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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묘와 경기전, 그리고 조경묘

▲ 유병하 국립 전주박물관장

잘 알려져 있다시피 서울 종묘(宗廟)는 조선 왕실의 사당[廟]이다. 그렇기 때문에 종묘의 건물 안에는 역대 왕들의 어진(御眞)이 모셔져 있고 신주(神主)가 세워져 있다. 이것뿐만이 아니다. 돌아가신 왕을 상징하는 각종 기물(器物)도 별도의 장(欌)에 모셔져 있는데, 중국의 황제로부터 받은 책봉문서(冊封文書)나 어보(御寶), 왕의 공적을 기록한 국조보감(國朝寶鑑)이 여기에 해당된다.

 

전주는 조선 왕실 세운 이씨 본관

 

이 사당의 공간은 왕과 왕비를 모시는 각각의 신실(神室)로 구성돼 있다. 그런데 왕조(王朝)가 계속 이어지면서 돌아가신 왕과 왕비가 많아질 경우에는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다. 즉 공간이 제한된 탓으로 더 이상 최근에 돌아가신 분들을 같은 공간에 모실 수 없는 경우가 생긴다. 이와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정전(正殿) 이외에 별도의 건물, 즉 영녕전(永寧殿)을 세웠다. 예컨대 앞서의 정전에는 19대 왕과 왕비를, 영녕전에는 정전에 모시지 못하는 16대 왕과 왕비-일부 황태자 포함-를 모셨다.

 

이렇게 종묘는 왕실 사당으로서의 역할을 담당하던 정전과 영녕전이 핵심 시설이었다. 이외에 왕을 잘 보필했던 공신들의 사당[功臣堂]이 별도로 있었고, 부속건물로서 전사청(典祀廳), 향청(香廳), 재궁(齋宮), 집사청(執事廳), 망묘루(望廟樓) 등이 있었다.

 

조선왕실이 이처럼 복잡하고 성대한 건축물인 종묘를 세워 운영한 것은 단순히 왕실의 조상[祖宗]으로부터 직접적인 가호(加護)를 원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오히려 종묘가 당시 사회운영에 막대한 의미를 가졌기 때문이다. 즉 왕권(王權)의 정통성을 태조(太祖) 이성계를 비롯한 역대 왕들에게서 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가령 왕이 직접 제사를 주관함으로써 주관자(主管者)인 왕의 정통성을 대내외적으로 과시할 수 있었고, 그런 과정을 거침으로써 군신(君臣)이나 백성들로부터 혈족(血族)의 특별함 내지는 왕권(王權)의 신성함을 인정받을 수 있었다.

 

이러한 이유로 종묘에서 지내는 제사는 최상급의 제기(祭器)나 제물(祭物), 제의절차(祭儀節次)를 갖춘 국가 중대사였다. 통상 춘하추 사계절과 동지 뒤의 납일(臘日)에 맞추어 5차례 제사를 지냈는데, 왕의 즉위와 같은 특별한 일이 있을 때는 별도의 제사를 지냈다. 그리고 상서로운 제사[吉禮]였기 때문에 장중한 음악과 화려한 무용이 곁들여졌다. 또한 국가적으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녔기 때문에 전문 화원(畵員)과 관원(官員)을 동원해 상세한 기록으로 남겼으니 그것이 곧 종묘의궤(宗廟儀軌)이다.

 

한편 1395년 서울[漢陽] 경복궁 가까이에 처음으로 종묘가 세워진 후, 전주에도 태조의 어진(御眞)을 모신 경기전(慶基殿)이 부속건물과 함께 세워졌다. 전주가 조선왕실을 세운 전주 이씨의 본관(本貫)였고, 또한 태조가 왜구를 정벌할 때 특별히 머물렀기 때문이다. 세부적으로는 1410년에 처음으로 건물을 세워 어진을 모신 후, 1425년에 경기전이라는 명칭을 정식으로 얻었다. 이곳의 본전(本殿)에서도 매년 6차례 이상 제사를 지냈으며, 태조의 어진을 모신만큼 최상급의 제기와 제물이 동원됐다.

 

경기전·조경묘, 서울 종묘 축소판

 

그리고 1771년에는 전주 이씨의 시조(始祖)인 이한(李翰)과 부인의 위패(位牌)를 모신 조경묘(肇慶廟)도 세워졌다. 이것은 조선 왕업(王業)의 기원을 이성계의 4대조에서 시조까지 끌어올린 것으로, ‘조선 역사는 이한으로부터 오랫동안 덕(德)과 인(仁)을 쌓은 결과이다’라는 것을 대내외적으로 널리 과시한 것이다. 이곳에서도 경기전과 마찬가지로 최상의 예우를 다해 정기적으로 제사를 지냈다.

이상의 내용에서 알 수 있듯이 경기전과 조경묘-고종(高宗) 이후에는 조경단(肇慶壇)으로 불리움-는 사실상 왕실의 조상을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사당이라는 측면에서 서울의 종묘와 같다고 할 수 있다. 즉 서울 종묘의 축소판이 전주의 경기전과 조경묘라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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