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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지상의 별처럼] 문제를 물었는데, 상태를 말씀하시네요

지상에서 볼 때 모든 별은 각각 제 빛을 내며 반짝인다. 별에서 이 세상 아이들을 보면 한 명 한 명 그렇게 반짝이지 않을까

 

“요즘 들어 가장 듣고 싶지 않은 뉴스를 꼽으라면 아마 많은 분이 아동 학대 소식을 드실 겁니다. 법무부에서는 아동학대방지법 종합대책을 수립하여 시행하겠다고 합니다.” 소식을 전하는 앵커의 슬픈 표정 뒤로 수많은 그림이 지나간다. 포털 사이트를 보니 아동학대 예방캠페인 참여자 수가 800만 명에 이른다. 금수저, 은수저, 흙 수저…. 그 판에서 만들어지는 작금의 뉴스가 아프다.

 

생각해보니 이들 이야기 중심에 아버지가 있다. 아버지. 지금 이 나라에서 그들의 역할과 위치 그리고 정체는 무엇인가. 종류도 있는가? 아직도 생생한 영화 기억 속에 「국제시장」의 덕수, 「7번 방의 선물」의 용구가 있다. 온 국민의 열화와 같은 박수를 받은 캐릭터다. 최근 영화 「로봇 소리」에는 만사 제쳐놓고 실종된 딸을 찾아 전국을 떠도는 아버지 해관이 나온다. 영화에 이런 대사가 있다. “엄마는 자식을 낳아서 세상으로 보내지만, 아빠는 인생을 부정당하는 걸로 자식을 세상에 내보낸대. 엄마 아빠처럼 살지 않겠다는 말, 생각해보면 그게 그렇게 나쁜 말은 아니야.”

 

인도영화 「지상의 별처럼」에는 난독증에 걸린 여덟 살 아들 ‘이샨’(다쉴 사페리 분)으로 인해 골치를 앓는 아버지가 나온다. 사고뭉치인 이 아들을 어찌할 줄 몰라 고민하다가 결국 기숙학교로 전학시키는데, 가정방문을 한 ‘램 니쿰부’(아미르 칸 분)선생님은 아버지에게 아이를 왜 전학시켰느냐고 묻는다. “어쩔 수 없었어요. 작년에 3학년을 유급당했어요. 그런데도 똑같고….” 선생님이 정색하며 반문한다. “문제를 물었는데, 상태를 이야기하시네요.”

 

문자 읽기, 쓰기 및 인지적 결함 등 포괄적 장애에 노출된 이 아이, ‘못 하는 것을 반항으로 감추며 세상과 싸웠을 것’이라는 게 선생님 주장이다. 아이는 선생님의 개인지도로 치유된다. 그리고 그림에 아주 특출한 재능이 있다는 사실까지 알아낸다. 한 아이의 성장서사는 이렇게 정확한 진단과 명쾌한 해법이 있어 아름답다.

 

영화 속 아버지는 출장 갔다 올 때 간식 사 오고, 상태를 아내에게 물으면 그만이다. 1등만 하는 큰 아이와 비교하며 눈물 흘리는 엄마에게 무슨 답이 있으랴. 이샨을 전문가에게 한 번만 보였어도 진단이 가능할 일이었다. 이들은 급기야 건강하지 못한 분리를 자행한다. 이샨이 그토록 싫어하는 기숙학교에 억지로 밀어 넣는다. 버려지듯 학교에 남은 이샨은 아빠, 엄마 그리고 공부 잘하는 형이 탄 차를 닭똥만 한 눈물을 흘리며 바라보고 서 있다.

 

영화는 난독증 치료과정을 보여주는데, 선생님은 문장을 거꾸로 배열하고 거울을 갖다 댄다. 거울에 칠판글씨가 똑바로 나타난다. 이는 아이가 작은 물고기를 잡아 물병에 넣고 병 밑에서 올려다보는 것과 같은 맥락의 보기 방식이다. 영화제목 ‘지상의 별처럼’뜻은 지상에서 올려다봤을 때 모든 별은 각각 제 빛을 반짝반짝 발하고 있다는 것이다. 별에서 이 세상 아이들을 보면 어떨까. 역시 한 명 한 명 반짝이고 있지 않을까? 그런데 위에서 내려다보는 아이는 거꾸로 서 있는 것이다. 뒤집어 봐야 제대로 보이지 않겠는가.

 

영화 「샤이닝」은 한 겨울 동안 외딴 호텔관리를 맡은 작가 아버지가 서서히 미쳐가는 상황을 그린다. 자폐아 아들 죠니는 좋지 않은 분위기를 파악하고 엄마의 빨간 립스틱으로 출입문에다 ‘REDRUM’이란 글자를 써 놓는다. 무슨 뜻인가. 글자를 거꾸로 배열해야 뜻을 알 수 있다. ‘MURDER’, 살인이란 뜻이다. 가족은 미치광이가 된 아버지가 휘두르는 도끼를 피해 무사히 탈출한다.

 

독일군의 유대인 학살을 소재로 한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에는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웃음을 잃지 않는 아버지가 있다. 이 아버지는 죽음의 수용소에서도 아들을 고무하기 위해 “지금 게임을 하고 있다. 우리는 모두 선수야.”라고 말한다. 게임에서 이기면 탱크를 상으로 받는다며 아이를 격려한다. 아이는 살아남아 탱크를 탄다.

 

유대인 학살을 자행한 히틀러의 아버지는 폭군이고 술고래였다고 한다. 히틀러는 그런 아버지에게 초주검이 되도록 맞고 자랐다고 하니 그의 잔인함이 어디서 비롯되었는지 알만하다. 그런 속에서 어머니는 히틀러를 딱하게 여겨 무한사랑으로 감쌌다니 무슨 아이러니인가.

 

영화에서 이샨은 ‘플립북(여러장으로 묶인 종이에 연속된 동작이 있는 그림책)’에 그림을 그린다. 책장을 계속 넘기면 그림이 움직이면서 가족이 세 명만 남는다. 자기는 빠지는 것이다. 그가 학교 사생대회에서 최우수상을 탄 작품은 호수 그림이다. 호수 색상이 하얗다. 검은색을 모두 걷어낸 것은 자신의 무의식에서 암운이 걷힌 것이리라. 호수에서 물고기가 반듯하게 헤엄친다. 이제 그는 세상을 거꾸로 보지 않아도 된다. 한국영상영화치료학회 전북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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