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제48회 전라북도 미술대전’이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주최 측은 전반적으로 위축되어가는 예술 풍토에서 응모작이 늘고 전체적인 작품 수준은 향상됐다는 자평을 남겼다. 하지만 고질적인 심사 공정성 문제가 다시 불거져서 안타까움을 남기고 있다. 더구나 올해는 심사 공정성을 높이기 위해 심사 단계를 이원화하는 등 변화를 모색한 터여서 아쉬움이 더 크다. 심사위원이 제자 작품을 수상작으로 선정하고, 심사과정에 응모자 개인정보가 노출되는 등 여전히 공정성 논란을 낳았기 때문이다. 열악한 처지에서 창작에 매진하는 예술가들의 잔치에, 왜 이런 일이 사라지지 않고 반복되는 것일까?
예술작품의 우열을 가리는 일은 참으로 어렵다. 더구나 명예와 금전적 보상, 미래에 대한 무언의 보장이 뭉뚱그려져 있는 공모전의 경우에 그 어려움은 더욱 심해진다. 세상에 난무하는 예술상들이 모두 이 어려움을 비껴갈 수 없으니 심사를 둘러싼 잡음 또한 여간해서 사라지지 않는다. 유독 우리나라에서 심사를 둘러싼 잡음이 자주 들려오는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어 보인다.
첫째는, 예술계에 은연중 만연하고 있는 성과지상주의이다. 스스로 느끼는 만족감보다, 공모전에서의 수상을 창작의 커다란 지향점으로 삼는 이들이 너무 많다는 뜻이다. 그 집착의 정점에 이런저런 단위의 공모전이 있다.
둘째, 작품의 미적 가치보다 앞서는 정실문화이다. 사제지간, 학연, 혈연 등으로 복잡하게 얽힌 우리 예술계의 풍토가 결국 치명적인 덫이다. 웬만한 심사위원은 이 정실의 덫에 붙들리는 순간 작품의 예술적 가치에 대한 안목이 흐려져 버리는 게 현실이다.
셋째, 제도적 미비함이다. 많은 공모전들이 심사위원 회피제 등을 통해서 심사의 공정성을 추구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제도의 그물은 성기기만 하고 이를 뛰어넘으려는 인간의 욕망은 식을 줄 모른다. 더 촘촘하고 강력한 제도적 보완만이 대안이 될 수 있다.
예술에 대한 많은 이들의 순수한 열망이 오롯이 보호받으려면 이와 같은 논란은 사라져야 한다. 결론은 제도보다 문화를 먼저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엄밀한 의미에서 자신의 창작행위에 대한 평가를 가장 냉정하게 내릴 수 있는 사람은 창작자 자신이다. 오로지 공모전에서의 수상을 통해서 창작의 고통을 보상받으려 하는 일그러진 풍토가 바뀌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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