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기사 다음기사
UPDATE 2025-11-06 18:22 (Thu)
로그인
phone_iphone 모바일 웹
위로가기 버튼
chevron_right 오피니언 chevron_right 이경재 칼럼
일반기사

'영남민국'과 박 대통령의 허언

▲ 수석논설위원
정치인의 말이 대개 허허롭지만 박근혜 대통령의 언사 만큼은 신뢰성이 높았다. 미생지신(尾生之信)의 고사를 인용하면서 한번 약속한 사안은 꼭 이행해야 한다는 주장을 편 일도 있고, 약속 이행에 정치생명을 걸고 싸우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나타낸 적도 있다. 원칙, 약속, 신의 등은 박 대통령의 장점을 나타내는 키워드다.

 

집권 2년을 넘기면서 그가 쏟아낸 수사(修辭)를 들춰 보았다. 맛으로 치면 수요자 중심의 식감이 뛰어난 담백한 재료들이 많았다. 소외, 홀대, 차별 등에 길들여진 사람에게는 와∼ 소리가 나올 정도의 최상의 선물도 있었다.

 

거짓된 지역균형발전·인사대탕평

 

“그동안 정치를 해오면서 저에게 손해가 되더라도 한번 드린 약속은 반드시 지켜왔다.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는 일에는 정치생명을 걸고 싸워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2012년 7월10일 대선출마선언문)

 

그리고는 국민대통합의 시대를 열어가겠다고 선언했다. “이념과 계층, 지역과 세대를 넘어 모두가 함께 가는 국민대통합의 길을 가겠다. ‘100% 대한민국’을 만들어 5000만 국민의 역량과 에너지를 하나로 모아 새 역사를 만들겠다.”(8월20일 대선후보수락 선언문)

 

그해 11월 전북방문 때엔 더 구체적인 언급을 하고 나선다. “지역화합과 국민통합을 위해서는 꼭 해야 할 두가지 과제가 있다. 첫째가 지역균형발전이고 둘째가 공평한 인재등용이다. 두 과제를 실천하려는 의지와 능력이 없다면 헛공약이 되고 말 것이다.”

 

약속은 또 이어진다. “모든 공직에 대탕평 인사를 할 것이다. 어느 한 지역이 아니라 모든 지역의 100% 대한민국 정권이 될 것이다. 제가 되면 호남은 희망의 땅으로 다시 태어나게 될 것임을 약속드린다. 약속한 것은 반드시 실천하는 정치의 새 모습을 보여주겠다.”

 

집권 2년이 속절 없이 흘렀다. ‘국민대통합’ ‘인사대탕평’ ‘지역균형발전’ ‘동서화합’ ‘희망의 땅 호남’ 등 입맛에 척척 앵기는 약속들은 이제 거짓말의 백미로 반전되고 말았다.

 

지난 2년의 대한민국은 철저히 ‘영남민국’이었다. 일은 사람이 하는 것인데 청와대와 내각, 권력기관, 공기업 등의 핵심들이 영남권 인사들로 채워졌다. 호남은 찬밥신세였고 전북은 인사 소외지역이었다. 오죽하면 ‘박근혜 정부 특정지역 편중인사 실태조사단’이란 기구가 만들어져 영남 편중인사의 심각성을 경고하고 나섰겠는가 싶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국가 의전 서열 10위까지 11명중 8명이 영남출신이다. 차관급 이상 고위직 132명의 출신지 역시 영남출신이 49명으로 37.1%를 차지하고 있다. 호남권은 15.9%(21명), 충청권은 12.1%(16명)였다. 검찰, 경찰, 감사원, 국세청, 공정거래위원회 등 이른바 5대 권력기관장도 모두 영남출신이 독식하고 있다. ‘영남민국’이란 비유가 적절할 정도로 노골적이다.

 

작년 9월4일 이낙연 전남지사와 윤장현 광주시장, 한갑수 호남미래포럼 이사장 등 호남출신 주요 인사 90여명은 공동선언문을 채택하고 호남출신에 대한 인사·지역차별을 해소해 줄 것을 박 대통령에게 요구한 적도 있다.

 

"정책은 만드는 것보다 실천이 중요"

 

또 국민 10명중 8명 꼴로 지방소외가 심각하다고 보고 있다. 한국지방신문협회가 지난달 22·23일 전국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했더니 77.4%가 그렇게 대답했다. ‘지역균형발전’과 ‘인사대탕평’ 등의 약속이 허언(虛言)이 되고 만 증거들이다.

 

“정책은 만드는 것보다 실천이 중요하다. 그동안 정책이 없어서 국민이 불행했던 것이 아니라 약속이 실천되지 않아서 문제였다.” 정곡을 찌르는 이 발언도 박 대통령의 것이다.

 

이제 집권 3년차에 들어섰다. 다른 건 몰라도 지역을 찢어놓거나, 사람을 차별하는 정책 만큼은 피했으면 한다. 그래서 신의 없는 대통령이란 소릴 듣지 않았으면 좋겠다.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경재 kjlee@jjan.kr
다른기사보기

개의 댓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0 / 400
오피니언섹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