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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삶에서 농촌 근현대사를 읽다

전북대 기록연구실 〈아포일기〉 완간 / 농민일기 영호남 비교 자료 구축 의의

 

경북 김천 아포읍에서 태어나 70여년의 생애를 고향 마을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는 권순덕(72)씨는 1969년부터 평생 일기를 써왔다. 2000년까지 A4 용지로 3000매가 넘는 막대한 분량의 그의 일기에는 군에서 막 제대한 20대 농촌청년의 도시를 향한 열망과 좌절부터 농업을 자녀들에게 물려주지 않으려는 50대 장년의 고뇌에 이르기까지, 근대화 과정의 뒷면에 묻힌 한 시골 농민의 생애가 고스란히 담겼다.

 

그 일기가 한국 농촌 근현대사로 승화됐다. ‘개인기록을 통한 지역현대사의 재구성’을 목표로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전북대학교 SSK 개인기록연구실(책임연구원 이정덕 교수)이 권씨의 일기를 5권의 책으로 출간하면서다. 권씨가 사는 마을 이름을 따 책명으로 삼은 <아포일기> 는 지난해 1,2권이 나왔으며, 이번에 3권을 추가해 완간했다.

 

일기 속의 권씨는 자신과 가족의 노동력을 스스로 착취하면서 소작농에서 자작농으로 성장하고, 농한기에는 인근 도시의 막노동꾼으로 노동시장에 뛰어들어 돈을 모았다. 그리고 이를 기반으로 세 자녀를 모두 대학에 보내고, 도시 중산층으로 성장시키는데 성공했다. 이 과정은 동원 가능한 모든 자원을 집중시켜 온 한국사회의 근대화 과정을 그대로 닮았다.

 

연구실은 “일기를 통해 돈과 출세, 성공을 위해 현재의 쾌락과 편안함을 포기하고 근면·성실의 가치를 규범화하는 이른바 근대 ‘자본주의 정신’의 전형을 보여주고, 다른 한편으로 이를 위한 모든 노력이 자녀와 부인·형제들로 제한되는 가족주의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분석했다.

 

사회경제 상황과 문화적, 윤리적 가치의 급격한 변화를 한 세대 내에서 경험하면서 나타나는 이와 같은 양면가치성을 압축근대성의 주요한 측면으로 파악한 것이다.

 

연구실은 지난 2011년부터 2년 동안 진행한 전북 임실의 농민일기인 <창평일기> 출간에 이어 이번 <아포일기> 를 통해 한국사회의 근대화 과정에 대한 영호남 간 비교연구를 위한 기초자료를 구축했다는 점에서도 의미를 지닌다고 밝혔다.

 

연구팀은 두 지역의 농민일기에 이어 인천과 충청 지역의 중산층과 지식인의 일기를 발굴, 독해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 기록이 자료화 되면 국내 각 지역 간, 도농 간 비교연구의 기반을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책임 연구원인 이정덕 교수는 “한 농민의 생애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아포일기> 는 한국 근현대사 속의 작은 역사 기록”이라며 “앞으로 개인기록 자료의 범위를 농촌에서 도시로, 국내에서 동아시아로 점차 확대해 가면서 개인기록을 통한 동아시아 근대성 비교연구를 진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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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용 kimwy@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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