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진강댐 재개발로 마을 수몰 예정 / 남은 3가구도 올 10월 전에 떠나야 / "변변한 생계대책 없는 게 더 큰 걱정"
“명절 기분을 느낄 새도 없습니다. 수십년간 살아온 보금자리를 떠나야 한다니 한숨과 눈물만 앞섭니다.”
불과 3년 전까지만 해도 면사무소가 있었던 임실군 운암면 쌍암리는 대낮에도 깊은 적막감이 감돌았다. 수몰을 앞두고 대부분의 주민들이 수십년 이어온 삶터를 떠난 탓이다. 철거를 앞둔 가옥은 대문이 뜯겨나가고 지붕에는 켜켜이 먼지가 쌓였다.
전주를 오가는 주민들이 이용하던 옛 시내버스 터미널은 굳게 문이 닫혀 있었다. 사람이 살지 않는 한 집에는 강아지 두 마리만이 주인 대신 집을 지키고 있었다.
옥정호 가장자리, 한 때 80세대 가까이 살았던 마을에는 현재 3세대만이 남아 마지막 설 명절을 지내게 됐다. 이들은 저수위를 현재보다 5m 이상 높이는 섬진강댐 재개발사업이 완료되는 오는 10월 전에 정든 보금자리를 떠나야 한다.
섬진강댐은 1940년 추진했으나 한국전쟁 등을 거치면서 일시 중단됐다. 이후 1961년 재착공할 당시 운암면 잿마을 등에 거주하던 수몰민들은 댐이 완공된 1965년 현 운암면 소재지인 쌍암리로 옮겨와 살았다.
당시 쌍암리도 수몰 대상지였지만 물이 들어오지 않아 삶터를 유지할 수 있었다.
강원도 동강댐 백지화 이후 사실상 대규모 댐 건설이 어렵게 됐다는 점을 고려하면 댐으로 인한 수몰민은 임실 쌍암리 주민들이 마지막이 될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오는 5월 인근 이주단지로 집을 옮긴다는 박춘길 씨(73)는 “40년 넘게 이 자리에서 음식점을 하면서 자식들을 키워왔다”며 “지금은 찾는 손님 하나 없지만 문을 닫는 순간까지 영업하겠다”고 말했다.
박 씨는 “몇 해 전부터 이웃들이 하나 둘 이주단지나 다른 지역으로 떠나면서 마을이 황폐화됐다”면서 “몇 달만 지나면 마을이 물에 잠긴다고 생각하니 눈물이 앞을 가린다”며 한숨만 내쉬었다.
김영진 씨(56)는 걱정이 태산이다. 김 씨는 “남들처럼 번듯하게 명절을 쇨 형편이 되지 못한다. 자나 깨나 앞으로의 걱정 뿐이다”면서 “마음의 여유가 있어야 명절도 있는 것 아니냐”고 되물었다.
이를 지켜보던 최기동(58) 쌍암리 이장은 “마을을 떠나면 변변한 생계 대책 하나 없는 것이 더 큰 걱정거리일 것”이라며 “아직까지 이주하지 못하는 주민들은 경제적으로나 심적으로나 절박한 상황에 놓여 있다”고 말했다.
최 이장은 “이제는 예전처럼 모두 다시 모여 살 수 없다는 것이 가장 안타깝다”면서 “이웃간에 따뜻한 정을 나누던 옛 명절이 사무치게 그립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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