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아이 잘 돌보지 못하는데다 직장서도 눈치 / 일·가정 양립 가능한 조직 만들어야 저출산 해결
딸 셋을 키우는 워킹맘 김정아 씨(38)는 오후 9시가 돼서야 사무실을 나섰다. 아침에 초등학생인 큰 아이에게 약간 미열이 있는 게 마음에 걸려 서둘러 퇴근하려 했지만, 오후에 추가 업무가 생겨 결국 퇴근 시간은 또 오후 9시를 넘기고 말았다.
일과 육아사이에서 워킹맘들은 늘 자유롭지 못하다. 그날도 정아씨는 아이와 바쁜 일 사이에서 결국 일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아이들은 친정 엄마가 봐주시니까, 애들 아빠가 있으니까, 나는 좀 늦어도 괜찮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정아씨는 셋째 딸을 낳으면서 친정집으로 이사했다. 맞벌이를 하면서 점점 성장하는 아이들을 직접 등교시키기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남편도 회사 업무가 바빠 출퇴근이 자유롭지 않았다. 그런데 마침 친정아버지가 정년퇴직을 해 친정에서 자녀들을 돌봐준다면 아이들이 훨씬 안정적인 환경에서 자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집에 도착하니 오후 10시가 넘었다. 친정 엄마는 아이들을 재우고 있었다.
“오늘 큰 아이가 생떼를 부리다가 이제 잠들었다”는 친정 엄마의 말투에는 ‘애가 그렇게 기다리는데 왜 이렇게 늦니!’라는 짜증 섞인 감정이 배어 있었다.
직장에서도 정아씨는 환영받지 못한다. 회식에 대부분 참여할 수 없는 것은 물론 사무실 직원 중 가장 먼저 ‘퇴근 스타트’를 끊으니 상사의 잔소리도 잦아졌다.
“정아씨 이렇게 일 할 생각이면 그냥 전업주부로 살아!”
실수를 할 때면 날카로워진 상사의 불호령이 떨어진다. 상사의 입장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일과 가정에 시달리는 워킹맘들을 비하하는 것 같아 마음이 좋지 않다.
요즘 젊은 엄마들은 모임이 잦다. 엄마들끼리 친해야 애들도 친해진다는 것이다. 애를 키우기 위해 일을 그만둔 친구가 정아씨에게 조언을 해줬다.
“요즘엔 아이 낳고 3개월 만에 복직하는 것이 흉이 아닌데, 초등학교 입학 때 육아휴직을 안 쓰고 계속 일을 강행하면 욕먹어.”
담임교사도 으레 일하는 엄마들을 반기지 않는다는 얘기다. 초등교사인 중학교 동창 역시 아이가 학교에 들어가면 꼭 아이를 직접 양육하라고 조언했다.
정아씨는 고민했다. 다시 육아휴직을 해야할 것 같은데 회사에서 반길 리가 없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빈자리를 메우는 것이 얼마나 버거운 것인지 알기에 내 자리를 비울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친정과 남편에 대한 미안함, 아이들에 대한 걱정, 일과 가정을 같이하는데서 온 피로감 등으로 결국 육아휴직을 선택했다.
18일 여성가족부에 따르면 전북의 워킹맘 가정은 22만4000가구로 비율은 전국 평균 43.9%를 넘는 50.8%며, 전국 16개 광역 시도 중 6번째로 높다. 맞벌이 여성의 의무 활동은 외벌이 여성보다 2시간 이상 많게 나타났다.
또한 우리나라 맞벌이 여성의 가정관리 시간은 2시간27분으로 남성(31분)보다 1시간 56분 많다.
특히 기혼여성의 20.7%가 임신·출산·육아 등으로 일을 중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성가족부 가족정책과 조민경 과장은 “일·가정 양립 실현의 필요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조직부터 변화시켜야 한다”며 “육아휴직을 남성이 병행하는 문화가 안착돼야 일과 육아사이에서 갈등하는 워킹맘들의 딜레마가 조금은 해소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워킹맘 문제는 곧 저출산 문제와 직결되므로, 회사는 물론 가정에서도 일·가정 양립에 대한 인식을 갖고 워킹맘들에게 협조해 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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