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진강 흙·바람·물 생명의식으로 확대
부안 출신의 고 오남구 시인(1946~2010, 본명 오진현)은 중앙 문단에서의 활약에도 불구하고 전북의 독자들에게는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다. 1973년 <시문학> 으로 등단한 시인은 2010년 췌장암으로 별세하기 직전 <노장의 벌레-오남구 시선집> 을 내는 투혼을 발휘하기도 했다. 오 시인의 시세계를 심상운 시인이 조명했다. 노장의> 시문학>
2005년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평론가 및 시와 평론을 겸하고 있는 시인 70명에 의해 선정된 한국 현역 시인 100인의 시선집 〈한국 현역 100인 대표시선〉(2005년 푸른 사상사)이 나왔다. 여기에 실린 부안 백산 출신의 오남구 시인의 탈관념의 실험시가 눈길을 끌었다. 한국 현대시단에서 새로운 시운동의 확고한 자리를 차지한 오남구 시인은 1975년 월간〈시문학〉에 미당 서정주 시인의 추천으로 등단한 시인이다.
그의 첫 시집〈동진강월령(東津江月令)〉(1975년)은 그의 시세계가 향토의 흙과 바람과 물에 뿌리를 두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의 두 번째 시집〈초민(草民)〉(1981)은 우리 민족의 기층을 초민(草民)이라는 조어로 표출하여 향토의 민속 속에 깊이 뿌리내린 순수한 민중의 삶을 대상으로 하고 있음을 인식하게 한다. 이런 그의 시세계에는 향토성이라는 말로 간단히 정의하고 넘어갈 수 없는 깊은 울림이 있다. 그의 토속적인 시편들은 서양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은 순수한 우리 토착민중의 애환과 한을 통한 정신적인 전율을 독자들에게 느끼게 해주기 때문이다. 그것은 또 우리민족 고유의 심령(心靈)이 그의 시에서 어떤 작용을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게 한다.
‘밝히시고 밝히시고 다-아 액을 태우시고/삼남에는 싸락눈이 올 양이면 붓붓/ 밤부엉이나 올어놓고 여나믄 살의/ 입술이 노오란 신랑을 들인 날 밤에 /훗날 훗날 동진강물이 풀리고 우르르 우르르- ’·(‘歲守風俗圖’전반부)
어떤 논리적인 설명으로는 접근할 수 없는 토착어의 가락과 호흡 그리고 토착어에 깃들인 민족 심령(心靈)의 흐름은 첫 새벽 청수(淸水)를 앞에 놓고 한울님과 접신하는 맑은 영혼이 아니고서는 표현할 수 없는 어법으로 인식된다.
이런 그의 시세계는 1988년 시집〈탈관념(脫觀念)〉을 상재하면서 토착적인 향토성과 언의의 벽을 넘어서는 무한한 상상력을 통해 우주적인 생명의식으로까지 확대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공이 뛴다./점점 높이 뛴다./ 점점 더 높이 뛴다./빌딩 콘크리트를 뚫고 공은 온전하고 깨끗이 뛴다./파란 하늘이 젖어내리고 젖어내리고 별이 된다.’·(‘달맞이-데몬스트레션’·1부)
전문을 인용할 수 없어 아쉽지만, 경쾌한 운동 에너지와 무한한 자유연상의 기쁨을 맛보게 하는‘달맞이-데몬스트레션’은 한국현대시의 현장에서 언어의 한계를 돌파하는 시로 평가되고 있다. 그것은 그의 탈관념의 시편들이 회화의 추상(抽象)에서만 느낄 수 있는 순수한 이미지와 의식의 흐름을 느끼게 하고, 독자들의 생각을 관념이 만들어 놓은 전제적 지시로부터 해방시켜 자유로운 상상력이 개척한 넓은 공간으로 진출하게 하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그는 시와 평론을 겸하는 시인으로 왕성한 활동을 하여 시론집〈꽃의 문답법〉(1999. 4)에서는 ‘탈관념 문학선언’을 하고, 2000년을 기점으로 시집〈첫나비 아름다운 의미의 비행〉(2000)에서는 생태적 즉물 판타지를 실험시로 보여주면서 평론집〈이상의 디지탈리즘〉(2005년 범우사)을 통해서 자신의 새로운 시운동이 1930년대 시인 이상(李箱)의 시에 근원을 두고 있음을 증명하고 있다.
그의 이런 시적 변모는 그의 독특한 감성과 사유의 세계가 만들어낸 시적 개안(開眼)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는 2002년 한국현대시의 발전을 목표로 계간〈시향〉을 창간하였으며, 2008년 월간〈시문학〉을 기반으로 김규화 심상운과 ‘하이퍼시 동인’을 결성하여 2010년 췌장암으로 작고할 때까지 하이퍼시의 창작에 몰두하고, 시류동인 등 후배시인의 양성에도 심혈을 다한 시인으로 21세기 한국현대시의 현장에서 ‘시의 예술성’을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시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는 그가 20세기 부안이 낳은 신석정의 시적전통을 계승하는 향토시인으로 손색이 없음을 증명한다.
△심상운 씨는 문학평론가 겸 시인이다. 1974년 월간 〈시문학〉으로 등단. 시집 〈강과 바람과 산〉 〈고향산천〉 〈당신 또는 파란 풀잎〉과 시론집 〈의미의 세계에서 하이퍼의 세계로〉 등의 저서가 있다. 한국현대시인협회장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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