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향인 초청, 밤하늘 희망등 '두둥실'…연동마을 / 아이들 건강한 체험프로그램…와일드애니멀파크 / 씨앗 줄기 열매…창안학교 통해 공동체로 성장
마명, 송림, 연동, 주진, 중산, 호암 마을, 365일건강해, 막사발보존회, 다홈, 두부시대, 모꼬지, 별누림팜스토리, 별별공방, 수월마을, 쉼, 엄마손, 와일드애니멀파크, 용추골, 자연염색꼭두서니, 책놀이터, 촌뜨기, 파릇파릇보리새싹, 행복한나누는사람들. 마을에다 별별스런 수식이 붙어 ‘무엇하는 사람들일까’ 궁금증이 일어나는 이름, 고창 공동체들의 브랜드다. 이‘명사’ 안에 어떤 형용사와 동사, 부사들이 차곡차곡 담겨 꿈틀거리고 있을까? 고창의 마을공동체, 창업공동체를 만들어가는 사람들을 만났다.
△공동체 풍경 하나, 마을에 신명이
두둥실 밤하늘에 100여개 투명한 작은 보름달이 올랐다. 일제히 일어서는 희망등(LED헬륨풍선)에 맞춰 농악소리가 푸지게 푸지게 모아지고 있었다. 고창군 고수면 연동마을의 지난 정월대보름 풍경이다. 행사를 기획하고 마을어르신들과 준비했던 안상현(43) 이장을 만났다.
“한동안 잊혔던 대보름 행사였죠. 행사에 함께한 어르신들이 자신들의 소원을 담은 희망등이 밤하늘로 올라갈 때는, 모두가 청년시절로 돌아간 느낌이었을 거예요. 한해 기운을 모두 얻는 시간이었죠.”
안 이장은 마을 어르신 50여 명에, 직장인, 농악대, 나눔굿패 친구들이 판굿이며 길굿, 마당굿 같은 고창 풍물가락으로 흥을 풀어준 그 하루를 몸에 새기듯 기억하고 있었다. 잃었던 마을의 신명이 돌아온 것이다. 그 신명으로 지난 칠월칠석에는 출향인사 50여 명을 초청해 흥겨운 마을모임도 가졌다. 평균 연령 70대 중반, 연동마을에 작지만 새로운 희망의 불씨가 살아나고 있다는 것을 그가 알아챈 것이다.
마을 어르신 가운데 ‘왕년’에 짚풀공예하던 분과 대나무 공예하던 분을 찾아내 체험프로그램을 기획하고, 마을 안 연꽃방죽을 다듬어 연잎차며 연잎밥을 준비하는 힘이 이렇게 모아지고 있었다.
“마을과 마을바깥(출향가족)이 함께 정과 믿음으로 이어지면 마을에서 키운 것, 만든 것을 도시의 마을가족이 믿고 소비하는 작지만 건강한 생산-소비 공동체가 만들어질 거예요.”
△공동체 풍경 둘, 건강한 동물농장
‘앗! 엄청나게 부드러워요.’ ‘오, 따뜻해요, 정말 촉촉해요.’ 자기만한 덩치, 뒷발질이 무서워 처음에는 가까이 가기도 겁냈던 아이들이었다. 젖염소 유산양(乳山羊)에게 고구마 줄기며 친환경 사료 한줌씩을 가지고 조금씩 가까워진 아이들이, 금세 보드라운 염소 젖을 쥐고서는 호들갑이다. 5년 전 고창군 부안면 수앙리 2만여 평 부지에 친지 네 가족, 모두 일곱 사람이 정착해 만든 와일드애니멀파크, 성은주(59)대표를 만났다.
“동물농장을 하려던 것은 아니에요. 처음엔 이곳에 정착한 우리 농부들부터 자연스럽고 건강한 먹을거리를 얻어야겠다 생각했던 거예요.”
공장형 축산시스템에서 나오는 먹을거리 대신 농부들 스스로 건강하자는 뜻이었다. 동물 식구들이 늘어나자 더불어 새로운 체험프로그램으로 기획하게 된 것이란다. 애니멀파크에는 토종닭, 흑염소, 유산양들이 천연덕스럽게 살고 있다. 어른 허리까지 오는 나무다리, 페인트를 쓰지 않은 천연 층층나무계단에 녀석들이 삼삼오오 노니는 동물놀이터다. 가족단위 참가자들이 많다. 특히 자연방사장 안에서 달걀을 찾는 놀이는 흥미진진하다. 다섯 개, 열 개씩 알 무더기를 찾는 날에는 그 어떤 컴퓨터 게임보다 짜릿하다. 식사는 이곳 농부들이 먹는 가정식 그대로다. 염소와 놀거나 무화과를 따거나, 고구마를 캐거나, 그저 게스트룸에서 편안한 잠자리에 들어도 좋다.
“모두, 놀면서 먹으면서 쉬고 치유받자는 거예요.”
성 대표는 와일드애니멀파크와 더불어 ‘꼬미다레알(리얼푸드의 스페인어)’이라는 농산물 생산유통 브랜드도 론칭했다. 오이와 애호박은 친환경 학교급식용으로 납품을 시작했다. 도시생활을 접고 새로 시작한 전원속 7인의 삶이 벌써부터 흥겨워지고 있다.
△공동체가 세상을 어떻게 변화시키나
첫 사례는 마을공동체, 두 번째 사례는 창업공동체다. 모두 창안대회, 창안학교 출신이다. 마을공동체와 창업공동체를 가르는 것은 무엇이고, 창안대회는 무엇인가. 조금 더 나가면 씨앗, 뿌리, 줄기, 열매단계까지.
우리 안의 공동체성을 다시 모으고 가다듬는 흐름이 이 안에 다 있다. 그 모체가 ‘메이플·스톤공동체지원센터’이다. 단풍의 메이플, 고인돌의 스톤,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하는 공동체들의 어머니.
공동체 씨앗을 마을 안에서 틔우려면 마을로, 뜻과 마음 맞는 사람들 사이에서 틔우려면 창업, 이렇게 나뉜다. 그리고 창안학교를 통해 씨앗으로부터 햇볕과 공기, 물을 받아들이는 연습을, 창안대회를 통해 스스로 터득한 공동체성, 공동체의 신명, 공동체의 비전을 겨룬다. 겨룸을 통해 뿌리단계는 줄기로, 열매단계로 성장해간다.
‘스스로’, ‘겨루면서 서로에게서 배우는’ 이것이 고창, 정읍 공동체들이 한자리에 모여 문제를 풀고 미래를 준비하는 방식이다. 이전에 없던 그 찬란한 시도를 단행한 메이플·스톤공동체지원센터 방경은 사무국장 이야기이다.
“창안대회는 우리 공동체의 시작도, 끝도 아니에요. 차근차근 성장하고, 더불어 함께하고자 했던 우리 모두의 도전입니다. 그 아름다운 도전을 미약하나마 도울 수 있어서 그리고 함께할 수 있어서 참 좋았습니다. 고맙습니다.”
고창, 정읍이 함께한 공동체의 시도는 올해로 ‘일단’ 막을 내린다. 정해진 예산과 일정이 모두 끝나기 때문이다. 전국 어디에도 없던 지자체간 협력과 창안대회라는 시도는 시도대로, 오히려 부안군까지 세 곳의 전북 서남권 시·군이 큰 공동체의 밑그림을 그리자는 이야기까지. 아직은 안갯속이다. 그러나 이 공동체의 경험은 고창지역에서 열다섯 개 공동체가 모여 ‘고창공동체협의회’를 준비하는 모임으로 번지고 있다.
공동체의 씨앗, 씨앗이란 언젠가 다시 피어난다. 저 연방죽에 묻힌 씨앗이 수천 년 뒤 다시 피어나 황홀한 색과 향을 피워내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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