명 시도 / 100주년 맞아 창작 활발했지만 이후 잠잠 / 예산 지원 과제…영화·드라마화도 필요

▲ 전북도립국악원 창극단이 지난 7월 공연한 ‘꽃불’. ·전북일보 자료사진

“모지도다 모지도다 우리 사또가 모지도다. 어린 것이 쪼금 잘못을 허였다 저런 매질이 또 있느냐 집장사령놈을 눈 익혀 두었다 사문 밖을 나가면 급살을 내리라 저런 매질이 또 있느냐 나 돌아간다 내가 돌아간다 떨떨거리고 나는 간다.”

 

남원에 부임한 신임 사또가 수청을 거부한 춘향에게 가혹한 횡포를 가하는 모습을 그린 ‘춘향가’ 중 ‘못 보것네’ 대목이다. 폭정을 가하는 탐욕스러운 탐관오리의 가렴주구에 대한 민중들의 비난과 분노가 담겼다. 1894년 1월 전봉준 장군의 동학농민군이 고부관아를 습격했을 당시 농민군들이 ‘춘향전’ 중의 사또를 비판하는 대목을 부르면서 쳐들어갔다고 한다.

 

민중 안에서 오랜 시간 전래되며 그 생명력을 이어온 판소리가 동학의 함성으로 표현됐다고 진보성 박사는 분석했다. 인간다움을 갈망하던 농민군들의 강렬한 몸짓을 판소리와 연결시킨 것이다.

 

판소리 예술로 까지 끌어올려진 당시 농민군의 함성이 오늘의 문화예술에 어떻게 투영되고 있을까.

 

동학농민혁명 100주년을 전후로 음악·연극·무용·미술 등 다양한 장르에서 동학농민혁명을 기억하는 작업들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그 역사가 갖고 있는 무게에 비춰 여전히 미흡하다. 동학농민혁명에 대한 본격적인 재조명 작업이 이루어지기 전까지 문화예술계에서의 관심이 거의 없었으며, 100주년 때 활발했던 작품활동도 그 후 잠잠해졌다. 2주갑을 맞은 올해도 기념비적인 작품들을 거의 만날 수 없었다는 게 학계와 예술계의 평가다.

 

세계사적으로도 유례가 드문 아래로부터의 거대한 변혁운동임에도 예술작품들이 너무 빈약한 실정에서 동학농민혁명의 전국화·세계화를 위해 예술 작품을 통한 혁명의 대중화가 또 하나의 과제가 되고 있다.

 

△관립 예술단체 중심 한계

 

동학농민혁명 2주갑을 맞은 올해 전북지역 문화예술계에서 혁명을 소재로 한 창극, 마당극, 연극, 음악, 무용 등이 이루어졌지만 기대에 못미쳤다. 그나마 명맥을 이은 게 관립 예술단에 의해서였다. 전북도립국악원 창극단이 7월 무명의 농민군을 그린 ‘꽃불’을 한국소리문화의전당 무대에 올렸고, 도립국악원 관혁악단이 10월 칸타타 ‘황토재 희망의 노래’를 같은 장소에서 공연했다. 전주시립극단은 연극 ‘녹두의 꿈’으로 관객들을 만났다.

 

또 전주시가 주최하고, 스토리텔링 문화그룹 얘기보따리·(사)푸른문화가 주관한 ‘가보세 갑오년, 전주성’이 8월 전주한옥마을 특설무대에서 열흘간 진행됐다. 민간 차원에서는 10월 전주 경기전 앞에서 열린 ‘모악 천하 대동제’가 120주년의 의미를 실었다.

 

또 사단법인 전북민예총이 2014 전북민족예술제 타이틀로 ‘대한민국? 대한민국!’을 걸고 120년 전 혁명의 역사를 주제로 내세웠다. 과거 동학농민은 현재의 서민이며, 이들의 희·노·애·락을 예술의 시선으로 바라보며 미래의 희망을 모색하는 자리였다.

 

전시 쪽에서는 전북민족미술인협회가 2014년 정기회원전으로 7월 동학농민혁명의 역사를 들었다. ‘가보세 통일로’의 전시회에는 27명의 미술인들이 “120년 전, 반봉건 반외세의 기치를 높이들고 이 땅의 백성들이 사람사는 세상을 열고자 했던 동학농민군들의 열망을 가슴에 품고 침몰하는 세월호, 침몰하는 대한민국의 현실위에 희망의 돛을 달자”에 동참했다.

 

(사)전북민족미술인협회 10명의 작가들은 릴레이 개인전을 통해 혁명의 역사를 한국화, 유화, 판화, 담채화, 도예, 테라코타, 조각 등으로 보여줬다. 농민화가 박홍규 씨는 릴레이전과 별도로 전주 서신갤러리에서 동학혁명 120주년 기념 판화전 ‘피노리 가는 길’을 갖기도 했다.

 

△전국 각지서 예술축제로

▲ 지난 8월 전주시 주최로 한옥마을 특설무대에 올려진 ‘가보세 갑오년, 전주성’ 공연 모습.

동학농민혁명 기념행사가 단순한 기념식에서 벗어나 예술축제 형태로 나아가고 있는 점은 고무적이다. 120주년을 맞아 전북에서뿐 아니라 동학농민혁명이 활발했던 전국 각지에 다양한 형태의 예술제가 열렸다. 6월 충북 보은에서 열린 ‘동학농민혁명 120년 역사맞이 보은생명평화대회’는 우리나라 최초의 민회인 보은취회를 재현하고, 전국민족극한마당이 펼쳐졌다.

 

극단 모시는사람들의 뮤지컬 ‘들풀2’는 동학을 소재로 한 올 무대 작품 중에서 가장 대중성 있는 작품으로 꼽혔다. 6월 과천시민회관에서 올려진 이 작품은 2주에 걸쳐 5000명에 육박하는 관람객을 동원, 흥행몰이에도 성공한 것으로 전해졌다. ‘들풀Ⅱ’는 20년 전에도 관심을 모았던 작품으로, 뮤지컬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합류해 손질을 가했다.

 

극단측은 사랑을 테마로 삼아 너무 무겁지 않게 접근한 것이 주효했다고 분석했다. 뮤지컬에 나오는 노래 OST에 대한 구입 문의가 이어질 만큼 관객들의 호응을 바탕으로 오는 8일 천도교 중앙총부 초청으로 무료 공연을 가질 예정이다.

 

또 전남 무안을 배경으로 삼은 국악뮤지컬 ‘파랑새’ 공연이 극단 갯돌에 의해 11월 무안군 승달문화예술회관 무대에 올려졌다. 남도 씻김과 신명의 원형을 현대적 어법으로 재해석한 이 작품은 마당극, 민요, 놀이, 무예, 퍼포먼스, 풍물, 탈춤 등 전통연희를 결합시켰다.

 

부산에서도 동학농민혁명은 숨을 쉬었다. 극단 새벽이 20년 전 공연을 손질해 발림극(몸짓과 손짓)으로 재연한 ‘새야 매야’를 무대에 올렸다.

 

△영화·드라마 통한 대중화도 과제

 

다양한 장르에서 예술작품으로 담아내려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120주년을 맞은 오늘에까지 대혁명의 역사에 턱없이 못미치는 문화예술계 상황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올 전북도립국악원과 전주시립극단의 동학농민혁명을 소재로 한 작품에 대부분 참여했던 김정수 전주대 교수는 “100주년 때와 달리 120주년이 갖는 의미가 상대적으로 작기도 하지만, 민주화 운동을 경험한 세대가 퇴장하고 젊은층의 무거운 주제에 대한 외면과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보수화가 기념공연의 감소로 이어졌다”고 분석했다.

 

민주화 운동의 힘이 넘쳤던 100주년 때는 임진택 문호근 김명곤 등 서울에서 활동하는 인사들까지 동학쪽에 힘을 실어 모든 예술장르에서 기념 공연들이 활발했던 것과 대조를 보인 현실을 두고서다.

 

이와 함께 관립 단체의 작품들이 대형 작품으로 만들어지지 못하거나 단발성으로 그치는 데는 재정문제와 시스템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도립국악원만 하더라도 회계연도가 1년 단위여서 2~3년에 걸쳐 대규모 작품을 만들기 어렵고, 창극·관현악·무용단 3개 단체가 각기 성과를 내야 하기에 협력을 통한 대형 작품제작에도 한계가 있는 것으로 보았다. 여기에 어렵게 무대에 올린 작품도 순회공연이나 상설공연을 할 여력이 없어 사장되는 문제가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또 기념비적인 작품이 아니라도, 작아도 알차고 진지하고 애정어린 작품이 계속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전북도에서 운영하는 문예진흥기금 중 동학콘텐츠 관련 예산을 별도로 편성하거나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에서 지원책을 마련하는 방안도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혁명의 대중화를 위해서는 TV드라마·영화 등 영상매체의 역할이 중요하지만 별다른 진전이 없었다. 영화로는 1991년 동학 2대 교주로 혁명에 참여했던 해월의 삶을 조명한 ‘개벽’(임권택 감독) 이후 특별하게 주목받는 영화가 나오지 않았다.

 

다만, 일본인 감독 마에다 겐지가 다큐멘터리 영화계획을 발표하고, 영화제작에 들어가 주목을 받았다. 마에다 감독은 “다큐멘터리 영화를 통해 동북아뿐 아니라 온 세계의 사람들에게 동학농민혁명의 깊은 의미와 진실을 알려주고자 한다”고 제작 취지를 설명했다.

김원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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