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양 시인 7년만에 시집 〈헛디디며 헛짚으며〉 출간
“마지막 시집이지 않을까 싶다”는 시인은 일흔이 넘어 시집을 낸 소감을 “백수작춘용 영불괴지분(白首作春容 寧不愧脂粉, 백발에 화장을 하고 꾸미니 연지와 분이 부끄럽다. 유몽인의 한시 ‘상부(孀婦)’중 일부)”으로 대신했다.
시집은 우석대학교 정년퇴임 이후 쓰여진 것들이다. “정권도 역주행하고 있으니 저도 역주행을 한번 해봤다”며 황량했던 1950년대 중고등학교 시절을 회상했고, 복잡하고 참담한 시대를 살아가는 노년의 지식인의 통증을 내면화했다.
시집에 실린 대부분의 시는 시대의 질곡과 맞서고 그것을 기록하려는 것들이다. 언어수사에 집중하지 않고 경험에 바탕을 둔 인간적인 삶의 행위에 초점을 맞췄다. 애정으로 끌어안고 감내하려는 익살스러운 목소리도 여전하다.
시인이 이번 시집에서 가장 아끼는 시는 이발소에서 면도하는 장면에 역사와 현실을 빗댄 ‘눈 감은 채’. ‘…목을 치기 전에 머리빡을 이렇게/ 몇차례나 시원하게 박박 감겨주는/ 착하고 솜씨 좋은 망나니는 없었을까/ 오랏줄에 묶인 채 눈 감긴 채/ 원통한 목이 뎅겅 잘리기 전에/ 마지막으로 눈 부릅뜨고 싶었을 머리통들이/ 여기저기 피범적으로 뒹구는게 보인다/ 박박 감아주는 손길에 머리통을 맡기고/ 눈 부릅뜨지 못한 일들은 눈 감은채 헤아린다.’( ‘눈 감은 채’ 일부)
시집의 표제는 ‘핏발 선 눈을 가리고’에서 따왔다. ‘…시력이 형편없어도 무슨 구실은 했던지/ 외눈으로 세상을 가늠하기가 만만찮다/ 핏발 선 눈을 끝내 가리고/ 헛디디며 헛짚으며 갈 데까지 가봐야겠다.’( ‘핏발 선 눈을 가리고’일부)
‘응답하라 1950’으로 묶인 학창시절 회상 시는 순박함속에 통섭과 통찰이 있다. ‘이 세상에는 옳은 일보다 그른 일이 많아 시험 답안지에 모두 ‘×’를 친 시인에게 기분이 좋다며 100점을 준 화학선생님( ‘화학선생님’)과 “학무국장 지시로 수업시간에 소지품 검사를 하겠다는 훈육부 선생들에게 왜정때 배운대로만 풀어먹을라고 한다며 쌍욕을 내뱉으며 막아선 ‘무식’한 체육선생님( ‘잃어비린 이름’)”도 애잔한 그리움으로 다가온다.
문태준 시인은 “시인의 시는 영혼이 앓아누운 자리에서 얻은 것이어서 시구(詩句) 곳곳을 따라 읽을 때는 온몸이 쑤신다. 그러나 싱긋벙긋거리게 하는 익살 또한 있다. 세상의 헛것들에게 거는 힐난이 날카롭다. 답답하던 가슴에 펑 구멍이 뚫린다”고 했다.
시인은 “부인이 밤새 시집을 읽으며 눈물이 다 나왔다고 하더라”며 이번 시집으로 부인이 자신의 애독자가 됐다고 전했다.
현재 우석대 문예창작학과 명예교수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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