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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일보 카드뉴스]그 해, 1980년 : 전북의 5월 (5·18 민주화운동)

 

#표지.

그 해, 1980년: 전북의 5월

#1.

1980년 봄. 신군부가 민주화 요구를 짓밟을지 모른다는 위기감에 전국 대학가는 떠들썩했다. 전북지역도 마찬가지였다.

- 1980년 5월 2일, 전북대 학생 수천 명이 연좌농성하는 모습.

#2.

- 1980년 5월 3일, 장소 불분명. 한 청년이 무장 경찰에게 쫓기고 있다.

#3.

- 1980년 5월 3일, 전주. 전북대 학생과 전경이 대치 중이다.

#4.

- 1980년 5월 3일, 전주. 계엄 해제를 요구하는 전북대 학생들.

#5.

전북대 학생들은 5월 3일과 4일에는 철야 농성에 나섰다. ‘비상계엄 해제’와 ‘어용 총장 퇴진’ 등이 그들의 요구였다.

- 1980년 5월 5일, 전주. 전경과 대치 중인 전북대 학생들.

#6.

- 1980년 5월 5일, 전주. 뒤집힌 진압차량을 살펴보는 시민과 전경.

#7.

- 1980년 5월 5일, 전주 종합경기장 사거리.

#8.

익산에서는 원광대 학생들이 나섰다. 5월 8일, 이리역(지금의 익산역)에 모인 3천여 명의 학생들은 시국토론회를 열었다.

- 1980년 5월 8일, 이리역 광장에 모인 원광대 학생들.

#9.

재야에 있던 김대중 선생은 5월 10일에 전북 정읍을 찾았다. 내장산, 황토현 등을 방문한 그는 “국정자문위원회는 도움이 되지 못하며 근본적인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1980년 5월 11일, 정읍에서 열린 갑오동학혁명제.

#10.

한편 이를 취재한 서흥석, 김종량, 김승일 당시 전북일보 기자는 그 해 8월 13일, 다른 동료 6명과 함께 강제 해직을 당했다.

 - 1980년 5월 10일. 기자회견 중인 김대중 씨(당시 재야인사).

#11.

전국 23개 대학 총학생회가 ‘교내 시위’로 전환하기로 하면서 잠시 소강상태던 정국은 14일부터 다시 요동쳤다.

 - 1980년 5월 14일, 당시 전북도청 앞.

전북대 학생들이 계엄 철폐를 요구하며 연좌농성을 벌이고 있다.

#12.

전북지역에서는 전북대, 원광대, 군산대 등의 학생 6천여 명이 거리로 나섰다. 경찰의 강경 진압으로 많은 학생이 다쳤다.

 - 1980년 5월 14일, 당시 전북도청 앞.

전북대 학생들이 경찰의 페퍼포그에 밀리고 있는 모습.

#13.

 - 1980년 5월 14일 당시 전북도청 앞, 시위대를 진압하는 경찰.

이날 전북대생 34명이 연행됐다.

#14.

- 1980년 5월 14일. 당시 전북도청 앞.

경찰의 강경 진압으로 전북대 학생들의 신발이 어지럽게 널려 있다.

#15.

- 1980년 5월 14일, 전북대 병원.

시위 과정에서 다친 학생들이 치료를 받고 있다.

#16.

5월 15일, 서울역에는 8만여 명이 모여 민주화를 요구한 뒤 해산(서울역 회군)했다. 같은 날 전주역에는 전주, 군산, 익산 대학생 1만여 명이 운집했다.

 - 1980년 5월 15일, 전주역 광장에 모인 학생 시위대.

#17.

- 1980년 5월 15일, 전주 도심 인근. 가두행진을 벌이는 대학생들.

#18.

- 1980년 5월 15일, 전주 시가지로 진출한 시위대를 경찰이 진압 중.

#19.

- 1980년 5월 15일 전주 도심, 경찰이 시위대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학생이 길에 쓰러졌다. 책가방, 소지품과 자전거가 널브러져 있다.

#20.

5월 16일에 도내 대학생들은 일단 시위를 멈추고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다. 하지만 17일, 신군부는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사태는 파국으로 치닫고 있었다.

 - 1980년 5월 17일 추정, 시위대를 진압하는 경찰.

#21.

한편 학생 시위는 대학생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5월 27일, 전주 신흥고 학생들도 교내에서 계엄 철폐 등을 외치며 시위를 벌였다. 이 사진 또한 당국의 검열로 보도되지 못했다.

 - 1980년 5월 27일, 전주 신흥고에서 시위를 벌이는 학생들.

#22.

5월 18일은 일요일이었다. 그날 새벽, 전북대 학생 이세종이 학생회관 앞서 주검으로 발견됐다. 민중항쟁의 첫 사망자였다.

 - 전북대 제1학생회관 앞 표지석, 2016년 5월 12일 촬영.

#23.

정확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지만, 전북일보 기자가 광주에 가 촬영한 것으로 추정되는 필름이 남아 있다. 당시 상황을 어림짐작할 수 있다.

 - 1980년 5월 20일, ‘집결, 도청으로, 3시’라고 쓰인 채 버려진 버스.

#24.

- 1980년 5월 20일, 피난길에 오른 광주시민들.

#25.

계엄군은 학살극을 벌이며 광주를 피로 물들였다. 결국 5월 27일, 항쟁은 끝이 났다.

 - 1980년 5월 29일, 광주의 당시 전남도청 광장에 진주한 계엄군.

#26.

하지만 민주주의를 향한 열망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 1985년 5월 16일, 전북대 (구)정문 인근에서 벌어진 시위.

#27.

- 1985년 5월 16일, 사복경찰의 항쟁 5주기 시위 참가자 연행 모습.

#28.

- 1995년 9월 10일, 전주 코아백화점(지금의 세이브존) 인근에서 ‘5.18 학살자를 규명하라’는 내용의 시위가 진행되는 모습 .

#29.

전북지역에서 5.18 민중항쟁(민주화운동) 관련 유공자로 인정 받은 이는 총 116명이었다.

- 자료: 전북동부보훈지청, 전북서부보훈지청

기획 신재용, 구성/제작 권혁일, 취재 남승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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